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여행(9) 암스테르담
네덜란드에서는 풍차마을과 암스테르담 담 광장을 보는 게 전부이다. 암스테르담 호텔에서 자고 여행사전용버스로 잔젠스키라는 풍차마을로 향하는데 빗방울이 떨어진다. 지금까지는 날씨가 좋아 여행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비가 오면 어떡하나, 우산을 들 수 없는 나로서는 걱정이다.
풍차마을로 가는 중간에 다리를 건너게 되었는데 건너는 도중에 차량이 섰다. 그러더니 차량 앞으로 바리케이드가 내려오고 앞의 다리 상판이 들린다. 현지가이드가 설명하길 교각이 낮아서 배가 지나갈 때 이렇게 교각 중간이 들린다고 한다. 옛날 우리나라 부산의 영도다리 같은 시스템이다.
풍차마을로 유명한 잔센스키 풍차마을에 도착하니 정말로 풍차가 보인다. 저 멀리 넓은 들판에 풍차 몇 개와 그림 같은 집들이 보인다. 풍차마을입구에서 나무토막으로 만든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게 되어 있다. 다리를 건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나를 향해 카메라 플래쉬를 터트린다. 이상하다, 사진 찍기를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사진을 찍어줄까? 그 의문은 그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풀렸다. 장사꾼들이 관광객들이 풍차마을 입구에 들어오면 무조건 사진을 찍어 풍차마을의 관광사진과 함께 사진첩을 만들어 관광객이 돌아갈 때 본인에게 돈을 받고 판다는 것이다. 풍차마을을 나오는데 누군가 내 사진이 들어 있는 인쇄물을 내밀길래 거절했더니 바로 옆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상술인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 알고 있던 동화 속 풍차마을의 이미지를 싹 구기는 일이었다.
풍차마을을 걷는데 가랑비가 내린다. 미리 준비해 간 2,000원짜리 1회용 비닐 우비를 걸치기로 하였다. 그런데 가슴 부분의 단추가 맞지 않아 잠가지지 않는다. 싼 게 비지떡이네, 다행히 비가 많이 오지는 않아 크게 곤란한 상황은 없었다. 비는 조금 후에 그쳤다. 공기가 청정한 지역이라 비를 맞아도 시원하다고 느낄 뿐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비가 그친 후 공기는 더욱 깨끗하고 시야도 깨끗하다.
풍차마을 안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통나무로 신발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곳도 있었다. 이미 만들어놓은 모형신발 안쪽에 기계를 대고 똑같이 회전하며 움직이는 기계로 다른 통나무를 깎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는 네덜란드에서 나무신발을 신는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처음 들어보았다.
풍차마을 안에 있는 치즈공장도 견학하였다. 풍차마을에서는 수많은 종류의 치즈들이 매장에 있었다. 치즈가 돌덩이처럼 보인다. 치즈를 하나 사가지고 오려고 해도 무거워서 엄두도 못 낼 일이다.
다음 코스는 암스테르담 담 광장. 역시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광장 한쪽 미술관에는 앤드위홀의 작품전시회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보인다. 광장옆에는 밀랍박물관도 있다. 광장 부근 여기저기를 다 둘러보고 싶은데 주어진 시간은 30분이다. 광장 한 바퀴 걸어보는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그날 밤 호텔에서 밤에 티비를 켜니 이상한 프로가 나온다. 여자들이 벌거벗은 채로 몸매를 과시하면서 뭐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매춘광고인 것 같다. 전화번호도 계속 나온다. 다음날 현지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여기서는 매춘이 합법이기 때문에 티비에서 매춘광고도 한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부르면 여자도 오고 남자도 온다고 한다. 흠 희얀한 세상이구나, 혼자 사는 사람들이 성욕구를 해결하기에는 살기 좋은 나라이다. 여자를 하룻밤 부르는데 400유로 정도라고 한다. 한국 돈으로 50만 원 이상이다.(지금은 환율도 오르고 가격이 많이 올랐을 것이다.) 여기 암스테르담은 모든 물가가 비싸다고 한다. 여기서는 목욕탕도 혼탕이란다. 대마초도 아무 곳에서 피울 수 있다고 한다. 여행사버스를 타고 시내를 지나는데 현지가이드가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가리키며 동성연애자라고 일러준다. 창밖을 보니 남자 두 명이 커플룩으로 된 진자켓과 진바지를 입은 채 서로 다정히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나에게는 참으로 진기한 모습이다.
담 광장에는 노천카페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차를 마시거나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 모습은 유럽이면 어느 도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런데 이 카페는 의자들이 일부는 서로 마주 보지 않고 바깥쪽 광장을 향하여 있다. 사람들이 모두 광장을 향하여 앉아 지나가는 사람의 모습, 풍경들을 보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 자체가 광장과 함께 관광거리인 것이다. 나도 반나절 동안 한가로이 이 카페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상념에 젖고 싶었다.
도심에는 전차, 자동차, 자전거가 혼재해 다녔고 자전거행렬도 끊임이 없다. 현지 가이드에게 이 광장부근의 호텔숙박료가 얼마냐고 물어보니 하룻밤에 350유로라고 한다. 한국돈으로 50만 원 정도이다.(14년 전의 일이다.)
암스테르담을 마지막으로 드디어 한국행 비행기를 타러 스키폴 공항으로 간다. 출발 2시간 전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비행기가 예정시간보다 2시간 정도 연착이 되어 우리는 4시간을 더 기다리게 되었다. 4시간 동안 공항에서 무얼 하나, 그렇다고 지리를 모르니 혼자 공항을 나와 시내를 돌아다닐 수도 없다. 여기저기 거닐면서 아이쇼핑이나 하기로 하였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1층은 각종 면세점으로 이루어져 있고 2층은 흡연실, 식당, 휴게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식당에는 한국말로 '국수류'라는 안내판도 있다. 한국사람이 많이 온다는 의미이다. 공항대합실 2층 흡연실로 담배 피우러 들어가니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인솔자가 한쪽을 가리키며 한잠 잘 수 있는 의자가 있으니 잠을 자라고 권한다. 공항대합실 2층에는 장시간 대기승객을 위한 의자가 있었는데 뒤로 젖혀진 의자여서 한잠 잘 수 있게 되어 있다.
조금 후 인솔자가 식권 5유로 할인권을 가져왔다. 인솔자 말에 의하면 비행기가 연착되면 항공사 측에서 이에 상응하는 쿠폰이 나온다고 하였다. 8시간 이상 연착되면 숙박권이, 4시간 이상 연착되면 식사권이, 이번처럼 1시간 이상 연착되면 식사할인권이 나온다고 하였다.
출국 시 보통 이민국심사를 거쳐 검색대를 통과하고 그다음 게이트를 통과하게 되는 데 스키폴공항은 이민국심사를 거친 후 게이트 바로 직전까지 가서 검색대를 통과하게 되어 있다. 14년 전의 일이라 지금은 변화가 있는지 모르겠다.
드디어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KLM 비행기가 하늘을 향해 올랐다. 몸도 많이 피곤하지만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시간이 모두 끝난다. 유럽이라는 동네가 볼 것이 너무 많은데 극히 일부분만 보고 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 옆좌석에는 20대 여성 둘이 앉았다. 물어보니 친구랑 여행을 갔다 오는 길이라고 한다. 20대에 저렇게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게 정말 부럽다. 요즘 세대들은 우리가 만끽하지 못하는 많은 부분들을 누리고 산다. 내 좌석은 비행기 통로 쪽이라 비행기 창 밖의 풍경을 찍을 수 없다. 창쪽에 앉아있는 여성에게 비행기 창 밖의 풍경사진을 한 장 찍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귀국하면서 내 머릿속에는 무엇인가를 가득 채워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득 채워진 그 무엇은 여행에서의 소중한 추억들일 것이다. 그 추억들은 미처 정리가 되지 않은 채로 보자기에 꾸겨 넣어졌다. 그 추억들을 하나하나 반추하면서 정리하는 일들 또한 즐거운 일임에 틀림없다. 비행기는 일정 궤도에 올랐고 몸도 나른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