제 10회 좋은생각 청년에세이대상

원고

by 만돌

“나도 나를 모르면서”


김민수



기말고사 시험지를 제출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 연구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학기가 끝나기 전, 교수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해야겠다 하는 건 없었지만, 그래도 나중에 가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아 과거를 곱씹으며 회상해 봤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인간관계가 서툴러 주변 사람들에게 거칠게 대해 질타를 받았다. 첫 후배를 맞이했을 때는 과거의 내 모습이 투영돼 화가 나 수치스러움에 몸부림쳤고, 자퇴까지도 고민했었다. 우연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런 내 모습에 대한 반성과 객관화가 되기 시작했고, 그들은 내 성장에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어느덧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알았을 때, 남들보다는 ‘내가 나를 아는 것’에 대해 월등하다고 굳게 믿었다.


어느 날 친구가 나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려 다툼이 생겼다.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면 내게 사과할 것이고, 나는 그 친구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찌저찌 사과는 받아냈지만, 내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헛소문을 퍼뜨린 이유가 뭐지?’하는 생각에 화가 났다. 사과만 받으면 그 친구를 용서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나의 모습을 보고도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이렇게 나를 힘들게 만든 친구에게 비통함을 돌려주고 싶었지만, 얼마 안 가 불이 솟는 철창 안의 새를 구해주는 손길이 나타났다.


철학과에 재학 중인 나는 국어국문학과 수업도 한 과목 듣고 있었다. 그 교수님은 대부분 수업에서 ‘삶에서 얻은 지혜’를 학생들에게 들려줬다. 대학에 오기 전 상상했던 말 그대로 ‘진짜 수업’을 해주셔서 매번 속기하며 수업을 들었다.


2024년 11월 28일,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라’는 주제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날의 교수님 강의는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바꿔주셨다.


“생각이 다르다고 싫어하면 안 돼. 더 많이 배웠다는 것은 남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거야. 다르다는 얘기는 사고 과정이 다르다는 거야.”


“교수님 한 학기 동안 정말 감사합니다.” 연구실에서 교수님께 친구와 다툰 얘기를 나누자,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교수님도 내 마음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사실 너도 다 알고 있던 거야. 근데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거고.”


사과를 받아 그 친구보다 더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이해하려고조차 하지 못한 내가 초라해보였다. 잘할 줄 알았는데, 아니 잘나고 싶은데 그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해 잘난 척했다. 친구에게 사과받고 용서하겠다는 마음은 내 진심이 아니었다. 마음이 넓어 보이고 싶어 나도 나를 속인 것과 다름없었다. 어쩌면 친구에 대한 분노의 감정은 자연스러웠던 게 아닐까. 나도 아직 나를 모르는데 괜히 아는 척했다가 나 홀로 씨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배울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에게 스승은 어디에나 있다는 말을 믿는다. 스스로가 수치스러움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안다는 것’은 어쩌면 더 넓은 정신세계와의 대면을 위한 우회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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