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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Dec 13. 2021

엄마의 남자

- 아리스가 된 엄마

 친정에 가면 온갖 트로트 경연을 본다. 티브이를 잘 보지 않는 나는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은데 엄마, 아빠는 처음 보는 그 사람들의 이름부터 힘들게 살아온 사연까지 안타까워하며 나에게 스토리를 알려주신다. 하지만 내 귀엔 그 조차 비슷한 스토리이다. 마치 자식이 티브이에라도 나온 듯 '잘한다~!'며 추임새를 넣고 탈락의 기로에서 안타까워하신다. 이건 마치 삼십 년 전쯤? 뉴키즈 온 더 블록이라는 이름도 긴 해외 아이돌을 가족보다 소중히 여기던 내 모습과 비슷하다. 스텝 바이 스텝~~!!




 엄마의 최애 가수는 김호중이다. 전 국민이 난리였다는 미스터 트롯을 보지 못한 탓에 나는 '우리 호중이~우리 호중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엄마의 성화에 ARS 투표까지 했다. 엄마는 호중이 노래를 들으면 산더미 같은 열무를 다듬어 김치를 담그고도 힘든 줄 모르고, 기름 냄새 자욱한 명절 음식 준비도 가뿐하다고 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컬러링도 호중이, 휴대폰 바탕화면도 호중이니 온 세상이 호중이 투성이다. 엄마 친구분들과 보라색 호중이 팬 티셔츠를 맞추어 입고 섰을 땐 나도 모르게 한 걸음 거리를 두고 섰다.


 어느 날 컴퓨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엄마는 가족 단톡에 다음 날 아침 9시, 소년소녀 합창단 공연 티켓을 예매해 달라고 했다. 아이들 공연이 뭐라고 아침 9시부터 예매를 하냐고 시큰둥한 내게 게스트로 김호중이 나오니 꼭 기다렸다 9시가 땡 하면 티켓을 구해야 한다고 첫째, 둘째, 셋째, 막내까지 신신당부를 하셨다. 한 사람당 예매가 가능한 티켓은 네 자리인데 얼마나 넉넉하게 앉겠다고 열여섯 자리나 구하냐며 놀렸지만 엄마는 진지했다.

 

 다음날, 9시면 아이들 등교 때문에 나갔다 오면 아슬아슬한 시간이니 미리 컴퓨터를 켜 두고 예매 창을 켜 둔 뒤 나갔다. 나도 소싯적 콘서트 티켓 예매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든 전적이 있는 터라 소년소녀 합창단쯤이야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아이들을 보내고 부랴부랴 들어와 앉으니 8시 52분, 아직 여유가 있다. 가족 단톡엔 벌써 '준비됐나?~ 준비됐다!' 다들 핸드폰에 컴퓨터에 붙들고 앉아 9시가 되기만을 기다린다. 단톡방엔 9시가 다가올수록 긴장감이 돈다. 이게 뭐라고 노트북을 앞에 두고 앉은 나도 오랜만의 클릭을 앞에 두고 검지 손가락이 까딱거리며 대기 중이다. 9시! 핸드폰 시간이 바뀌자마자 예약 버튼을 눌렀다. 좌석을 지정하고 4매 예약 성공! 단톡방에 성공을 알리자 하나 둘 연락이 왔다. 놀랍게도 예약 성공자는 나뿐이다. 이런 금손 같으니라고.


 엄마 한자리, 딸과 아들 나까지 총 네 자리를 맞추었다 했지만 엄마는 주변 사람들의 자리를 챙기지 못해 안타까워했다. 굳이 나까지 갈 필요도 없어 사양했지만 곧 주변분들은 어디선가 서로서로 자리를 맞추어가며 찾아내시더니 나에게까지 기회가 왔다. 아이들에게도 소년소녀 합창단 가입을 권유할만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데려간 공연장은 코로나로 한 자리씩 비워 앉기는 했으나 꽉 차 있었다. 경기도와 서울 쪽에서 버스를 대여해 오신 분들은 입장 불가라 슬프게 버스를 돌려야 했다고 한다. 창원 소년소녀 합창단 공연에 낀 게스트를 보겠다고 그 먼 거리를 헛걸음했을 분들 생각에 안타까웠다. 생각보다 아이들의 공연이 볼만했고 우리 아이들도 한번 시켜볼까 하는 욕심에 관심을 가졌으면 했지만 고개를 돌려 바라본 아들은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하아... 도대체 넌 관심사가 무엇이냐?

 

 어느새 시간이 흘러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마침내 그분이 나왔다. 어머님들의 그분! 코로나로 인해 환호는 금지되니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묵묵히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딸과 달리 공연 시작과 함께 잠이 든 아들은 박수 소리에 깨 얄밉게도 시간을 맞추어 김호중의 노래만 들었다. 엑기스만 쏙쏙 빼먹는 희한한 녀석. 강약을 조절하며 부드럽게 시작해 힘 있게 올라가는 고음에 다시금 박수가 쏟아졌다. 9시부터 뚫어져라 모니터를 바라보며 예매한 보람이 있었다.

 

 아이들과 밖으로 나오는 차 속에서 길 가로 길게 선 사람들을 보고 '아이고, 길이 엄청 막히겠구나' 걱정을 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차는 쑥쑥 잘 빠져나간다. 자세히 보니 차가 문제가 아니라 온통 김호중이 나오기만을 기다려 줄 지어 서 있는 사람들이었다. 엄마 연배쯤 되어 보이는 분들이 설레는 표정으로 이제려나 저제려나 기다리는 모습이 삼십여 년 전 내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니 참으로 신기해 눈을 크게 뜨고 아이들과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엄마는 변함없는 호중 씨의 팬이다. 보랏빛 호중이 티셔츠에 호중이 CD를 백장씩 플렉스 하시고 이리저리 배포하신다. 그런데 막상 딸인 나는 받아보지도 못했다. 아들 살은 신경도 안쓰면서 호중이는 살이 빠져 인물이 난다고 흐뭇해 하지만 내 눈엔 그 얼굴이 그 얼굴인 듯 해 영혼 없는 대답만 해 드릴 뿐이다. 이비인후과에 들렀다 간 약국의 약사님도 호중이 팬이시라 두 분은 엄마와 형님 동생 하는 사이가 되셨다.( 언니, 동생도 아니고 왜 엄마들은 형님, 동생이라고 할까?) 얼마 전 김장 땐 버무린 배추 두쪽을 들고 사라져 약사님과 놀이터에 앉아 한참을 돌아오지 않으신 우리 오여사님, 호중이 얘기 실컷 하시고 오셨으려나. 문득 뉴키즈 온 더 블록 비디오를 보며 함께 소리 지르던 이제는 얼굴도 희미한 지은이가 그리워진다.


나의 기대를 무너뜨린 아들의 일기. 또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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