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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공채에서 난 누굴 뽑아야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을 뽑을 수 있을까?

by 구르미


팀장이 된 뒤, 처음으로 공채 면접에 참여하게 됐다.

실무자일 땐 경력직 면접관으로 몇 번 참석했지만, 신입 공채 면접은 좀처럼 기회가 없었다. 구조상 보직자가 아니면 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자리는 낯설었지만, 그만큼 기대도 컸다.

사실 경력직 면접은 말하자면 ‘대련’에 가깝다.


"이력서에 OOO 해보셨다고 쓰여있는데,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네, OOO는 A를 이용해서 B를 하는 시스템인데 제가 리딩해서 마무리했었습니다."

"그럼 OOO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결하나요?"

"제가 한지가 좀 오래돼서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하신 것 맞나요? OOO 문제는 리더로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일 텐데요."

"아, 사실 제가 리딩 한 건 아니고 옆에 팀에서 하는 걸 도와줬었습니다."

"그럼 직접 해보신 건 아니네요. 잘 알겠습니다. 제 질문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이렇게 공방을 주고받으며 진짜 실력을 가늠한다. 말속에 과장은 없는지, 핵심을 짚는 힘이 있는지. 칼끝을 맞댄 채 진실을 가려내는 자리, 그것이 경력 면접이었다.


그런데 신입 공채 면접은…

“제 별명은 미소천사입니다. 항상 미소와 책임감을 잃지 않아서 선배가 지어주셨어요. 제가 담당했던 일들을 모두 책임감 있게 잘 해결했다고 믿음이 간다며 인턴 연장도 제안받았고요.”


이런 자기소개를 듣고 나면, 문득 궁금해진다.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지?’

자기소개서는 왜 늘 본 것 같은 문장의 반복일까? 다들 인정받았다고 하는데 왜 여기에 왔을까? 존경하는 인물은 또 유재석이네? 미소천사와 함께 일하면 내가 기분이 좋아질까? 그런데 업무는?

신입 면접은 내 머릿속에서 이런 식이었다. 큰 변별력이 없다,라는 느낌.

불안감을 미리 예상했는지, 다행히 채용팀에서 신입 면접관을 위한 사전 오리엔테이션을 열어주었다.


“신입 면접은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출신 학교, 가족 정보, 지역은 비공개이고, 이수 과목과 학점은 공개됩니다. 지원자는 전공 지식 기반 질문 중 하나를 선택해 준비한 뒤, 면접관 앞에서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진행합니다. 면접은 3:1 방식이며, 세 명의 면접관이 각각 점수를 부여해 합격 여부가 결정됩니다.”


예전보다 체계적이었고, 이 정도면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예시 질문들을 보니 마치 대학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분명 배운 적 있는 내용인데 문제를 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다행히 모범답안이 있어 숨을 돌릴 수 있었고, 옆에 있던 다른 면접관들도 웃으며 말했다.

“면접날엔 꼭 미리 와서 문제부터 풀어봐야겠네요.”


며칠 뒤 면접 당일.


우리는 오전·오후 조로 나뉘어 총 10명의 지원자를 평가해야 했다. 한 사람당 30분. 물론 초과해도 되지만, 지연되면 점심을 못 먹거나 퇴근이 늦어진다. 면접관들끼리 “30분 안에 무조건 끝내자”라고 약속했다.


먼저 제출된 문제 외에 이력서를 살펴보았다. 확실히 요즘 신입 지원자들은 달랐다. 인턴, 부트캠프, 창업 경험, 퇴사 후 재지원까지… A4 한 장으론 부족한 이력도 많았다. 물론, 아주 깔끔한(?) 이력서도 있었다.


'똑똑', "안녕하십니까. 저는 OOO 직무에 지원하게 된 OOO라고 합니다."

첫 번째 지원자는 이력서만 보면 흠잡을 데 없었다. 논문 참여, 경시대회 수상, 대외활동까지 빼곡했다. 질문에 대한 대답도 마치 답안지처럼 술술술 답했다. 면접 스터디로 단련된 시선처리와 워딩. 왠지 너무 완벽한 것 같아서 빈틈을 찾기 위한 질문을 하고 싶었지만, 할만한 질문은, 가장 재미있었던 과목은 무엇이냐, 거기에서 어떤 항목은 어떤 것을 의미하냐 이런 것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후보자가 예상할 수 있는 수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질문이 있냐고 물었더니, "학교에서는 공정을 배울 기회가 없어서, 공정을 배우고 싶은데 혼자 공부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이 마저도 준비된 멘트를 치고 퇴장했다.


신입은 한 번에 수십 명을 뽑기 때문에 이런 친구는 그냥 A 주고 넘겨야 한다. 더 중요한 건 애매한 친구들을 어떻게 줄을 세우느냐다.


두 번째 후보자는 교양 학점이 좀 많았고, 4학년 돼서는 전공을 별로 안 들었다. 조금 싸한 느낌이 들었는데, 역시나 문제 설명에서도 아주 원론적인 답만 했다. 그럼 그 실험은 해봤냐라고 하니, 자기도 자기네 학교가 실험 수업이 없어서 불만이 많았다며 뜬금없는 학교 한탄을 했다. '음... 그래서 내가 그런 것까지 고려해줘야 하니?'라고 혼자 생각해 보고, 그래도 질문을 이어가려 여러 초급 수준 질문을 했는데 영 딴소리만 했다. 미리 스터디라도 좀 하고 준비를 하고 오지. 여긴 제조도 같이 하는데 너무 준비가 부족했다. 이런 친구는 바로 B다. 적어도 지원하는 회사를 잘 파악하고, 직무에 관련된 건 좀 배우고 와야 답도 가능할 텐데.. 따로 조언을 해주고 싶었지만 괜한 오지랖이며 오해를 살 수 있는 일이니 꾹 참았다. 미안해요.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라고 속으로 말하며 인사하며 보냈다.


참고로 면접의 국룰은 끝날 때 확신을 줄 수 있는 멘트를 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곧 뵐 수 있겠네요.", "오늘 아주 좋았습니다.", "우리 열심히 해봅시다.", "다음에 더 잘 준비해 봅시다." 이런 말을 하면 안 된다. 채용 과정에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고 괜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확신은 나중에 문제를 일으킬 상황이 다분하다. 합격이든 아니든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


세 번째 후보자는 딱 봐도 나이가 있는 후보자였다. 우리 회사와 동일 업종에서 3년을 일하다가 지원한 분이었다. 참 신기했다. 왜냐면 4년을 일하고 경력으로 지원해도 되는데 왜 신입으로 지원했지? 그래서 공통 과제 후 처음으로 그 질문을 했다.


"일 년 있다가 경력을 지원하시지 왜 3년을 날리고 신입으로 지원하셨나요?"

"저는 3년을 날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입으로 지원하여 여러 동기들과 함께 근무하는 것이 제 입장에서도 더 적응하기 좋을 것이라 생각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나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엄청 똑똑해 보이지도 않았고, 일에 대한 경험은 있었으나 신입에서 원하는 그런 possibility가 보이지 않았다. 일에 대한 경험도 여느 신입 3년이 그러하듯 시키는 일을 해온 듯했고, 왜 그렇게 일을 해야 했는지 그런 업무적 호기심이나 지식도 부족했다. 일부러 다른 이유를 대고 회사에 휴가를 내고 큰 기대를 하고 왔겠지만, 공채 지원자들의 지적 수준 대비 특별한 게 보이지 않아 안타깝게도 B-를 줬다.


이후 몇 명을 더 면접하고 마지막 후보자가 들어왔다. 그는 뭔가 신기한 후보자였다. 학교를 알 순 없었지만 풍기는 포스가 딱 특목고에 설카포 느낌이었다. 그냥 똑똑해 보이는 사람. 거기에 과대표였단다. 그런데 전공이 우리 회사랑은 조금 달랐다. 예를 들면 중화요리 주방장을 뽑는데 프랑스 요리사가 온 느낌이랄까? 괜한 궁금증이 들었다. 과연 질문을 어떻게 답할까?


그 후보자가 고른 질문은,

공정 그래프를 보고 문제를 파악하는 것인데, 정상 그래프가 있고 문제가 생긴 그래프를 주고 분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공자들은 그 그래프를 보고 문제가 무엇일지 추론하는 것보다 현상을 설명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 경우 어떤 현상이 발생하고 어떤 영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이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니 무슨 문제가 생겼을 것 같고,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고 봤을 때 원인은 OO 일 것 같습니다. 그 이유로 이 문제가 발생했을 것 같습니다.

이론보다 문제 해결 중심의 접근. 당연한 전제를 뒤집고, 불필요한 조건을 소거하면서 원인을 정확히 짚었다. '일머리'가 있다는 느낌. 놀랍게도. 정답이다. 오늘 면접 중 첫 번째 정답.


이어서 다른 질문도 했는데, 분명 이쪽 분야에 지식이 없을 텐데 어떻게 어떻게 답을 맞힌다. 암기보다는 이해로 맞춘 것 같았다. 그냥 놀라울 따름이었다.


갑자기 채용팀에서 말해줬던 게 생각났다.

신입 면접 때 보이는 부류를 크게 세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고 했다.

1. 전공은 맞는데 공부도 안 했고 준비도 안 한 사람

2. 전공 공부도 열심히 하고 면접 준비도 열심히 하여 온 사람

3. 그냥 머리가 똑똑해서 모든 상황을 머리로 그냥 해결하는 사람


아마도 마지막 후보자는 유형 3인 듯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학부생 혹은 석사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도 회사에서 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게 마련이니 결국은 가능성을 보게 된다. 특히 신입 공채는. 어찌 보면 2번 타입 보다 회사는 3번 타입을 더 선호할지도 모른다. 일은 회사에서 배우는 게 더 많을 것이고,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는 insight가 좋은 사람일 테니까.


결국 전공은 달랐지만 마지막 후보자도 A를 줬다. B를 줘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으니까.


과연 누가 최종 합격할까. 내 판단은 옳았을까.

흔히 말하는 ‘폐급’을 뽑았다고 뒷말이 나오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문득 내가 신입 면접을 볼 때, 누가 면접관이었는지 떠올려봤다. 다행히 기억난다. 첫 회사는 떠났지만, 그때 인연으로 매년 연말이면 잊지 않고 만나는 분이다.


OO 팀장님, 감사합니다.

헛소리만 잔뜩 하던 저를 뽑아주셔서,

이렇게 신입 면접관이 되었습니다.

괜찮은 신입사원이었는지는… 올해 연말에 만나 뵙고 꼭 여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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