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원하는 잠과 머리가 원하는 잠의 역설적 관계
깊게 잔 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5시였다. 머리는 말똥 하지만 애써 무시하고 그날 컨디션을 위해 조금 더 잠을 자려고 눈을 감는다. 하지만 내 바람과 다르게 그럴 경우 언제나 깊게 잠들지 못하고 망상 상태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잠든 건지 깬 것인지 모를 몽롱함 속에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신기하게 이 시간에 글을 쓸만한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른다. 그래서 깨어나면 바로 핸드폰을 켜든 종이를 찾든 그때 기억을 적어본다. 물론 꿈속에서는 엄청난 이야기였지만 생각을 정리해 보면 별게 아닌 경우가 더 많다. 적는 사이 잊는 경우도 많고.
학창 시절에 잠은 타도할 대상이었다. 항상 잠과 싸웠고 어떻게든 잠을 떨치려 무단히 레쓰비나 박카스를 마셨던 것 같다. 3당 4 락 까지는 아니었지만 새벽 1시에 도서관이 끝나면 아버지가 데리러 오셨고 대충 씻고 잠을 자고 7시면 학교에 등교했던 것 같다. 싫은 소리 한번 없이 날 데리러 오고 데려다주셨던 아버지가 오늘따라 보고 싶네. 한 번의 수능에서 원하는 정도를 얻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그 결과에도 너무 즐거워하셨다. 난 창피했지만 여기저기 자랑을 하셨다. 그 모습에 나도 재수는 포기하고 열심히 학교를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뭘 그리 열심히 했었나 싶다. 잠이나 푹 자고 하고 싶은 것 다 해볼걸. 명문대나 지방대나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걸 보면 그런 푸념을 하게 된다.
젊었을 때는 잠자는 시간이 악의 축 까지는 아니었지만 아까운 존재였다. 조금이라도 더 술을 마셔야 했고, 조금이라도 더 레벨을 올려야 했다. 택시비까지 다 털어서 밤새 술을 마시다가 동아리방 소파에서 새우잠을 잠시 자고 술냄새 풍기며 첫 버스를 타고 집에 오던 기억이 이젠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른다. 게임방에서 밤을 새운 적도 많았고, 대학교 중간/기말시험에도 밤새는 건 기본 옵션이었다. 노느라 바빴으니까 공부할 시간은 없었으니. 밤새고 대학교 후문에서 파는 천 원짜리 계란토스트와 믹스커피 한잔이 참 맛있었는데. 이젠 그렇게 하라고 해도 어려울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는 잠은 떠받을어야 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혹여나 잠을 덜자거나 이상하게 잔다면 그다음 날은 혹독한 피곤함을 버텨야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숙면을 취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문명의 이기 덕분에 시계를 차고 자면 내가 언제 잠들었고, 언제 깼는지 뿐 아니라 내가 깊게 잔시간이 얼마인지, 얕게 잔 시간이 얼마인지, 심박수와 더불어 코를 골았는지 까지 알려준다. 마치 실험실 쥐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수면 점수가 좋으면 왠지 오늘의 운세가 좋게 나온 것처럼 이유 모를 자신감이 생긴다.
그렇게 잠에 대해서 신봉하다가 신기한 이론을 발견한다. 바로 REM수면(Rapid Eye Movement, 뇌가 활성화되어 꿈꾸는 상태로 낮동안의 기억을 저장하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단계)이다. 깊은 숙면과 정 반대의 개념이다. REM 수면 상태에서는 신체의 회복이 더디지만 정신의 회복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혹자는 REM 수면을 역설적 수면이라고도 부른다.
난 깊은 수면이 필요할까, 램 수면이 필요할까? 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 왜냐면 자는 동안 내 몸은 잠의 컨트롤을 받으니까.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는 잠을 안 자는 스위치가 있었으면 했는데, 요즘은 잠을 자는 스위치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숙면과 REM수면의 차이처럼 내 몸도 활동과 휴식이 계속 경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늘은 어떤 수면이 더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