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여행(8) 로마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언덕을 끝으로 우리는 로마로 출발하였다. 밤늦게 로마에 도착하였고 로마외곽에서 떨어진 호텔에 투숙하게 되었다. 로마시내는 매연으로 공기가 좋지 않을 것 같은데 외곽에 위치한 호텔에서는 공기가 깨끗하다. 그런데 호텔 안의 화장실을 보니 변기가 두 개다. 하나는 용변을 보는 변기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은데, 다른 하나는 무슨 용도인지 알 수가 없다. 덮개 없이 수도꼭지가 달린 작은 변기가 무슨 용도일까, 다음날 인솔자의 말을 들으면서 의문이 풀렸다. 그 작은 변기는 소위 한국에서 말하는 비대라고 하였다. 한국의 비데는 변기와 일체로 되어 전자식인데 여기 로마의 비데는 별도의 변기형태로 되어 있다. 자고 다음날 로마식 비대로 뒷물을 해보니 편리하긴 하다. 분수처럼 나오는 물을 이용하여 손으로 그 부분을 씻으니 한결 깨끗하게 세정이 되는 것 같다. 로마의 목욕탕 문화가 발달했다는 사실이 맞긴 맞는구나.
로마에서 첫날은 그냥 자고 다음날 첫 관광코스는 콜로세움. 콜로세움은 TV나 사진으로 수 없이 많이 본 것이라 익숙한 장면이다. 정작 내부에는 들어가지 않고 껍데기만 본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콜로세움에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장애인이 쉽게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콜로세움 옆에는 개선문도 있다.
로마 콜로세움에 엘리베이터 생겼다…장애인, 노인 접근성 좋아져 | 디지털타임스
현지가이드 말에 의하면 로마의 시내는 걸어 다니기는 힘들어 벤츠밴차량을 이용한다고 한다. 이 또한 선택 옵션이어서 원하는 사람만 타는데 비용은 한국 돈으로 5만 원 정도. 원하는 사람은 현지가이드와 함께 벤츠를 타고 다니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별도로 인솔자와 걸어 다닌다고 하였다. 그때가 14년 전의 일이니 지금은 한참 올랐을 것이다.
관광용 벤츠 운전자들은 교황청을 방문하는 추기경들을 모시던 운전자인데 매너가 좋아서 먼저 내려 손수 문을 열어준다고 한다. 콜로세움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시내관광을 안내할 벤츠밴차량 두 대가 온다.
드디어 벤츠를 타고 출발하는데 수십 명의 학생들이 차량 앞길을 가로막고 걸어가고 있었다. 무슨 시위를 한단다. 그런데 학생들은 뒤의 차량들이 오는 것을 알고서도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 여기서 이런 상황은 자주 겪어서 그런지 운전자는 별로 당황하거나 불쾌해하지도 않고 차량을 서행하면서 시위대가 비켜주기를 기다린다. 한참 동안 시위대를 따라 서행하느라 답답한 상황이 벌어졌는데 드디어 사거리에 도달하였고 시위대의 방향과 우리의 방향이 달라서 시위대의 방해를 벗어나게 되었다.
다음 코스는 로마의 전차경기장. 그런데 전차경기장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냥 길게 뻗은 직사각형의 운동장이 있고 그 둘레로 관중석 같은 경사언덕만 있을 뿐 그냥 보아서는 전차경기장임을 알 수가 없다. 여기에서 영화 ‘벤허’에 나오는 장면처럼 수 만 군중들의 함성을 들으며 전차경기를 하였을까 상상해 보았다.
다음 안내된 장소로 가니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 사자얼굴의 형상을 한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인증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린단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진실의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회자되는 곳.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로마의 휴일'에도 나오는 장소이다. 저 사진 한 장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한심한 사람축에 끼기로 하였다.
캄피돌리오 광장 뒤로 가니 로마 포럼(대중 들이 집회할 수 있는 공공장소)이라는 곳을 조망할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폐허가 된 로마시대의 건물 잔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한 때 유럽을 재패했던 로마의 영광도 이제 무너진 돌무더기에 지나지 않는구나.
판테온궁을 보러 가는데 부근에 버스를 주차하고 한참 걸어가야 한다. 느린 내 걸음으로 혼자 천천히 가기로 했다. 판테온궁으로 가는 길에 마침 음반가게가 하나 눈에 보인다. 무작정 들어갔다. 이태리 하면 역시 유명한 영화음악가 ‘앤니오 모리꼬네’를 빼놓을 수 없다. 매장에 들어갔으나 이태리어는 전혀 모르고 내가 아는 단어는 ‘앤니오 모리꼬네’ 밖에 없다. 그래서 내 입에서 불쑥 ‘앤니오 모리꼬네!’가 튀어나왔다. 워낙 유명한 사람인지라 여자점원이 알아듣고 CD음반 4~5개를 보여준다. 색다른 음반이 하나 눈에 띈다. 여러 교황님의 얼굴 사진이 있는 음반인데 가톨릭미사와 관련한 음악인 것 같다. 이 음반을 구입하기로 하였다. 나중에 집에 가져와서 그 음반을 들어보니 2번째 트랙이 너무 좋다. 가톨릭 수사들이 평화롭게 부르는 노래인 것 같은데 마치 천상의 소리처럼 들린다.
여행사버스로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며 주로 버스창밖으로 만 관람하고 대표적인 장소에만 하차한다. 빅토리아에마누엘레 2세 궁전을 지나치고 트레비 분수라는 곳으로 간다. 그런데 분수라는 것이 넓은 광장에 설치된 것이 아니고 주택가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아마 옛날에는 넓은 광장이었는데 그동안 주위에 많은 건물이 들어섰을 것이다. 트레비분수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서있다. 분수대에 동전을 던지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들로 분비고 있어 분수대 가까이 가기 어렵다. 여기서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로 온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결국 동전을 던지기 않았다. 다 재미난 이야기를 떠들어보자는 것일 뿐이다. 그런 속설 때문일까, 아직 로마를 다시 가보지 못하고 있다. 분수대 부근에는 로마병정 복장을 한 사람이 서 있다. 이 사람은 관광객을 상대로 같이 사진을 찍고 돈을 받는다고 한다.
다음 날은 행선지는 바티칸 박물관. 그런데 박물관까지는 버스에 내려서 한참 걷게 된다. 오늘은 평일임에도 관광객들로 붐빈다. 박물관은 엄청 넓어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다른 일행들은 현지가이드를 따라 먼저 움직이고 나는 인솔자와 함께 천천히 걸어가는데 사람이 많아 정신이 없다. 장애인은 줄을 서지 않고 입장시켜 주니 좋네, 바티칸박물관에는 그리스 시대의 각종 조각상들이 보인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조각들인데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리스, 로마신화를 숙지하고 올 걸, 박물관 안을 돌아다니는데 힘들었다. 인솔자가 설명을 하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세히 음미하고 관람할 시간도 없다. 대충 박물관을 지나고 베드로 성당으로 가야 한다.
박물관을 지나 시스티나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내부 통로가 있다. 성당 안은 관광객들로 꽉 차있어 발 디딜 틈도 없다. 여기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벽화가 천장에 그려져 있는 곳이다. 그런데 조명도 어둡고 사람도 바글바글하고 그러니 감상할 분위기가 아니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저기 있다. 사진도 찍지 못하게 되어 있으니 딱하다. 자세히 보려면 그림책에서 보는 게 낮다. 이곳을 방문했다는 사실 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시스티나성당에서 바로 베드로 성당 광장으로 연결되는 내부 통로가 있다. 아, 여기가 가끔 TV에서 볼 수 있는 베드로 성당이구다, 주일에 수많은 사람들이 미사를 하는 장소이다. 베드로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역시 조명이 어둡다.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진촬영은 허락되는데 조명이 어두워 제대로 찍히지 않는다. 그 유명한 피에타 조각상은 유리 안에 보관되어 있다. 사진기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인지 제대로 촬영이 되지 않았다. 당초 베드로광장에 가면 무엇인가 종교적이고 영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는데 그런 생각은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종교적인 장소가 아니라 그냥 관광지에 온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베드로성당이 바티칸에게 많은 관광수입을 가져다주는 관광장소로 전락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베드로광장을 마지막으로 이제는 로마를 떠난다. 네덜란드로 가는 일정이다. 아, 이제 네덜란드가 마지막 여행지이다. 많이 피곤하기도 하지만 아쉽기도 하다. 언제 이런 여행을 다시 오겠는가. 며칠 지나니 마치 내가 유럽사람이 된 것처럼 풍경에 조금 익숙해졌다. 그러나 어차피 나는 한국 사람이고 다시 한국으로 가야 한다. 로마에서는 바티칸이니 박물관이니 차근차근 음미하면서 살펴볼 것이 너무 많은데... 로마 한 도시만 해도 일주일을 머물러도 제대로 보지 못할 텐데, 많은 아쉬움을 뒤로하면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안에서 출발하기 전에 셀카로 내 얼굴을 찍어 보니 얼굴에 살이 많이 쪘다. 아니, 얼굴이 부었다고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