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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Dec 10. 2021

1985년, 에코백

- 너무 이른 패셔니스타

 딸과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옷부터 신발, 책가방, 학용품까지 모든 것이 반듯하고 깔끔한 새 것이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지만 미리 사둔 옷을 손도 못 대게 하고 잘 다린 후 접어 놓고선 입학식 당일에야 조심조심 꺼내어 입혀 학교로 갔다. 옷이 구겨질세라 단속을 시키고 교실 책상에 바르게 앉아 가방을 책상 옆에 건 아이를 보고야 만족하며 돌아왔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체육복이 일상이고 운동화는 구겨 신게 되었지만...




  나의 국민학교 입학식은 초보 엄마의 실수 투성이었다. 어찌 된 일이었는지 학교 배정이 잘못되어 다른 학교를 가서 입학생 명단에 내가 없음을 확인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입학식은 해보지도 못하고 다음날부터 다시 찾은 학교에서 반학기 가량을 다니다 전학을 가게 되었다. 6개월, 짧으면 짧은 시간이지만 난 담임 선생님도 아닌 교장 선생님 눈에  특별한 학생이었다. 천재성이 돋보이거나 내 뛰어난 외모 뒤로 후광이 비쳐서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작은 오해로 인한 관심이 나를 특별 대상자로 만들었다.


 지금은 상태가 나아졌으나 난 다른 사람의 이목에 큰 관심이 없었다. 여름에 긴 팔을 입고 겨울에 반팔에 슬리퍼를 신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나는 요즘도 당당하게 씻지 않고 쌩얼로 외출을 하거나 스타킹 올이 나가도 '아 그런가요?' 하고 내버려 둬 눈 테러의 주범이 되곤 한다. 남편이 명품이라도 사준다면 기꺼이 받아 챙기겠으나 몇 번 지갑을 잃어버린 후 대체용으로 비닐 지퍼백에 돈을 담아 다녀 이건 또 무슨 궁상이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듣는다. 그래도 유유상종이라고 친한 친구의 지갑은 상품권 봉투라 마음이 편안하다.


  어릴 적 남 신경 안 쓰는 성격 탓에 엄마가 마음고생을 하시기도 했다. 시험을 보는 날, 다 풀고 시간이 남자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전과를 펴 읽고 있는 나를 선생님이 보시고선 "지금 뭐 하는 거니?"라는 대답에 "전과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하교 후 선생님은 아이가 시험 스트레스가 심한 것 같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주셨다. 엄마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물으셨다. 그러나 시험은 다 보았고 남는 시간이 심심해 꺼내 읽었다는 내 말에 부정행위는 걱정하지 않으셨다. 충분히 그럴 만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책을 놔두고 와 운동장 한가운데로 흙먼지 풀풀 날리며 집으로 가는 나를 때마침 동생들과 운동장에 계시던 엄마가 발견하기도 했다. 내 새끼였다면 눈물 바람으로 상담이라도 받으며 가슴 칠 딸이지만 엄마가 내 특이한 성격으로 나름 덕을 본 적도 있었다.




 국민학교 1학년이 된 후 몇 주 동안 나는 학교에 다들 는 네모 반듯한 책가방이 아닌 손뜨개 가방을 어깨에 메고 갔다. 책가방을 서울에 계신 외숙모께서 사주신다는 게 시기가 좀 늦었던 모양이다. 엄마에게 떼를 썼거나 할아버지께 말씀드렸다면 당장에라도 오셔서 사주셨겠지만 아이가 괜찮다니 가방이 올 때까지 난 엄마의 뜨개 가방에 책과 필통을 넣고는 한쪽 어깨에 메고 다녔다. 그 특이한 모습이 아침 등굣길 학생들을 맞으시던 교장 선생님 눈에 띈 모양이다. "얘야, 넌 가방이 없니?" 안쓰러움을 가득 담아 조심스레 물어보시는 교장 선생님께 "네, 아직요."라고 대답했다. 아직요, 라는 대답에 '가방이 오지 않았습니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으나 사정을 알 리 없으신 교장 선생님께서 "엄마가 가방을 사주시지 않던?"이라고 다시금 질문하셨다. 엄마가 아니라 외숙모께서 사주시기로 하셨으니 "네 사주시지 않았는데요."라는 나의 말에 안타까움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손녀뻘 되는 아이를 앞에 두고 교장 선생님 눈은 동정의 기운이 가득하다. 그래도 내가 '이게 아닌데...' 정도의 눈치는 있었던지 주저리주저리 이어진 사정 얘기에 마음을 놓으셨다. "아니 그걸 왜 빨리 안 보내주고..." 가방은 내가 메는데 애간장은 교장 선생님께서 탔다. 얼마 뒤 빨간색 가방을 받고 등교하는 길, 등을 돌려 교장 선생님께 가방 확인을 시켜 드리고 교실로 들어갔다. 6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손뜨개 에코백 덕에 1학년 햇병아리 학생이 교장 선생님과 인맥을 쌓았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진정한 패셔니스타는 나였다고 우긴다. 이효리도 에코백을 나보다 빨리 쓰진 않았을 것이라고. 심지어 내 것은 핸드메이드였으니 패션쇼 앞줄에라도 앉아 있어야 할 내가 시대를 잘못 태어나 빛을 보지 못한 채 무난이스타로 산다고 말이다. 입학식에 그 가방을 메고 갔다면 전교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우주 대스타가 되었을지 모르니 엄마의 실수가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눈치를 보지 않는 내 성격도 성격이지만 무엇보다 혹여 상처 받지 않을까 조심스레 살피고 모른 척해주었을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고맙다.  마디 던질 법도 한데 호기심 많은 국민학생들 중 아무도 내게 가방의 출처나 디자인에 대해 묻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지금까지 당당히 사용하는 나의 지퍼백 지갑은 모두 기억조차 희미한 그분들 덕. 참으로 배려 넘치는 삶이었음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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