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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의 나라로 다시 가고 싶다

나의 첫 유럽행-1(스웨덴 스톡홀름)

by andre

2009년 7. 경 나는 공직에 재직 시 유럽의 몇 나라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그때 처음 묵은 나라가 스웨덴. 스웨덴 하면 문득 떠오르는 것이 팝그룹 아바, 노벨상 등이다. 아바의 노래는 누구나 멜로디 한 두 개 정도는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아바는 4인조 혼성 그룹으로 유럽 유로비죤 콘테스트에서 '워털루'라는 곡으로 우승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그 당시의 영상물을 지금 보면 약간 촌스럽기도 하지만 그들의 환상적인 음악에 푹 빠지게 된다. 아바는 지금 해체되었지만 그들의 음악은 뮤지컬 맘마미아, 영화 맘마미아로 그 명성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대중음악이라는 것이 시대를 지나가면 인기가 시들해지는데 아바의 음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들이 해체되었다는 사실에 많은 팬들이 아쉬워하기도 한다. 사실 아직 활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제 노년의 나이라 옛날의 가창력을 기대할 수는 없다.


아바의 멤버 중 아그네사 팰츠콕과 비에른 올바에우스는 결혼한 사이였고 둘 사이 딸이 있었는데 아그네사는 딸에 대한 엄마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고 한다. 당시 그들은 인기가 절정이어서 여기저기서 공연의뢰가 들어와서 전 세계를 순회공연해야 하는데 아그네사는 딸에 대한 엄마로서의 사랑을 쏟지 못하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비에른에게는 명성과 인기가 중요했지만 아그네사는 한 여자로서의 모성애의 발현이 중요했을 것이다. 결국 둘은 이혼을 하게 된다. 이것이 아바 그룹의 해체사유에 일조했다고 한다. 인생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가 생각해 본다면 그녀의 선택이 더 현명했을지 모른다.


내가 스톡홀름을 방문할 당시에는 아바 박물관이 생긴다는 이야기만 있었을 때였다. 아바의 나라에 와서 아바의 흔적도 보지 못하고 떠난다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스웨덴을 떠나는 날 알란다 공항 대합실에서 어느 매장을 들렀는데 마침 아바의 공연실황이 실려있는 것이 DVD가 보였다. 공항에서 쇼핑을 거의 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쇼핑한 것이 아바의 DVD였다. 당시 한국에서 아바의 음반은 많이 출시되어 있었지만 DVD 영상물은 구하기 어려웠고 시중에 나온 것들은 음질이나 화질이 시원치 않았다. 스웨덴에서 제작된 것이라 제대로 된 영상물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아바박물관이 완공되어서 전 세계에서 아바를 잊지 못하는 팬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아바 DVD 타이틀 제목 number ones



당시 나는 유럽여행은 생전 처음이라 모든 것이 신기했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책이나 티비에서 보던 런던 국회의사당이나 코펜하겐의 인어공주를 직접 보니 신기했다. 첫 도착지는 스웨덴 스톡홀름인데 환승하느라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내가 탄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는 순간까지 독일이라는 나라가 정말 존재하는지 의심하였는데 실제로 존재하는 것을 보니 신기했다. 유럽의 하늘은 한국과 다를 줄 알았는데 한국의 하늘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당시 7월이었는데 프랑크푸르트 공항의 하늘은 가을 하늘처럼 따사했다.


우리는 그곳에서 스톡홀름으로 가는 비행기로 환승하느라 공중에서 오고 가는 전철 같은 것을 탄 기억이 있다. 지금 보니 그것은 환승하는데 타는 모노레일이었다. 환승하는 비행기는 스칸디나비안 항공이었다. 그런데 또 신기한 것은 당시 스튜어디스는 젊은 여자가 아니고 모두 나이가 지긋한 중년 여성이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할머니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나이가 든 여성이었다. 그 당시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여기서 여승무원의 직업은 신분보장이 되어 한번 입사한 여승무원은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 모노레일, 공항 전경

스웨덴 알란다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로 가게 되었다. 촌놈이 유럽에 처음 왔으니 어디가 어딘지 알 도리가 없다. 당시 여행사의 인솔자가 모든 과정을 인솔하였는데 우리는 인솔자가 가는 대로 따라가기만 했다. 어느 호텔에 피곤한 여정을 풀고 잠을 청했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피곤한 몸에 억지로 잠들었지만 잠이 깨었고 시간을 보니 새벽 3시경. 한국과 시차 7시간, 한국 시각으로는 아침 10시 경이다. 창밖을 보니 깜짝 놀랐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15층 객실이었는데 눈앞에 엄청나게 큰 배가 있는 것이다. 나는 사진을 한 판 찍었다.


다음날 아침 산책을 가서야 비로소 호텔 위치가 크루즈 선착장 옆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유람선은 '실자라인'이라는 유명한 크루즈 선박으로 핀란드나 에스토니아를 오고 가는 크루즈였던 것이다. 얼마 전에 구글 어쓰를 검색해 보니 이 호텔이 아직 있었다. 호텔 이름은 Scandic Adriane. 언젠가는 이 호텔에 다시 가서 잠을 자고 이 크루즈선을 타고 핀란드를 가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내가 유럽에서 첫날밤을 보낸 그 호텔은 나에게는 큰 추억거리로 남아 있다.


실자라인 크루즈 전경

스톡홀름은 여기저기 호수로 연결되어 있는 나라이다. 당시 7월임에도 날씨는 선선했고 여행하기에 알맞은 날씨였다. 스웨덴 시청사, 바사박물관, 스웨덴 한림원, 감라스탄 거리들이 대표적 볼거리였다.


스웨덴 사람들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인사를 하였다. 다들 먹고사는데 큰 걱정이 없는 나라인지 표정이 편안해보었다. 아등바등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하루는 일행들과 맥주집으로 갔는데 옆에선 두 노인 부부가 앉아있었다. 그들은 맥주잔을 앞에 놓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내 느낌에는 그들의 대화 주제는 살고 있는 아파트가 몇 평이니, 주식이 올랐느니 그런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보였고 우리 집 강아지가 아픈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런 소박한 일상생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와는 삶의 관심사가 다를 것 같았다. 여행사 전용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여기저기서 푸르게 펼쳐진 잔디밭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이 보였는데 그러한 자연환경도 부러웠다.

스톡홀름 시내 전경, 시장 거리

바사박물관에도 들렀는데 스웨덴에서 1628년 건조한 바사라는 배가 처녀항해 때 바다에 침몰하였고 300여 년 만에 배를 건져 전시해 놓은 곳이었다. 바사박물관의 내부는 목재로 된 배의 보존을 위하여 어두운 상황이었는데 나중에 찍은 사진을 보니 새까맣게 나왔다. 나는 당시 사진기를 다룰 줄 몰라 빛노출 이런 것을 조절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여행 가면서 디카를 부랴부랴 구입했기 때문에 사진기를 제대로 다룰 줄도 몰랐다


아직 스톡홀름으로 가는 직항이 없다. 최근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가는 스칸디나비아항공의 직항이 개설되었을 뿐이다. 스톡홀름으로 가는 직항에 생겼으면 좋았을텐데 코펜하겐으로 가는 직항이 생긴 것으로 보아 당분간 스톡홀름직항은 없을 듯하다.

나의 첫 유럽행을 설레게 했던 스톡홀름을 나는 아직도 그리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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