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나도 나를 모르면서”
김민수
기말고사 시험지를 제출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교수님,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 연구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학기가 끝나기 전, 교수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해야겠다 하는 건 없었지만, 그래도 나중에 가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아 과거를 곱씹으며 회상해 봤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인간관계가 서툴러 주변 사람들에게 거칠게 대해 질타를 받았다. 첫 후배를 맞이했을 때는 과거의 내 모습이 투영돼 화가 나 수치스러움에 몸부림쳤고, 자퇴까지도 고민했었다. 우연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이런 내 모습에 대한 반성과 객관화가 되기 시작했고, 그들은 내 성장에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어느덧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알았을 때, 남들보다는 ‘내가 나를 아는 것’에 대해 월등하다고 굳게 믿었다.
어느 날 친구가 나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려 다툼이 생겼다.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면 내게 사과할 것이고, 나는 그 친구를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찌저찌 사과는 받아냈지만, 내 마음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헛소문을 퍼뜨린 이유가 뭐지?’하는 생각에 화가 났다. 사과만 받으면 그 친구를 용서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나의 모습을 보고도 답답한 마음뿐이었다. 이렇게 나를 힘들게 만든 친구에게 비통함을 돌려주고 싶었지만, 얼마 안 가 불이 솟는 철창 안의 새를 구해주는 손길이 나타났다.
철학과에 재학 중인 나는 국어국문학과 수업도 한 과목 듣고 있었다. 그 교수님은 대부분 수업에서 ‘삶에서 얻은 지혜’를 학생들에게 들려줬다. 대학에 오기 전 상상했던 말 그대로 ‘진짜 수업’을 해주셔서 매번 속기하며 수업을 들었다.
2024년 11월 28일,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라’는 주제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날의 교수님 강의는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바꿔주셨다.
“생각이 다르다고 싫어하면 안 돼. 더 많이 배웠다는 것은 남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는 거야. 다르다는 얘기는 사고 과정이 다르다는 거야.”
“교수님 한 학기 동안 정말 감사합니다.” 연구실에서 교수님께 친구와 다툰 얘기를 나누자,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교수님도 내 마음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다. “사실 너도 다 알고 있던 거야. 근데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거고.”
사과를 받아 그 친구보다 더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이해하려고조차 하지 못한 내가 초라해보였다. 잘할 줄 알았는데, 아니 잘나고 싶은데 그만한 실력을 갖추지 못해 잘난 척했다. 친구에게 사과받고 용서하겠다는 마음은 내 진심이 아니었다. 마음이 넓어 보이고 싶어 나도 나를 속인 것과 다름없었다. 어쩌면 친구에 대한 분노의 감정은 자연스러웠던 게 아닐까. 나도 아직 나를 모르는데 괜히 아는 척했다가 나 홀로 씨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배울 자세가 되어있는 사람에게 스승은 어디에나 있다는 말을 믿는다. 스스로가 수치스러움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안다는 것’은 어쩌면 더 넓은 정신세계와의 대면을 위한 우회로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