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당신이 가지를 붙잡을 때까지
25년도 목표가 있었다. 두 가지였다. 나무의사 자격증을 따는 것, 그리고 폴리텍 대학교 무사히 졸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반기를 맞으며 두 가지 다 어처구니없이 실패하고 말았다. 나무의사 시험은 일자를 착각해 기회를 날려버렸고 폴리텍 대학교는 교수에게 성희롱 발언을 들은 뒤 모든 의욕을 잃고 자퇴를 했다.
결과 없는 목표들은 나를 허무하게 만들었다. 세상이 끝도 없이 불행을 나에게만 맡기는 것 같았다.
살아가는 것조차 지긋지긋했다. 왜 나는 여성으로 태어나 성추행 발언에 시달려야 하고, 신체적 한계 때문에 기술직에서 밀려나야 하는지. 하지만 세상에는 이 모든 걸 이겨내고 인정받는 여성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끝내 이겨내지 못한 나는 나약한 사람이어서, 애초에 잘 살아갈 수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를 옭아맸다.
자기혐오의 늪에 빠지는 건 쉬웠다. 내 주변 사람들은 이미 경제적, 관계적 안정을 찾아가는데, 나는 그 뒤에서 다리가 잘린 채 주저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내 삶이 혐오스러웠다. 여성으로서의 나, 나약한 나, 도망치는 나, 꼼꼼하지 못한 나. 내 생각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들어가 끝없이 잡아끌려 내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늪 속에 잠겨 숨이 막힐 때면 어김없이 누군가가 찾아왔다. 신의 뜻인지, 인연인지 알 수는 없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끌어올려주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안부 연락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지만, 잠시나마 고개를 들어 숨을 돌릴 만큼의 힘은 되었다.
고개를 들면 숲이 보였다. 늪도 있었지만, 그 사이로 아름다운 나무도 서 있었다. 나무들은 가지를 뻗은 채, 내가 늪 속에서 빠져나오길 담담히 기다리고 있었다. 내 의지만 있으면 그 가지를 잡을 수도 있었다. 가지들은 가까운 듯 멀리 있었지만, 분명 내가 손을 내밀면 분명 닿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 그들은 재촉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나를 기다려주었다. 나는 가지를 바라보고 있다. 부디 언젠가 내가 그 가지를 잡을 수 있길, 그리고 언젠가 그 가지 자체가 내가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