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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들이 싸울 때, 팀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판사가 될까, 유령이 될까, 오은영이 될까?

by 구르미

이전 회사는 오래된 회사였고, 사업 확장이 더디었기 때문에 전형적인 역삼각형 인력구조를 띄었다. 이직할 때 과장 1년차 였는데, 회사에 사원이 없었다. 거기에 남자가 많았고, 지방에 있었던 덕에 감정싸움이 일어날 일은 없었다. 물론 술 먹고 혹은 장기간 쌓인 앙금으로 아예 주먹다짐을 하는 경우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술 먹고 화해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점심에 같이 족구하고 그랬다. 그 회사에서 팀장의 역할은 가끔 싸우는 직원들을 데리고 술을 마시러 가면 됐었다.


그런데 새로운 회사로 온 후 가장 놀란 건, 젊은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이다. 내가 아직 40대 초반이지만 여기에선 연령 상위 10%에 들 정도니..


그런 젊은 회사이고, 남자와 여자 비율이 5:5 수준이며, 고졸, 초대졸, 대졸, 석사, 박사, 해외대 등 여러 나이, 학력, 문화가 엮이다 보니 뜻하지 않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문제가 많이 발생했었다.


한낱 선배사원일 때야 적당히 못 본 척 있으면 됐지만, 관리자가 된 후에는 내가 뭔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생각해 보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중에 몇 가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장님, 저 쟤랑 같이 일 못하겠어요.


팀장이 된 지 반년쯤 됐을 때였다. 유닛장인 광수님이 나를 조용히 불러 말했다.

"팀장님, 저 희영님이랑 같이 일 못하겠어요. 저를 다른 데로 보내주시던, 걔를 다른 데로 보내주시던 해주세요. 안 그러면 저 퇴사하겠습니다."

항상 무던했던 광수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사건은 이랬다. 광수는 회사에서 오래 일했던 고인물 이었고, 실력도 좋아서 유닛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광수와 함께 일하는 희영님은 작년에 경력으로 온 분인데, 자기 일에 대한 프라이드가 컸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위한 실험을 하던 중, 광수는 희영이 실험장비를 잘 다루지 못하자 친한 후배인 진수를 불러 실험을 하게 했다. 일정이 있으니 빠르게 진행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런데 그 이후에 희영은 광수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일도 건성건성했고, 일이 바쁜데 열의 없이 로봇처럼 일하는 희영이 광수 입장에서도 답답했겠지. 그런데 문제는 희영이가 광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트렸던 것이다.


외향적이었던 희영이 친한 사람들에게 광수가 고집만 세고 실제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말했었고, 광수가 이걸 들었다. 내향적인 광수는 원래 이런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데, 이번 다면 평가 때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했다.


사실 난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았는데, 일이 커지는 듯하여 희영님을 불렀다.

"그때 전 기분이 너무 나빴어요. 저도 이 일을 진짜 오래 했고,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주면 할 수 있는데 제 실력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절 무시하는 사람하고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아요."


나는 당황했다. 너무 늦게 알았다.

서로 오해한 거겠지,라고 넘겼던 순간들이 누군가에겐 누적된 상처였다.


그날 이후 나는 두 사람과 다시 개별 면담을 했다.

수는 이 일을 충분히 공감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고, 희영님에겐 불필요한 험담은 결국 자신을 깍아내리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광수님에겐 이렇게 말을 건냈다.

광수님, 광수님이 의도하지 않았던 말이 누군가에게 깊이 꽂힐 수도 있어. 그리고 중요한 건, 잘못된 것을 느꼈을 때 그 감정을 지나치지 않는 거예요.”


광수 한참을 듣고 있다가 작게 말했다.

“그럴 줄 몰랐어요. 다음부터는 조심할게요.”


그렇게 둘 사이에 직접적인 화해는 없었지만, 나는 다음 회의에서 모든 팀원에게 한 가지를 당부했다.


“우린 서로 다른 기준과 민감도를 가진 사람들이고,

그래서 오해는 언제든 생길 수 있어요.

그걸 무시하지 말고, 불편함이 생기면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같이 만들자고요.”


이후로 두 사람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긴 했지만,

최소한 다시는 감정이 무기처럼 던져지진 않았다.


2. "진급 기준이 뭐죠?"


가장 당황스러웠던 질문이었다.

민식 님이 조심스레 물었다.

“팀장님, 이번에 지영 님이 진급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민식 님과 지영 님은 동기였다.

입사 후 줄곧 비슷한 프로젝트에서 같이 고생했고, 늘 비교되곤 했다.

이번엔 지영 님이 먼저 진급했다. 지영 님은 외향적이고 말발도 좋았다. 회의에서 늘 존재감이 있었고, 상사들에게 신뢰도 받았다.

반면 민식 님은 성실했지만, 드러나지 않았다. 의견을 말하기보단 주어진 일을 잘 마무리하는 스타일이었다.


HR에서 내려온 평가표를 보면, 지영 님이 가 앞선 건 분명했다. 하지만 민식의 표정엔 아쉬움과 의문이 가득했다.

“성과보다… 성격이 중요한 건가요?”


그 말에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지영 님의 강점을 기준 삼았지, 민식 님의 장점을 어떻게 봤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날 저녁, 나는 민식 님의 1년간의 프로젝트 기록을 다시 들여다봤다. 그리고 며칠 후, C와의 후속 면담에서 말했다.


“이번 진급은 팀 리딩 경험과 발표 평가가 결정적이었어. 하지만 네가 맡은 프로젝트는 정해진 기한 내에 완벽히 마무리됐고, 고객사 평가에서도 팀 평균보다 훨씬 높은 만족도를 받았더라. 그걸 내가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해.”


민식 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화 이후, 나는 진급 발표 날이면 무조건 각 팀원과 1:1 리뷰 면담을 진행했다. 단순한 결과 통보가 아닌, 각자의 성장 흐름을 짚어주는 시간으로. 진급을 하지 못한 사람도, 스스로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게 말이다.


3. 사내 연애는 끝났지만, 주변의 불편함은 시작됐다.


팀 내에서 은지 님과 준빈 님이 사귀고 있다는 건 이미 몇몇이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표 나지 않았지만, 눈치 빠른 사람은 다 알았다. 나는 굳이 묻지 않았다. 팀장으로서 너무 깊이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둘 다 무표정해졌다. 회의에서도 말이 없어지고, 교차 근무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다른 팀원들 사이에서도 “둘이 무슨 일 있었냐”는 말이 돌았다. 그래도 나는 묵묵히 버텼다. ‘개인적인 일에 개입할 순 없지’라는 생각으로.


하지만 그건 회피였다. 개인의 감정이 팀 전체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있었고, 그 영향은 다른 팀원들의 집중력과 협업 분위기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둘을 각자 따로 불렀다.

각자 이야기 끝에 공통으로 들었던 말이 있다.

“팀장님이 눈치 못 챈 줄 알았어요. 그냥 기다리기만 하시길래.”


그 말이 아팠다. 팀장은 누군가의 감정을 판단하진 않지만, 조용히 무너지는 상황을 가만히 지켜봐선 안 되는 자리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들에게 당분간 직접적인 협업을 줄이는 방향으로 스케줄을 조정했다. 공식적인 사유는 프로젝트 재분배였고, 그 뒤로 두 사람은 조금씩 다시 평정심을 찾았다.


그래서, 팀장이 싸움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늘 정답을 고민했다.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면서, 누구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결국 알게 된 건 이것이다.


갈등은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감정은 감정으로 다가가야 하고,

싸움은 싸움 자체가 아닌 그 뒤의 '이유'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팀장은 해결사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 뭐가 불편했을까?"

"무엇이 이 마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어떻게 다시 어울릴 수 있을까?"


나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들여다보려는 마음이 없는 팀장은, 아무도 다시 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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