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티브 시대에 도덕을 외치다

마이클 샌델의 『왜 도덕인가』 를 읽고



바야흐로 대선 철이다. 시민의 권리와 공동체의 도덕이 무엇인지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고민해야 할 시기다.


이전에 읽은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은 도발적인 책이었다. 저자가 진보주의자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추첨제를 해결책으로 제안하는 부분은 놀라웠다.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능력주의적 태도를 돌아보게 되는 계기였고, 미국 사회에 만연한 능력주의의 문제를 통계로 분석하는 전개도 인상 깊었다. 그러나 그 논리의 밑바탕에 있는 도덕철학은 짧게 언급되어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번 책을 통해 생각의 지평을 넓히고자 했다.

EBS에서 방영 중인 마이클 샌델의 <하버드 특강-정의>의 한 장면. ⓒEBS

『왜 도덕인가』는 1부 "도덕이란 무엇인가"(chap1-5), 2부 "도덕적 가치의 원류를 찾아서"(chap6-10), 3부 "자유와 공동체를 말하다"(chap11-14)로 구성된다. 개인적으로 1부는 다소 실망스러웠는데, 경제, 사회, 교육, 종교, 정치 전반의 도덕적 쟁점을 다루면서도 깊이가 부족했다. 예컨대, 소수집단 우대정책(p.48-51)을 다루는 부분은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더 깊이 있게 논의되었음에도, 여기선 보상 논리의 반박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멈춘 느낌이었다. 일상적인 쟁점을 깔끔하게 정리한 점은 분명 장점이지만, 철학적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고 토론 주제 수준에 머문 점은 아쉬웠다. 응용성을 논하고자 한다면 2, 3부 뒤에 배치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낙태 논쟁과 노예제 논쟁(링컨-더글라스 논쟁)의 경우 재등장하여 그 심도를 더했고, 이는 만족한다. 해당 책이 강의록인 측면도 고려하더라도 원서 『Public Philosophy - Essays on Morality in Politics』의 순서를 재배열하는 과정에서 어수선한 부분이 많아 아쉽다.


본격적인 논의는 2부에서 자유주의자들의 도덕적 토대에 대해 고찰하며 시작한다.

전체적으로 공리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 정치 철학사를 시간순으로 따라가는 모양새를 보이지만, 단어의 정의와 주장이 반복되고 전개가 난잡해 어려운 면이 있었다.


사회가 누군가의 자유(정치/표현/경제)를 침해할 수 없다는 자유주의적 주장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근거한다. 하나는 밀로 대표되는 공리주의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칸트적 자유주의다. 이 중 칸트 파는 공리주의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p.159 공리주의에 반대하는 주장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은 칸트의 주장이었다. 그는 공리주의와 유사한 경험주의는 도덕의 근거가 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공리주의는 무엇보다도 복지를 극대화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사회를 개인처럼 취급한다. 공리주의는 우리의 갖가지 다양한 욕구들을 하나의 욕구 체계로 융합시킬 뿐, 개개인에게 만족을 분배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다. 공리주의는 소수의 사람들을 모두의 행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개개인 자체를 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다.......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제각기 사회 전체의 복지로도 짓밟을 수 없는, 정의에 근거한 불가침성을 갖고 있다. 정의가 보장하는 권리는 정치 교섭이나 사회적 이익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칸트 파 자유주의는 옳음(정의)와 좋음(선, 가치, 도덕)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는 아래와 같다.

p.176 핵심 논제는 다음과 같다. 정의로운 사회는 결코 특정한 목적을 강요하지 않으며 시민들이 모두 동등한 자유를 갖고 각자의 목적을 추구할 수 있게 한다. 그렇다면 이런 사회는 선(옳음)에 대해 특정한 관점을 전제로 삼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원칙을 정당화해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전반적인 복지를 극대화하거나 덕성을 장려하거나 선을 증진시킨다는 점이 아니다. 선에 우선하며 선과는 별개의 도덕적 범주인 '옳음'이라는 개념을 따른다는 점이다.

따라서, 옳음은 좋음과 다른 가치이며, 옳음(정의/권리)은 좋음(선/도덕)에 우선하여야 한다.


이 주장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개인의 권리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 되며(공리주의와 대립), 둘째, 개인의 권리를 조건으로 하는 정의는 결코 특정한 비전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 권리가 정당화되는 이유는 그것이 전체 복지를 극대화하거나 선을 증진하기 때문이 아니라, 개인 또는 집단이 다른 개인 또는 집단과 동등한 자유를 갖고 나름의 가치와 목적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적론과 대립)

칸트는 도덕법의 근거를 실천이성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 즉 자율의지를 가진 주체에서 찾았다.(p.180)


다시 말해서, 우리는 어떤 미덕(경제력, 효율성, 쾌락의 총합)에 근거하여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아닌 권리 그 자체를 존중해야 한다. 따라서 권리(정의)는 다른 미덕들과 거래하거나 경쟁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닌 것이다.


p.83 로크는 어떤 권리들은 철저하게 우리 자신에게 속하기 때문에 심지어 자신의 동의에 의해서도 그것을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생명권과 자유를 누릴 권리는 양도할 수 없는 것이므로 스스로를 노예제도나 자살에 건네줄 수 없다고 로크는 말한다. "어느 누구도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권한을 줄 수는 없다. 따라서 자기 자신의 생명을 제거할 수 없는 사람은 그렇게 할 권한을 타인에게 줄 수도 없다."
p.178 정의는 그저 수많은 가치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정의는 서로 앞을 다투는 가치 및 목적들의 경쟁을 '규제하는' 틀을 제공한다.


이는 연고적/무연고적 자아 개념(chap 6)으로 되돌아가며 "주체가 목적에 우선하듯 옳음은 좋음에 우선한다."는 명제를 도출한다.


두 자아상의 충돌- 연고적 자아와 무연고적 자아


p.163 공리주의자들은 우리의 다양한 욕구들을 단일한 욕구체계로 융합하지만 칸트 파는 개인의 분리를 주장한다. 공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자아는 단순히 욕구의 총합으로 정의되지만 칸트 파가 주장하는 자아는 욕구와 목적과는 별개의 존재이다. 요컨대 선택하는 자아이다. 롤스는 이렇게 말한다. "자아는 그것이 지지하는 목적보다 우선한다. 가장 중요한 목적조차도 수많은 가능성들 가운데서 선택되어야 한다."...... 자아가 목적보다 우선한다면 권리는 선에 우선해야 한다.
p.183-4 그것은 '내가 보유한' 가치들과 '나 자신'은 항상 구분된다는 의미이다....... 무연고적 자아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즉 우리의 인간성에 가장 필수적인 것은 선택하는 목적이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자아는 목적에 우선한다.'는 말이 감명 깊었다. 내가 선택하는 목적은 변할지라도 선택하는 자아는 남는다.



ch10에서는 이전에 설명한 개념들을 바탕으로 개인의 권리와 공공선의 부딪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는 존 롤스의『정의론』에서 촉발한 세 가지 논쟁과 이어진다.

https://shutthefactup.substack.com/p/veil-of-ignorance-160?utm_campaign=post&utm_medium=web

첫 번째는 공리주의자 vs 권리 지향적 자유주의자 간의 논쟁이며 이는 위에서 논의했다.

두 번째는 권리 지향적인 자유주의자 내에서 발생한 논쟁이다.

(1). 자유 지상적 자유주의자(하이에크) : 정부가 시장경제가 부여한 노동자의 대가 또한 정치적 자유처럼 존중해야 한다

(2). 평등주의적 자유주의자 (롤스): 기본적인 사회, 경제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시민, 정치적 자유를 유효하게 행사할 수 없다.

세 번째 논쟁은 모든 자유주의자가 가정한 '정부의 중립성'에 대한 것이다.


정부의 중립성 - 도덕 상대주의/허무주의 비판

책의 소주제 중 하나이자 내가 제일 공감한 부분이기도 하다.

p.23 최근 수십 년간 우리는 다른 이들의 도덕적 신념을 존중하는 방법은 그저 무시하는 것이라고, 즉 그것과 상관없이 공공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처럼 회피하는 태도는 거짓된 존중을 만들어낼 뿐이다.
p.156 대개의 경우 상대주의는 주장이라기보다는 질문이 된다. "누가 판단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자유주의자들이 옹호하는 가치에 대해서도 던질 수 있는 질문이다. 관용과 자유, 공정성도 가치이므로 어떠한 가치도 옹호해선 안된다는 주장으로는 옹호하기 힘들다. 따라서 모든 가치들은 주관적인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유주의자들이 옹호하는 가치들을 지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도덕 상대주의는 “모든 도덕적 진리는 개인이나 사회의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는 입장이다. 언뜻 들으면 관용의 태도처럼 보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 주장이 스스로를 보편적 진술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모든 도덕은 상대적이다’는 진리는 결국 ‘이 진리도 상대적일 수 있다’는 함정을 품고 있다. 정리하자면, 도덕 상대주의는 절대는 없다고 주장하면서 스스로는 예외가 되려는 모순에 빠진다. 결국 이런 상대주의는 자신이 반대하려던 ‘절대주의’와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보편을 전제하고 마는 셈이다. 156페이지의 자기 파괴적 주장은 상대주의의 허점을 보여준다.


링컨은 더글라스와 노예제에 관해서 논쟁하던 중 이렇게 말했다.

p.238 노예제에서 잘못된 점을 전혀 보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든 정치적 중립을 주장할 수 있지만, 노예제에서 잘못된 점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논리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왜냐면 어느 누구도 잘못된 것이 수용되든 아니든 신경 쓰지 않는다고 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좋지 않은 것이 수용되든 아니든 상관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옳은 것과 잘못된 것 중에 선택해야 한다.

p.239 나는 묻는다. 그것은 잘못된 철학이 아닌가? 모두가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바로 그 일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는 전제 위에 정책을 마련하는 일은 잘못된 정치적 행동이 아닌가?
Remnick, D. (2009, April 13). Voice of the Century. The New Yorker.

왜 브런치는 인용 글에 볼드체가 안 될까?



윤리학자 무어는 '노랑'을 정의할 수 없듯 무엇이 '선'인지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무어, 2018). 하지만, 정의의 불가능 혹은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을 핑계로 알려고조차 하지 않는 것은 한나 아렌트가 경고한 생각의 무능이자 게으름이다. 상대주의의 늪은 생각할 에너지가 부족한 현대인에게는 달콤해 보이지만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는 독인 것이다.

p.249 우리가 반성적 평형상태를 추구함으로써 분배 정의의 논쟁적인 원칙에 판단을 내릴 수 있다면, 선의 개념에 대해서도 같은 방식으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3부는 이렇게 논의한 권리 개념을 어떻게 (미국)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지 말한다. 뉴딜정책은 자유주의를 성공적으로 국가주의와 연결했으며, 신자유주의자들은 좋은 삶의 기준을 경제력과 동일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경제질서를 떠받들고 있는 도덕적 중립성에 대해 경계심을 가져야 하며, 개인주의가 아닌 공동체적 자아를 형성해야 한다는 게 내가 이해한 샌델의 결론이다.


마무리하며

한 줄 평 / 별점

진보는 갈등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


<공정하다는 착각>에 비해 여러모로 원론적인 책이었다. 그걸 기대했기도 하고, 정치 논평과 정치철학 사이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 점이 좋았다. 나는 오래도록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공리주의의 미덕인 고통을 줄이고 쾌락을 늘리는 것 이상으로, 인간에겐 지켜야 할 무엇인가가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비록 난해한 책이었으나, 자유를 옹호하는 것과 공리주의가 반드시 같이 갈 필요는 없다는 점, 그리고 비이성적이더라도 어떤 가치를 선택하는 이유에 대해 깨닫게 되어 가치 있는 책이었다.


최근 대선토론을 보며 다시 떠올린 인용문을 쓰며 글을 마무리한다.

p.121 윤리적 기반을 잃은 정치야말로 국가와 국민의 공공선에 해악을 끼치는 가장 무서운 적이다. 따라서 공직자와 정치인의 도덕성은 일반인보다 높아야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 정치는 논쟁과 토론으로 짜인다. 우리는 그러한 토론으로 인한 다툼과 갈등, 소동으로부터 도망쳐서는 안 된다. 그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진정한 모습, 진정한 소리이기 때문이다. 가치 중심적인 공동체를 지켜내려는 진지한 노력은 필연적으로 그것을 손상시키는 힘과 맞부딪친다. 공동체를 회생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사회구조를 좀먹은 문화적 힘은 물론 경제 권력과도 대항해 싸워야 한다. 우리에게는 어떤 경제제도가 자치에 가장 적합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시민적 덕성이 필요한지 묻는 정치철학이 필요하다."



더 읽어볼 것들

매킨타이어 - 덕의 상실

마이클 왈저 - 정의의 영역

존 롤스 - 정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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