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온도

얼음과 촛불 그 사이

by 오리온

나는 나를 비난하는 말이라면 수도 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 날카롭고 독하다. 그런데 막상 나를 위로하려고 하면, 이상하리만큼 딱딱한 로봇 같은 문장만 떠오른다. 어쩌면 그만큼 나조차 나를 잘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최근 들어 ‘군중 속의 외로움’이라는 말을 자주 곱씹는다. 카페, 지하철, 도서관… 사람들은 각자의 이어폰을 꽂고, 노이즈 캔슬링 속에 갇혀 있다. 우리는 한 공간에 있지만, 서로의 세계에 들어가지 않는다. 어쩌면 모두가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그 장면 속에는 묘한 역설이 있다.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의 문을 걸어 잠근 사람들, 그리고 그 사이에 번지는 정적. 그 순간 나는 문득,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조용히, 그러나 치명적으로 우리를 잠식하는지를 실감한다.


내게 외로움은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언제나 있다. 태양이 지면 달빛이 대신 따라붙고, 그마저 없는 암흑 속에서도 내 안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만약 피터팬 애니메이션 속 장면처럼 무엇이든 차곡차곡 접어 넣을 수 있다면, 나는 제일 먼저 이 외로움부터 접어 넣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이런 감정을 유난히 깊게 느끼는 사람이었다. 때로는 궁금했다. 왜 인간에게는 이토록 사무치는 외로움이 꼭 필요할까.


그 답은 아마 이럴 것이다. 외로움 속에서만, 외로움을 견디고 있는 나를 마주할 수 있기 때문. 외로움은 나를 꺾지 않고, 대신 나를 깨우치는 역할을 한다. 고요 속에서 웅크린 나를 발견하고, 그 모습을 조금씩 다독이는 것. 그것이 내가 외로움과 공존하는 방식이다.


물론 쉽지 않다. 아프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세상은 때로 잔혹하다. 그런데도 이런 세상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 있는 내가 대견하기도 하다. 동시에 세상을 사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밉기도 하다. 미움과 원망, 사랑과 애정이 뒤섞여 내 마음을 두드린다.


이럴 땐 차라리 할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강제로 해야 하는 일도 없으니, 나는 그 모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내야 한다. 바람은 단 하나다. 내 안의 감정들이 있는 그대로 수용되기를. 엉킨 실타래가 한 올씩 풀리듯, 조금씩 나를 자유롭게 하기를.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온도는 바꿀 수 있다. 차갑고 날 선 감정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감싸 쥘 수 있는 온기로. 언젠가 나는 그 온도를 나 스스로 데워서, 더 이상 나를 찌르지 않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