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여행(5) 베른, 융프라우
다음 행선지는 스위스. 독일에서 스위스로 향하는 도로 오토반(Auto Bahn)을 달린다. 독일 오토반이라는 것은 한국에서의 자동차전용도로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속도제한이 없다는 게 특이할 뿐이다.
스위스로 가는 도중 휴게소에 들렀다. 한국에서의 고속도로휴게소보다는 규모가 작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대개 휴게소의 화장실이 모두 유료이다. 화장실입구는 우리나라의 지하철 개찰구처럼 되어 있어 동전을 넣어야 통로가 열린다. 70센트를 넣으면 쿠폰이 나오는데 그중 20센트는 화장실사용료이고, 나머지 50센트로는 화장실과 붙어 있는 가게에서 물건으로 살 수가 있단다. 그런데 50센트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없으니 결국 돈을 더 보태 물건을 사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런데 내가 동전을 넣으려고 하니 매장 여종업원이 키를 가지고 따라와 별도로 있는 장애인화장실문을 열어준다. 장애인들은 돈을 내지도 않고 별도의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볼 수 있단다. 음, 스위스가 좋긴 좋구나.
그날 저녁 우리는 스위스 베른이라는 도시에 짐을 풀었다. 별로 크지 않은 아기자기한 도시이다. 장난감 같이 크지 않은 사이즈의 건물들이 보인다. 베른에서 자고 내일 융프라우로 가려면 새벽부터 준비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수돗물을 그냥 마시지 못하고 생수를 사 먹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석회성분이 많아서 그렇다고 함) 스위스에서는 다행히 생수를 사지 않아도 되었다.
융프라우(Jung Frau )는 독일말로 '젊은 처녀'라는 뜻인데 산 이름이다. 새벽 7시부터 일어나 인터라켄으로 가서 융프라우정상으로 가는 열차를 두 번이나 갈아탄다고 한다. 빨간 기차로 한번 갈아타고 노란 기차로 갈아탄다고 한다. 인솔자가 농담 삼아 말하기를 정 피곤하신 분들은 아침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융프라우에 올라가지 않아도 된단다. 피곤하신 분들은 호텔에서 그냥 편히 쉬고 다음 행선지까지 혼자 따라오면 된단다. 그런데 이곳까지 비싼 돈을 주고 온 사람들이 융프라우를 포기하고 잠이나 잘 수는 없다. 미아가 되어 혼자 다음 행선지까지 따라오는 것도 불가능한 일. 죽어도 새벽에 일어나야지.
다음날 늦을까 봐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새벽에 일어나 여행사버스로 인터라켄역에 도착하였다. 인터라켄역은 아직 해가 뜨기 전이다. 새벽열차를 타고 융프라우로 올라가는 중간중간 열차 길 옆으로 그림 같은 집들이 펼쳐있다. 들판에는 양들이 풀을 뜯고 있다. 농가주택들은 모두 국유공원 내에 있기 때문에 디자인, 모양 색깔 등에서 규제를 받는다고 한다. 산악열차의 일부 구간은 산 중간에 뚫린 터널을 통과하여 올라가게 되어 있다. 올라가는 열차길 옆으로 흐르는 작은 냇물은 빙하가 녹아내려 흐르는 물인데 약간 회색을 띠고 있다. 첫 번째 터널을 지나니 갑자기 만년설이 펼쳐진다. 여간해서 감탄을 하지 않는 내 입에서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빨간색 기차를 타고 가다 노란색기차로 갈아탄 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곤돌라를 이용할 수 있어 융프라우 정상까지 가는데 시간이 단축된다고 한다.
융프라우 정상에는 휴게실 건물이 있고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인솔자에 말에 의하면 언제부터인가 여기서 한국산 컵라면을 한화 약 6천 원에 팔기 시작하였고(최근에 확인해 보니 약 만팔천 원이라고 함) 한국인 관광객들은 그 컵라면을 사 먹고 싶어 난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컵라면을 먹으려면 뜨거운 물을 부어서 익는 시간도 필요해서 관광 일정이 지연된다고 한다. 인솔자는 가급적 그런 일들은 삼가 달라고 하였다.
열차는 터널을 지나기도 하고 산등성을 지나기도 하고 결국 마지막 플랫폼에 도착하였는데 이 역시 지하로 되어 있다. 지하에서 내려 여기저기 통로를 지나니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고 계단으로 올라가면 드디어 산 정상 밖으로 연결되어 있는 통로가 나온다. 밖으로 나가서 직접 눈을 밟으며 만져볼 기회도 주어진다. 고지인지라 공기도 좋고 청정하다. 만년설을 이렇게 직접 발로 밟아보니 신기하다. 발밑으로 펼쳐지는 만년설을 바라보는 느낌을 그대로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까, 허접만 내 디카로는 이런 느낌을 담을 수 없을 것 같다. 비싼 돈을 주고 좋은 카메라를 구입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을 다니면서 그 당시의 느낌을 그대로 저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상의 바닥은 눈이 얼어 미끄러운 지라 조금 걷다가 다시 들어왔다. 열차를 타고 융프라우를 내려오면서 열차 창 밖으로 펼져지는 스위스 산간 마을의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이 또한 그림이다.
다시 인터라켄 시내로 내려와서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도가니탕을 먹게 되었는데 한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한참을 기다려야 한단다. 이런 데서 도가니탕을 팔다니! 한국에서 먹는 도가니탕에 비할 수 없겠지만 이런 한식을 먹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가웠다. 식사 중인 다른 한국관광객들은 아마 우리와 같은 여행사에서 인솔해 온 팀인 것 같다.
인터라켄은 정말 깨끗한 도시이다 이런 곳에서 산다면 나의 몸과 마음이 모두 정화될 것 같다. 아, 이렇게 청청한 인터라켄에서 하룻밤이라도 지내고 싶다. 난 역시 여행 체질이야.
관광버스는 인터라켄을 출발하여 밀라노로 향한다. 중간중간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림이다. 호수가 있고 저 멀리 산 중턱에 그림같은 집들이 보인다. 달리는 차 안이라 카메라에 담지 못한 것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