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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대로인 것 같은데, 늙었음을 느낄 때

by 구르미

대학생 때 만 해도 나름 대식가였다. 대학교 후문에서 팔던 홍익돈가스 보다 더 큰 돈가스도 혼자서 너끈히 먹을 수 있었다.


특히 학원에서 아르바이트할 때에는 거의 체할 수준으로 먹어도 수업 한 시간 하고 나면 배가 고파졌다. 그때 오랜 경력의 선생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었다.


"말 많이 하고 세게 하면 기력이 빠져서 나중에 고생한다. 살살 꼭 필요한 말만 해라."

"그래서 밥 많이 먹잖아요 ㅎㅎ"


이렇게 웃으며 답했던 기억이 난다.


예전 기억을 떠올리며 가족과 홍익돈가스를 가서 자신 있게 커다란 기본 돈가스를 시켰다. 먹을 때만 하더라도 신나게 먹었는데, 먹고 나서 탈이 났다. 저녁 내내 속이 불편했고, 심지어 헛구역질까지 났다.


속이 불편한 것보다 속이 슬펐다. 특히 소화능력은 나이 듦을 절실히 실감하는 부분이다. 많이 못 먹는 게 그렇게 서글플 수 없다. 난 더 먹고 싶은데.. 난 더 마시고 싶은데..

먹는 것 말고도 큰 변화는 운동이다.

대학생 때는 참 체력이 좋았었다. 농구를 잘 하진 못했지만 농구코트에서 주말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뛰어도 다음날도 또 뛸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뛰었다간 무릎이 아파 며칠을 앓아야 한다. 한 번은 아이와 함께 축구를 하다가 다른 가족이랑 경기를 뛰었는데, 분명 예전이면 더 잘 뛰었는데, 5분을 못 넘기고 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고관절이 아파서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마음은 아직 호날두인데, 몸은 영락없는 40대 아저씨다.


인생은 결국 적응과 인정의 연속인 것 같다. 태어나서 폐로 호흡하며 바깥공기와 적응하고, 내 몸이 커지는 것에 적응하고, 이젠 내 몸이 늙어가는 것에 적응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적응 보단 인정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이미 내 몸은 적응하고 있는데 내가 인정을 못하는 게 문제일 테니까.


비록 많은 양은 못 먹겠지만, 대신 더 많이 이야기하며 남는 먹는 시간을 채우고, 격하게 운동은 못하더라도 주변을 날씨를 계절을 느끼며 숨 가빴던 시간의 일부를 채워야겠다.


나이가 더 들면, 지금을 더 그리워하고 아쉬워할 때가 오겠지. 지금의 내가 젊었을 때의 나를 부러워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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