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자로써 내 편 되어주기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할 때

by 오리온

긴 연휴가 끝났다. 부모님을 뵙고, 친척들을 만났다. 그 과정에서 느낀 건, “너를 사랑해서”라는 말도 결국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말 속엔 분명한 애정이 있지만, 때로는 그 투박한 방식 때문에 단단하다고 믿었던 내 마음과 자신감이 조금씩 금이 가버리곤 한다.

이럴 때 내가 해보는 방법이 있다. 바로 ‘제3자’를 내세워, 그가 나를 온전히 이해하고 내 편에 서주는 말을 하게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무조건적인 편들기’가 아니다. 제3자는 나의 감정을 대변하면서도 객관성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만 그 말이 나를 납득시키고, 다시 나를 세워주는 힘이 된다. 그래서 오늘은, 연휴 동안 부서졌던 마음을 다독이는 나만의 방식, 즉 ‘제3자의 시선으로 나를 감싸주는 글쓰기’를 공유하려 한다.


나는 00이 모임 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가볍게 다룬 일로 상처를 받았다.

그는 내 말과 행동을 ‘남자에게 환장한 사람’, ‘사람을 볼 줄 모르는 미성숙한 사람’으로 몰아갔다.
그 순간 나는 그 말에 대해 방어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히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고, 사실 나도 나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던 사람을 만났던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무 말하지 않은 선택이 오히려 나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때 나는 ‘모임의 어색함’을 피하고 싶어, 나를 주제로 한 대화가 이어지는 것을 그냥 두었다. 그러나 그건 나를 지키지 못하는 방식이었다. 내가 상처를 입을 것을 예상하더라도, 내 시점에서 사실을 바로잡는 용기가 필요했다.

물론 그 일은 내 잘못만은 아니다. 00 역시 잘못이 있었다. 그는 내 감정의 무게를 헤아리지 못했고,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나를 가볍게 다루었다. 그건 그의 미성숙함이고, 관계의 한계였다.
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제는 그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이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할 뿐이다.


나는 갈등과 분쟁이 지겹다. 상처를 표현하는 일은 종종 새로운 싸움을 부른다. 그래서 나는 ‘표현 대신 정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제3자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차분히 분석한다. 그리고 내 마음의 편에서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준다. 이건 단순히 타인을 비난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한계와 나의 감정을 함께 이해하려는 시도다. 원망이 아닌 인식으로 나아가는 과정, 자책이 아닌 관찰로 나를 감싸는 과정이다.

연휴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이들이 있다면, 이 방법이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모든 관계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든, 다시 나의 편이 되어 나를 돌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