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에서 인어공주를 만나다

나의 첫 유럽행-2(덴마크 코펜하겐)

by andre

스웨덴에서 이틀을 보내고, 덴마크에 도착하였다. 도착하는 날 비가 세차게 왔다. 비가 계속 온다면 제대로 다니지 못할 텐데 은근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 그날 저녁에는 비가 개었다.

그날 저녁에 우리는 한인이 운영한다는 식당에 들러 육개장을 먹었는데 며칠 만에 접하는 한식이라 반가웠다. 한국에서 먹는 육개장에 비하면 부실하지만 얼콰한 국물을 먹는다는 생각만으로 만족했다. 내 몸이 이렇게 한식에 적응되어 있는지 처음 알았다. 나온 반찬은 김치 쪼가리와 단무지 등이었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그날 밤에는 호텔에서 자고 다음날 시내관광에 나섰다. 키에르케고르 동상을 보았고 덴마크 시청사도 방문하였다. 덴마크시청사는 공공청사로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는 시간에도 관광객의 출입을 허용한다고 하였다. 시청사 마당 옆에 있는 안데르센동상 앞에서 한 컷 하였다. 시청사를 보고 나서 한국의 명동거리나 됨직한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거리는 관광객들로 와글와글하였다. 그날 점심은 현지 가이드가 안내한 뷔페식당에서 음식을 먹었는데 입에 맞지 않았고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어디를 가나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식당은 시원치 않다.

코펜하겐 시청사.JPG 코펜하겐 시청사



안드레센 동상


코펜하겐의 부둣가도 방문하였다.코펜하겐을 방문하면 누구나 한 번쯤 들른다는 '니하운 운하'. 부둣가 옆에는 안데르센이 살던 집이 있었는데,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지금도 누군가 살고 있다고 했다. 부둣가에는 노천카페와 선술집이 즐비하게 있었고, 사람들이 테이블에서 각종 회와 안주류를 먹고 있었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여기 음식은 비싸기만 하고 먹을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일행 중 한 명이 여행사 가이드에게 끌려다니는 것에 항의하며 여기서 술 한잔하고 가자고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코펜하겐 운하.JPG 코펜하겐 운하

유럽의 도시에서는 어디서나 흔히 등장하듯이 니하운 운하에도 3인조 거리의 악사가 있었는데, 무슨 음악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니하운 거리의 악사.JPG 부둣가의 3인조 악사

인어공주 동상을 보러 가는데 한참 걸어간다고 했다. 목발을 짚고 다니는 나로서는 힘들 것 같았다. 이곳까지 와서 인어공주를 보러 가는데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봐야 볼품없는 작은 동상이라는 말을 들었으나 여행이란 다 그런 게 아니겠느냐, 가보면 정말 볼 것 하나도 없지만 그래도 그것을 보고 나서야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보기 전에는 그런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힘들지만 인어공주 동상 있는 데까지 따라갔는데 정말 볼품 없는 조그만 동상이다.

인어공주의 높이는 80센티라고 한다. 이렇게 작을 수가! 어릴 때 읽었던 인어공주의 이야기는 기억이 아물 아물하다. 왕자와의 슬픈 사랑이야기 정도로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나중에 인어공주 이야기를 찾아보니 왕자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인어가 왕자를 죽이지 못하면 물거품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왕자를 죽이지 못하고 대신 자기가 물거품으로 변한다는 슬픈 이야기였다.

우리가 인어공주를 보러 가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인어공주의 형상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다. 안데르센이 남긴 '인어공주'라는 동화의 세계로 다시 빠져들어가고 싶은 것이다.

인어공주 동상 앞에서 사진을 한 컷 하려고 사진구도를 생각하고 나의 위치를 찾아보았는데 계속 사람들이 모여들고 움직이는지라 나의 모습과 인어공주의 모습이 제대로 나오는 구도의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 그래서 대충 내 얼굴 나오고 인어공주 동상만 멀리서나 나오는 구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인어공주.png 인어공주(출처 나무 위키)


덴마크에서의 가이드는 통역 겸 가이드를 하는 여자분이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수십 번 선을 보았는데(선을 본 장소는 서울시청 앞에 있는 플라자 호텔이라 하였다) 한국 남자와는 한 번도 인연이 닿지 않고 어떻게 하다 덴마크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고 덴마크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이들이 둘이나 있는데 여기서 뼈를 묻는다고 하였다. 뼈를 묻는다… 뼈를 묻는다는 것은 여기서 삶을 종착한다는 말이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뼈를 묻기로 결정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닐 텐데 그녀는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덴마크에서 가족을 이루고 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행히 현재 코펜하겐 모대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가끔씩 통역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머나먼 객지 땅에서 그녀의 나머지 생애에 행복을 깃들기를 기원한다.

일행 중 어느 여직원이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서 대한항공 로고가 선명하게 그려진 KAL기가 하늘 높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을 때 눈물 나지 않으세요?”

그녀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맞아요, 그런 날은 벼겟닢을 적실 정도로 소리 없이 운답니다.”

그랬을까, 아니면

“아뇨, 나를 알아주지도 않는 한국남자가 사는 한국에는 눈꼼만큼도 미련이 없답니다.”

그랬을까. 그녀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당시의 질문이 잘못된 질문임을 이제야 알았다. 당시에는 한국에서 코펜하겐으로 가는 직항이 없었으니 당연히 코펜하겐에서는 대한항공 비행기가 뜨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에 스칸디나비아항공이 인천에서 코펜하겐으로 가는 직항이 개설되었을 뿐이다. 사실 그런 질문이 논리적으로 잘못되었느니 하는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녀의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절절할지 알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녀는 전세를 낸 관광버스 앞자리에 앉아서 입이 쉴사이 없이 열심히 코펜하겐 명소에 대하여 설명했다.

그녀는 안데르센동화에 대하여도 언급을 하였다.

“안데르센 동화는 알려진 것 말고도 정말 많은데, 내용을 보면 아이들 보다는 어른들이 읽어야 해요. 어른들이 순수한 동화를 읽고 순수한 마음을 돌아가야 한답니다. 어떤 동화를 보면 정말 슬픈 것도 많고 그렇답니다.”

맞는 말이다… 어른들이 동화를 읽고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야야 한다.… 난 그런 말은 처음 들었는데, 이처럼 신선한 말이 어디에 있을까. 안데르센은 어떤 여자를 사랑했고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런 삶이었기에 순수한 동화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코펜하겐 시내는 서울 명동거리 못지않게 사람들도 많이 북적대었다. 노천카페나 레스토랑이 많았고 사람들은 여지저기서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SDC10163.JPG 코펜하겐 중심 거리
SDC10144.JPG 코펜하겐 주택가


SDC10135-1.JPG 코펜하겐 시내 풍경
SDC10136.JPG 코펜하겐 시내 풍경

무슨 고성(나중에 확인해 보니 프레데릭보르성이라고 함)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가는 길 옆에 있는 집들이 모두 그림 같은 집들이다. 거리는 깨끗하였고, 사람도 별로 없었다. 버스에 내려 걸어 다닌다면 마치 동화나라에 들어와서 걸어 다니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고성은 옛날 무슨 귀족이 살던 집인데 지금은 관광지로 국가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하였다. 고성안의 넓은 초원은 인근에 있는 주민이 마음대로 들어와 산책을 하거나 쉬는 장소로 제공된다고 하였다. 통역가이드도 이 고성에서 가까운 집을 얻으려 하였는데 너무 비싸서 얻지 못하였다고 한다.(이 고성에서 가까운 집은 고성의 잔디밭 초원을 자기 집 앞마당처럼 쓸 수 있기 때문에 비싸다고 함)


프레데릭스보르성.JPG 프레데릭스보르 성

안데르센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코펜하겐의 풍경이 보고 싶다. 최근 직항이 개설되었다니 다시 한번 방문하여 차근차근 이곳저곳 어슬렁 거리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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