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아름다움

탄생과 죽음에 대하여

by 오리온

생명이 존재하기에 아름답다고 믿을 수 있을까?


우리는 흔히 존재의 가치를 외부 조건-돈, 명예, 권력, 관계-에 기대어 판단한다. 그러나 그런 조건을 모두 벗겨내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될까? 그렇지 않다. 결국 남은 것은 ‘존재 그 자체’뿐이다. 그렇다면 이 존재가 아름다울 수 가 있는가. 그것이 나의 오래된 질문이었다.


내가 태어나는 순간, 이미 나의 존재는 우주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우주는 나를 인지한다. 일부가 된 나 또한 우주를 인지한다. 이 상호 인지는 곧 인정이다. 그러나 우주는 나에게 어떤 과업도 떠밀지 않는다. 돈을 벌라, 직장을 가져라, 나이에 맞게 행동하라, 명예를 쌓으라, 인류의 우월한 존재가 되라-그런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우주는 다만 인정한다.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존재란 무엇일까?


살아가다 보면 마음은 흔들리고, 생각은 저 멀리 흘러가며, 현실은 끊임없이 변한다. 이 모든 것들은 가역적이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우주는 이 사실을 결코 거두지 않는다.


죽음조차 예외가 아니다. 우주는 죽음을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죽은 상태를 또 하나의 존재로 받아들인다.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을 강요하지도, 죽음 이후를 따지지도 않는다. 오직 ‘존재했음’을 인정할 뿐이다. 그렇다면 ‘살고 싶지 않아 죽는 것’은 어떻게 될까? 그것은 존재가 아닌 ‘가역적인’ 감정일 뿐이다. 우주는 감정의 파동을 문제 삼지 않는다. 그저 변하지 않는 사실, 곧 ‘살아있음’과 ‘살아 있었음’을 인정할 뿐이다.


그렇다면 존재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존재의 아름다움이란, 우주가 우리를 요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감정을 품든, 설령 실패와 불안, 죽음의 그림자 속에 있더라도, 존재 그 자체는 이미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


결국 존재의 아름다움은 성취에 있지 않다. 그저 살아 있음에 있다. 우주는 묻지 않고, 그저 받아들인다. 이 단순하고도 거대한 수용 속에서, 나는 비로소 존재의 평온함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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