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체계적인 정신건강 지원 필요
한밤중 삼엄한 감시를 뚫고 압록강과 두만강을 넘었다. 일부는 국경수비대에 잡혀 끌려가 군홧발에 무참히 밟히거나, 종신 노동에 처했다. 국경을 넘어온 다른 이들은 인신매매와 성폭행 등 비인간적인 대우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기도 했다. 중국 내륙을 관통해 동남아시아를 거쳐 한국에 들어온 3만4000여 명은 인생의 운을 모두 쏟은 것이었을까. 이 모든 게 오매불망 자유를 갈망하던 탈북민들이 겪었던 이야기지만, 정작 정신적 자유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탈북민들은 하나원을 거쳐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을 시작한다. 그러나 많은 탈북민들이 정신과 진료를 거부하는데, 이는 단순한 두려움 이상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정신적 문제가 사상의 결함으로 인식된다. 이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사상의 문제로 치부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탈북민들은 우울증,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불안장애 등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음에도 정신과 진료를 피한다.
북한이탈주민의 정신건강서비스 이용 실태(2018)에 따르면 탈북민 중 약 21%가 정신질환을 진단받았지만, 이들 중 28.8%만이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했다고 한다. 특히, 탈북민들은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신체적 증상으로 표현하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을 우려해 치료를 꺼린다. 이는 정신건강에 대한 낮은 인식과 사회적 낙인 때문이며, 이로 인해 치료가 늦어지거나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탈북민들의 정신적 문제는 단순히 남한 사회 적응의 어려움만이 아니다. 그들은 과거 북한에서의 정신적 충격과 탈북 과정에서 겪은 고통이 남한에 와서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55.6%의 탈북민이 PTSD 증상을 보였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적응장애와 불안증세를 겪고 있다. 그러나 정신과 방문은 낙인과 두려움 때문에 꺼려지는 현실이다.
탈북민 A씨는 남한 정착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았지만, 주변의 시선을 두려워해 오랫동안 치료를 미뤘다. A씨는 마음에 어려움이 있느냐는 의료진에 질문에 "없어요. 제가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라고 답했다. 그는 이러한 심리 상담이 형식적으로 느껴졌다고 봤다.
북한에서는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 자체가 거의 없으며, 정신건강 문제는 사상과 혁명적 충성심의 문제로 간주되기에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 자체가 위험했다. 북한의 '49호 병원'은 이러한 분위기를 상징하는 시설로, 정신질환자가 치료를 받는 곳이지만, 실제로는 범죄자들이 피신하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한편 탈북민 중 상당수는 남한에서도 고립감을 느끼고, 경제적·사회적 적응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북한이탈주민의 남한 사회 적응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2008)에 따르면 남한인과의 관계가 좋을수록 탈북민의 적응도가 높아지지만, 대부분은 가족과 떨어져 살아 외로움과 죄책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정신적 고통이 더해지며,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 탈북민의 우울증은 자녀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자녀의 학교 적응과 사회적 관계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탈북민들은 직장 구하기 어려움, 정상적인 활동 저하, 알코올 남용 등으로 이어지는 우울증과 PTSD 증상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한 자살 위험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정신건강 치료는 여전히 부족하다. 사회적 낙인과 문화적 차이로 인해 탈북민들은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외면하며, 이로 인해 더욱 심각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
따라서 탈북민을 위한 체계적인 정신건강 지원이 필요하다. 지역사회 내 상담과 치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북한과 중국에서의 생활과 탈북 과정에서 겪은 정신적 후유증을 고려한 맞춤형 치료와 상담이 시급하다. 탈북민들이 자신을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지 않도록, 정신과 진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줄이는 공익 캠페인이나 탈북민 대상 맞춤형 심리 상담 프로그램 개발이 요구된다.
결국, 탈북민의 정신건강 문제는 남한 사회와 이들이 속한 공동체에 모두 영향을 미치기에 긴급한 해결이 필요하다. 통일 이후 급격히 증가할 수 있는 심리적 외상 증후군과 자살, 물질의존 문제에 대한 진단 및 치료 체계를 마련하고, 정신장애에 대한 편견을 해소해야 한다. 통일을 대비한 정신의학적 준비가 선행돼야 하며, 탈북민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치료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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