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배달된 편지가 세상을 구할까

아즈마 히로키의 『관광객의 철학』을 읽고

by 익명의 독서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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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한 시대다. 누군가는 국경을 봉쇄해야 한다며 배외주의를, 누군가는 국경의 해체를 말한다. 전쟁과 독재, 그에 대한 반란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평화의 시대라며 노래하던 십몇 년 전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위태로운 칼날 위에 서 있다.

*쇼비니즘(chauvinism) 또는 배외주의는 사회집단의 다른 사회집단에 대한 배척적·적대적 태도 내지 심정을 말한다


그런 현재 상황에서 철학자이자 작가인 아즈마 히로키는 '관광'을 말한다. 정치, 올바름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재밌는 것을 찾아 떠나는 관광객이 세계 평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자칫 얕아 보이는 제목과 다르게 이 책은 현대 철학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가와 그들의 저작을 폭넓게 인용하고 있다.



국가와 인간의 정의


관광은 무엇인가? 내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떠나는 것이다. 관광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나라'를 정의해야 한다. 그렇기에 이 논의는 나와 타자를 분리하는 것에서 출발하며, 저자는 이를 철학의 근본이라고 이야기한다.

p.8 철학은 줄곧 논의의 쟁점을 뚜렷하게 하고 친구/적의 관계를 명확히 해 세계 속에 근본적인 선을 긋는 것만을 추구해 왔다. 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잃게 되는 것이 있다.
p.35 각주) 셋의 '타자'관 차이를 아주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성을 통해 타자와 서로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하버마스(근대주의자)고, 타자란 서로 알 수 없는 존재기 때문에 타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데리다(포스트모더니스트)며, 애초에 타자의 정의를 심화해 봤자 의미가 없으니 각 국면마다 다른 뜻으로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로티(실용주의)다.

1부에서 인용하는 카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카를 슈미트는 정치를 친구/적 이론으로 설명한다(p.110). 미학적인 판단은 미추의 이항 대립이며, 윤리적인 판단은 선악의 이항 대립이다. 공동체(친구의 공간)는 내부(친구) 외부(적)의 구분 위에 성립된다. 슈미트는 이 사상에 따라 나치 독재를 지지하고 유대인 배제 정책을 추진하게 된다.


칸트의 국가


칸트는 영원한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국가상으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1) 공화주의 국가 체제 : 여기서 공화주의는 행정권과 입법권의 분리를 말하며, 통치자의 수와 관련 있는 민주주의와는 다르다. 오히려 칸트는 민주주의를 부정했다.

2) 국제법의 연합제 : 이는 국제연맹과 유엔의 기초가 되었다. 결과적인 평화 실현, 소극적 대체물

3) 세계 시민법 : 보편적인 우호를 가져오는 제반 조건의 제한을 받아야 한다. 이때 방문권은 국가 연합에 참가한 국가의 국민이 서로의 국가를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음을 말하며, 우호의 권리까지는 확장되지 않는다. 이는 관광할 권리로 연결되며 국제 질서에서 배제해야 할 '불량 국가'를 제외한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의 시사점이 높다(p.100-101)


헤겔의 국가와 인간


헤겔에 따르면 국가는 그 구성원이 같은 땅에 살고 역사를 공유하며 하나의 사회를 형성하는 단일한 민족의 일원으로서 자기의식을 가졌을 때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다(p.112)

p.113 이기적 목적은 자신을 실현할 때... 보편성의 제약을 받게 된다. 이는 사람이 주관성과 객관성, 특수성과 보편성, 즉 공과 사 사이에서 분열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민사회에서 인간은 쉽게 말해 사랑 안에서 자족하는 존재일 수 없게 되고, 자기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사회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따위밖에 생각할 수 없는 존재가 된다.

*헤겔 철학에서 보편성은 개념의 논리적 총체성과 통일성을, 특수성은 그 보편성을 구체화하는 규정적 차이와 한계를 가리킨다. 시민사회에서 개인의 이기적 목적(특수성)은 보편적 규범(공공선)에 제약을 받기 때문에, 그 개인은 반드시 분열을 겪는다.


헤겔은 이 분열을 국가가 봉합할 수 있다고 보았다.

p.113 헤겔에 따르면 사람은 국가에 속해 국민이 되었을 때 비로소 공적 = 국가적인 의지를 사적인 의지로 내면화하고 보편성을 특수성 안에서 경험하게 된다.

그렇기에 헤겔은 "개개인의 최고 의무는 국가의 성원으로 존재하는 것이다."라고 선언하였다. 이는 '국가 의지'의 개념과 이어져 내셔널리즘의 토대가 된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을 주장하며 '일반 의지'를 이끌어 냈다면, 헤겔은 역사적 변증법을 주장하며 '국가 의지'를 이끌어낸 것이다.

p.123 (코젤이 해석한) 헤겔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 존재를 걸고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환경을 변혁해 가는 존재다. "인간은 자신의 인간적 욕망, 즉 타자의 욕망을 향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자기 생명을 위험에 빠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한다.... 이 진정한 존엄을 얻기 위한 생사를 건 투쟁이 없었다면 인간적 존재자는 지상에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존엄을 잃고 타인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않으며 주어진 환경에 자족하는 존재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 해도 정신적으로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
코제브와 헤겔의 생각이다(p.124)

나는 이 정의가 마음에 들었다.

p.125 전후 미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존엄을 잃고 타인의 인정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주어진 환경에 자족하면서 쾌락을 얻기 위해 상품을 살 뿐인 동물적 소비자의 무리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들의 정의에 따르면 포스트-역사 이후 국가·정치 투쟁 없이 소비에 자족하는 현대인은 동물과 다름없다.

p.127 국가나 민족과 상관없이, 타자의 인정도 환영도 원하지 않으며 오로지 개인의 관심만을 기준 삼아 들떠서 다니는 관광객은 바로 위와 같은 이유로 '동물'이라 할 수 있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

한나 아렌트 또한『인간의 조건』에서 생물학적 인간이 아닌 철학적 조건을 제시한다.

그녀에 따르면 사회적 행위(activity)는 활동 action, 일 work, 노동 labor 세 가지로 분류된다(p.127-8).

활동(action): 고유명성 있는 공적 행위(고대 그리스 정치), 타자 필수.

일(work): 인공 세계 창조.

노동(labor): 생물학적 행위(익명, 타자 없음, 생명력의 매매).

근대로 접어들면서 활동이 일로 대체되었으나 이 승리가 곧바로 노동으로 대체되었다고 얘기한다(p.129,『인간의 조건』p.464 재인용 ). 활동은 얼굴을 거는 정치적 행위를, 노동은 익명성이 있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예시를 든다. 우리는 노동을 하면서 내 이름을 얘기하지 않는다.


p.135 '노동하는 동물'의 여가 시간은 소비 이외로는 쓰이지 않고, 시간이 남으면 남을수록 그 식욕은 탐욕스러워지고 갈망이 커진다.... 그런 유토피아에서 탄생하는 것은 행복을 추구하는 대중문화일 뿐이어서 인간의 삶에 어떤 의미도 부여해 주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아렌트는 인간의 행위에서 공사의 영역을 철저히 구분했다. 다만 이 이론은 고대 그리스가 노예제 위에 세워졌다는 하부-상부구조에 의해 비판받는다.


이렇게 저자는 슈미트-코제브-아렌트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며 전통적인 타자론이 어떻게 내셔널리즘으로 이어졌는지 탐구한다.


내셔널리즘-글로벌리즘

공동체에 대한 정의로부터 우리는 내셔널리즘-글로벌리즘 논쟁을 이해할 수 있다.

p.117 슈미트가 글로벌리즘을 거부하는 이유는 단적으로 그것이 친구/적의 구별을 없애고 정치 자체를 없애기 때문이다 ··· 자유주의는 국가의 필요성을 경제나 도덕으로 환원한다.

슈미트의 관점에서, 글로벌리즘이 아무리 경제적 이익을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용납될 수 없다. 정치, 나와 타자의 구분을 없애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국민임을 자각하고 세계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보편성을 손에 넣는 방법을 모색하자(p.121)고 이야기한다.

p.145 내셔널리즘에서 국가와 시민 사회는 각각 단일 실체(네이션)의 정신과 신체에 비유된다.

프로이트는 상반신을 사유의 공간으로, 하반신을 욕망으로 보았다.

저자는 국가=정치(사유)와 시민사회=경제(욕망)이라는 이분법적 대응을 제시하지만, 21세기 세계에서는 이 전제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도 언급한다(p.146).

국제정치에서 말하는 두 이론이 따로 적용되는 것이 아닌, 이중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경제는 연결되어 있으나 정치는 분리되어 있는 시대이다(p.150).

p.147 달리 말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21세기 세계에서는 국가와 시민 사회, 정치와 경제, 사고와 욕망이 내셔널리즘과 글로벌리즘이라는 이질적인 두 원리에 따라 통합되는 일 없이 각기 다른 질서를 구축하고 말았다.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독립성을 잃고 하나로 연결된 '신체'(시민사회) 위에 따로따로 '얼굴'(국가)만 있는 그림이 될 것이다.













자유지상주의와 공동체주의

로버트 노직은 『아나키, 국가, 유토피아』에서 "국가는 최소국가일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고, 그 이상 확대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하며 자유지상주의의 기초를 닦았다(p.152).

반면 공동체주의는 마이클 센델의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에서 그 시초를 찾을 수 있다(p.155). 공동체주의는 보편적 정의보다 공동체의 선을 중시하는 사회 윤리적 입장이며, 현실에서 정치 이론은 특정 공동체의 특정 가치관(정의 x 선)을 내재한 주체만을 전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p.180 우리가 지금 '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한마디로 보편주의 프로그램이다. 모든 인간의 모든 권리가 동등하게 인정되고 모든 인간의 모든 존엄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관용의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바로 이 보편주의 프로그램이 무너져 내리는 시대를 살고 있다.

자유지상주의는 글로벌리즘으로 이어졌으나, 권리와 존엄에 대한 존중 없이 소비적(동물적) 쾌락만이 남았다. 공동체주의는 내셔널리즘으로 접합되며 보편적인 정의를 잃어버렸다. 저자는 두 사상의 논쟁을 언급하며 이렇게 정의한다.

p.158 자유지상주의에는 동물의 쾌락만 있고 공동체주의에는 공동체의 선만 있다. 이대로는 어디에도 보편과 타자가 없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사상적 역경이다.


글로벌리즘과 제국주의

그렇다면 글로벌리즘이 가져올 새로운 질서는 무엇인가? 저자는 네그리와 하트의『제국』을 들며 그건 제국주의라고 얘기한다. 국민 국가의 주권 쇠퇴, 그리고 국민 국가가 경제적·문화적 교환을 점점 규제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제국의 도래를 알리는 주요 징후라고 말이다(p.159).


두 사람은 제국에서 국민국가 체제와 제국 체제는 주요 권력의 질이 다르다는 중요한 지적을 한다. 이는 푸코가 정의한 '규율 훈련' 대 '생명 권력'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감시와 처벌』/ 『성의역사 1권). 질 들뢰즈 또한 현대 역사의 흐름이 규율 사회에서 관리사회(생명권력)로, '규율에서 관리로'라는 도식을 제시했다.


다만 저자는 규율과 관리는 상호 배타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p.163). 제국의 관리가 그 예시이다.

p.166 국민국가는 인간을 규율을 통해 인간으로 만들지만 제국은 개인을 호명하지 않고 오로지 소비자만을 원한다.

예를 들면,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을 들 수 있다(p.167) 우리는 개개인의 여성에게 '아이를 낳아라'라고 명령할 수 없으나 일정 수의 여성이 아이를 낳도록 제도를 조성할 수 있다.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이 두 판단은 모순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p.168).


완독 이후 친구들과 독서모임에서 이 부분에 관해 짧게 의견을 나누어보았는데, 이 논제의 도덕적 판단이 상충되는 이유는 책임감의 분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책 결정은 다수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국가의지?) 그만큼 개개인의 윤리적 판단이 희석되는 것이 아닌가. 반대로 독재국가에서 저출산 제도가 시행되었다면 그에 대한 비판은 오로지 독재자에게 향할 것이다.


제국과 다중

이러한 제국 형태에서 '다중 Multitude'이 등장한다. 여기서 다중은 영어로 다수성, 우둔한 군중, 제국의 질서 자체에 저항하는 운동을 의미하며, 반체제 시민운동을 철학적으로 평가할 때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개념이다(p.168). 그는 성공적인 다중 사례로 1999 시애틀에서 일어난 반글로벌리즘 데모와 세계사회포럼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다중 개념의 이의중 하나는 정치에서 공사의 영역을 허물었다는 데에 있다.

네그리와 하트도 아렌트에 대해서 비판한 부분은, 아렌트가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을 철저히 분할해 정치적 해방을 경제적 요구에 기반한 운동(계급투쟁)과 분리시켰기 때문이다(p.170). 아렌트는 이런 공사 구분을 정치의 조건이라고 여겼으나, 현대 생명정치(biopolitics)의 개념에서 이는 성립하지 않는다.

p.172 자유주의는 근래 수십 년 동안 정치 영역을 확대해 섹슈얼리티를 비롯한 여러 사적인 문제를 공적인 논의 안에 추가할 것을 제안해 왔다. 여기서 공적인 문제(소비에트를 어떻게 쓰러트릴 것인가)와 사적인 문제(누가 어느 쪽 화장실을 써야 하는가)는 구별되지 않는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어떤 몸은 정치적이다.


다만 다중 이론의 약점으로는 두 가지가 있다

1. 다중은 제국의 원리에서 생겨나는 반작용이다.

- 이 비판점에 대해서 저자는 '제국 내 어떤 메커니즘이 다중을 생성하는가?'에 주목하고자 한다.

2. 다중은 다양한 삶을 그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공통점 없이 연결하는 '부정신학적'인 연대 원리에 의존

이는 운동이 '어떻게' 힘을 갖는지와 관련되어 있다.

p.174 새로운 운동에는 당도 이데올로기도 지도자도 필요 없다. 반자본주의적일 필요도 없다. 그저 네트워크의 힘을 믿으면 된다. 사랑이 있으면 된다.

철학자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투쟁의 결합을 이야기했으나 연대 자체로는 개연성이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p.177 지적이 지적하는 바는... 연대 자체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공산주의가 '거대 담론'으로 기능해 다양한 저항 운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고 이들의 연대에 근거를 부여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다... 어차피 적은 권력이니 평화 운동, 생태 운동 등 어느 운동이든 연대하자.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저자는 '우편적 다중'을 제시한다.




데리다의 우편과 오배

*부정신학(Apophatic Theology)은 신은 존재하지만, 우리가 정의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하는 신학 방식이다. 다중론에 적용한다면, 사랑·네트워크만 있으면 연대가 가능하다는 믿음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비되는 우편(Mail)과 오배(misdelivery) 개념은 "주소 잘못 쓴 편지가 의도치 않은 사람에게 가서 뜻밖의 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데리다에 의하면 메시지는 항상 어긋나고(p.79), 완벽하게 전달 불가하지만 그 실패가 새로운 효과 낳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통점이 없어도 각 운동의 '실패·잔재'가 서로 부딪히며 우연한 연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p.183 우편적 사고는 '신은 사실 존재하지 않으나 현실에서는 이런저런 실패가 있기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고, 또한 그러한 한에서 존재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이후 논의하는 볼테르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도 나타난다.


관광객의 경박함

p.66 관광객은 관광지에서 주민의 현실이나 생활상의 고민 등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만 소비하고 돌아간다. 2차 창작자 또한 원작자의 의도나 고민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만 소비한다.
p.79 앞으로 관광객을 다루면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오배'라는 개념을 키워드로 차용할 것이다. 데리다의 철학에는 또 하나, '에크리튀르'(글자)라는 유명한 개념이 있는데 이는 '파롤'(말)이라는 개념과 한 쌍을 이룬다. 데리다에 따르면 글자는 말에서 파생하나 말 또한 글자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 굴절된 상호 의존 관계에 있는데, 그는 이런 관계를 범례 삼아 사물의 본질이 비본질에 본질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를 의미하는 일반적 개념으로 확장해서 에크리튀르를 사용한다.... 관광지화는 에크리튀르화다.

저자에 따르면 관광객은 본질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진지한(정치적인) 것에서 멀어져 있으며, 실제 장소(본질, 파롤)를 소비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투사 이미지(비본질, 에크리튀르)를 즐길 뿐이다. 저자는 이러한 에크리튀르, 관광객의 얕은 소비가 내셔널리즘-글로벌리즘의 이층 구조를 벗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다크투어리즘, 도살장, 배수조 방문처럼 자국에서는 경험하지 않던 경험이 그 예시이다.


p.221 오배가 없으면 타자와 만날 일도 없고 불평등도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글로벌리즘에 저항하기 위한 새로운 장소를 제국의 외부도 내부도 아닌 그 사이에서, 즉 스몰 월드와 무척도를 동시에 생성하는 오배 공간의 내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p.222 만날 일이 없었을 사람과 만나고 갈 일이 없었을 곳에 가고 생각할 일이 없었을 생각을 함으로써....



네트워크 이론



저자는 관광에서의 만남이 어떻게 느슨한 연대가 될 수 있는지 네트워크 이론을 통해 제시한다. 네트워크 이론은 사람을 노드로, 그들의 연결을 엣지로 제시하는 이론이지만... 이미 서평이 길어졌기에 자세한 건 생략하겠다.




가까이 있는 노드(점)가 나와 유사한 배경을 공유하는 사람을 의미하고, 우리는 본능적으로 7-A처럼 좁은 인간관계를 가진다. 철학자 로티 공감 가능성에 기반한 연대를 제안했으나, 이는 결국 이질적인 타자의 존재를 배제한다. 저자는 관광(오배)이 나와 다른 타자와 느슨한 연대로 이어질 수 있음을 말한다. 와츠&스트로가츠의 가설 역시 소수의 '지름길'이 있으면 평균 거리가 극적으로 줄어든다는 걸 보여준다(p.192).


다만 스몰월드 및 멱승법을 이야기하며 이전의 내셔널리즘 이론에 네트워크 이론을 접목했지만, 나는 이게 결정론적이라고 느꼈다.

p.214 국민국가와 제국 개념은 아마 이 두 수학적 질서에 따라 진화한 권력 형태가 모여 형성한 두 개의 다른 체제를 지칭하는 것이리라.... 만약 그렇다면 국민 국가와 제국의 2층화는 수학적 필연에 의거한 구조라는 말이 된다.

네트워크는 신화다. 철학자가 종종 증명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신화'를 말하는 것은 그들이 인간의 그런 특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홉스, 로크, 루소 모두 자신이 논한 '자연 상태'의 신화를 사실로 믿지는 않았다(p.219)




가족은 대안이 될까

p.243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사람은 일반 의지를 위해 죽을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주의를 긍정하는 내용으로 악명 높은 문구지만 정치의 본질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기도 하다. 루소가 일반 의지 개념을 정치의 기초로 삼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일반 의지를 '사람이 그것을 위해 죽을 수 있는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죽을 가능성이 없는 곳에 정치는 없다.

이렇듯 관광을 통한 느슨한 연대가 헤겔의 변증법적 시각을 흐뜨러트릴 수 있지만, 우리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진중하지 않은 것- 쾌락만을 좇는 관광객적 삶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정치적이지 않은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의 '가족 유사성'을 제시하며(p.251) 가족의 확장을 이야기한다.

p.242 가족 개념에서 우선 주목하고 싶은 점은 그 강제성이다. 가족은 자유 의지로 쉽게 가입하거나 탈퇴할 수 없는 집단이며 또한 강한 '감정'에 기반한 집단이기도 하다. 가족에는 합리적 판단을 초월한 강제력이 있다.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와 도스토옙스키의 저작을 분석하며 가족- 세대의 재생산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개인적으로 설득력은 부족했다.

p.305 『지하 생활자의 수기』는 이 고통받을 권리를 지키기 위해 쓰였다. "... 실제로 어느 것이 나은가? 싸구려 행복인가 고상한 고통인가? ..." 이는 동물적 유토피아를 거부하는 논리의 한 전형이다.
p.336 따라서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불능적 주체는 불능이긴 하나 결코 무력하지 않다. 세상은 아이들이 바꾼다. 인간은 인간을 고독 속에 가두는 '이것임'의 중력에서 벗어나 운명을 아이들에게 맡길 때 비로소 이반=스타브로긴의 허무주의를 탈피할 수 있다.


여기서 다룬 내셔널리즘-정신분석학적 사디즘/마조히즘 분석은, 과학적이진 않지만 납득 가는 종류의 것이다. 들뢰즈를 더 읽어봐야겠다.

p.319 『내셔널리즘의 유래』에 따르면 내셔널리즘은 원래 모든 초월성을 무화하는 자본주의 운동에 대한 일종의 반동으로 나타나 구축된 이데올로기다. 자본주의는 신을 무화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대신 만들어 낸 것이 네이션이다.... 들뢰즈의 말을 미리 가져오면 오사와의 지적은 내셔널리즘이 본질적으로 마조히즘과 동일한 정신분석적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마조히스트는 주인(초자아)이 없는 곳에서 주인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다. 마찬가지로 내셔널리스트는 신(초자아)이 없는 곳에서 네이션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다.
p.331 들뢰즈는 전에 마조히스트에게는 자아밖에 없으나 사디스트에게는 반대로 초자아밖에 없다고 한 적이 있다.



비판, 관광객은 조국을 벗어날 수 있는가


전체적으로 다루는 논의의 범위가 넓었고, 이를 분석하기 위해 과하게 이분법적인 해석 방식을 사용했다. 일본책 특유의 명사화가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ex. 심급(p.168), 오배


p.17 철학은 더 잘 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저자가 철학적으로 잘 훈련된 사람이란 건 느껴졌지만, 난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적어도 학문을 표방하고 있다면 예술과 다르게 비판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하지 않을까?

p.104 관광은 시민사회의 성숙과 무관하다. 관광은 국가의 외교적인 의지와도 무관하다

방문=관광은 평화의 조건이 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관광의 외교적 의지와 무관하다는 점에 동의할 수 없다. 대부분의 우리나라 국민은 일본 관광에서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지 않는다.


p.148 트럼프의 정책과 상관없이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을 그만둘 수 없고 다른 국가와도 마찬가지다.

ㅎㅎ..


독서모임에서 책을 논의했을 때 위 비판점을 대부분 공유하고 있었다. 중국 탕핑족 사례를 들어 '무생산은 다중이 될 수 있는가?'를 추가로 논의해보고 싶었는데, 까먹어서 아쉽다.


또한 1부 관광과 2부 가족 사이의 논리적 연결성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가족으로 제시한 세 조건 중 강제성과 우연성 항목은 납득하기 어려웠으며, 가족의 확장성만을 논의해 그 정의가 불투명했다. 또한 2부의 반복되는 서술도 조금 피곤했다.


2부 및 배론의 두 확률 이야기는 이해가 어려웠으나 깊게 고찰해 볼 만하다고 느꼈다.

p.370 실존의 불안은 '존재론적 불안', 확률의 불안은 '우편적 불안'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존재론적 불안은 하이데거의 개념이고, 우편적 불안은 내가 만든 개념이다.

정리하며

★★★☆☆


철학 입문서로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수준 높은 독서모임을 해서 즐거웠고, 한 줄 요약은 박동수 작가의『철학책 독서모임』언급으로 갈음한다.

관광객의 철학은 한 나라의 진정성 있는 정치적 국민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이 개인의 욕망에 충실한 채로 공공성이나 보편성과 연결되는 또 하나의 회로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p.64-5)






참고 문헌

프로이트와 에크리튀르의 무대 (자크 데리다) : 네이버 블로그

박동수 -『철학책 독서모임』



더 읽어볼 책

동일 저자 - 『일반의지 2.0』 절판 ㅠㅠ

카를 슈미트 - 『정치적인 것의 개념』

로버트 노직 - 『아나키, 국가, 유토피아』

마이클 센델의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

로티 -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

질 들뢰즈 - 『천 개의 고원』

도스토옙스키 저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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