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 수가 없다 - 진짜 어쩔 수 없었나?

우린 애써 다른 선택지를 못 본 척하지 않았나?

by 구르미

개인적으로 이번 '어쩔 수 없다' 외에도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등 박찬욱 감독의 작품을 좋아한다.

박찬욱 감독은 밀히 말하면 상업영화 감독이지만, 예술가적인 색채가 강하다. 위에 나열한 영화에 대해서도 스토리보다는 장면 하나하나가 먼저 떠오른다. 예를 들면 올드보이의 도끼 전투씬이라던지, 금자씨의 얼어붙을 듯한 표정, 아가씨의 책장 뒤 키스신 같은 것이 그렇다. 그렇게 장면 하나하나의 색채와 이미지를 중시하고 복수나 잔인한 장면을 더 강렬하게 표현한다.



영화를 보기 전 이 스틸컷을 봤을 때만 해도 항상 그렇듯 박찬욱의 문법을 따를 것이라 생각했다. 살의를 띈 저 표정, 그리고 그 살의와 약간 괴리가 있는 고추 화분.


하지만 막상 영화를 보니, 전체적인 내용이 조금 의외였다. 영상미는 유지했지만, 현실과는 약간 동 떨어진 이야기를 조금은 난해한 독자적인 흐름으로 표현하던 박찬욱 감독이 사회 문제를 전면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이다.


이 영화에서 대한민국에 국한된, 아니 현대 사회 전체에 걸쳐 이슈가 되고 있는 사회 문제점을 언급하고 있다. 바로 자동화, 실직, 개인 소외 문제이다.


이 세가지는 결국 다 이어지는 내용들인데, 먼저 자동화는 로봇과 AI로 대변되는 변화이다.


제일 처음 산업 혁명이 일어나 가내 수공업으로 제한된 양이 생산되던 제품이 기계의 힘을 빌어 엄청난 양의 공산품으로 생산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공급자 중심의 시장을 만들게 되었고, 기계를 돌리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하게 되었다. 노동자들에게 고정적인 임금이 지급되면서 개인의 평균 소득이 증가되고, 그 소득의 증가는 소비의 촉진으로 부의 선순환 pathway가 가동된다.


하지만 최근의 자동화는 이 pathway를 변화시킨다. 로봇과 AI를 통해 점점 무인 공정이 늘어나고, 최종적으로는 불 꺼진 공장, dark factory를 목적으로 한다. 그렇게 되면 기존에 사람이 하던 일을 로봇이 하게 되고, 그 일을 하던 사람들은 자리를 잃게 된다. 실직자라는 이름으로. 소유주는 인건비라는 고정비를 줄이면서 이익이 극대화되지만 기존의 노동자는 실직으로 인해 궁핍해진다. 빈부격차가 더 커지며 부의 분배는 멈춘다. 부익부 빈익빈.


그렇다면 사회가 일이 없어진, 더 궁핍해진 노동자를 받아줘야 하는데, 이미 기득권이 공고히 유대관계를 형성한 사회는 굳이 필요가 없어진 노동자를 거들떠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패배자로 낙인찍는다. 그렇게 그들은 소외된다.



이 영화는 그렇게 소외된 사람들이 다시 자기의 자리를 찾으려는 몽니가 주된 소재가 된다. 그 집착 때문에 모든 것을 놓고 자포자기로 살기도 하고, 비굴해지기도 하며, 그 때문에 해선 안될 일도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하게 된다. 다시 예전으로, 행복한 상태로 돌아가려면 어쩔 수가 없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배우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다 보면, 정말 어쩔 수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들이 하는 행동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영화 중 손예진도 이병헌의 범죄를 발견하고 고민에 빠진다. 과연 정의를 따라야 할까, 남편을 지켜줘야 할까. 고민을 하던 손예진도 결국 어쩔 수가 없다는 핑계로 파던 땅을 멈추고 다시 사과나무를 심게 고 아들에겐 거짓말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든다. 꼭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 만이 유일한 방법인가? 그것 외에는 다른 방법은 없는가?

엄혜란의 대사가 참 마음에 와닿았다.

"네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그게 문제라고."


꼭 고리타분한 제지회사로 돌아가지 않더라도 행복할 방법은 많다. 이병헌은 취미를 살려 원예를 했어도 됐고, 이성민은 LP 카페를 했어도 충분히 살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옵션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어찌 보면 그들의 시야를 좁히게 된 건 기존에 자기가 가졌던 가부장적인 가장의 힘에 대한 향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실직한 후 기존 제지맨 들은 하나 같이 힘을 잃었다. 누군가의 부인은 바람을 피우고, 누군가는 비굴하게 수당을 위해 부탁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들은 가장으로서 자기의 모습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도구로서 그들의 일이 '종이'라는 것으로 설정했을지도 모른다. 이젠 점점 잊혀 가는 기록 매체.


겉보기엔 해피엔딩 이지만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며 영화는 끝난다. 어쩔 수 없었단 핑계와 함께.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 맛 '기생충' 느낌이 든다. 더 그로테스크 한 걸 기대한 면도 없지 않지만, 현재 시대를 잘 파악하고 위트와 풍자를 넣은 점은 충분히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이유가 되었다.


한줄평 : 박찬욱 감독 맛 '기생충'

구르미 평점 : 5/5 (적극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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