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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펜을 든 달타냥 Oct 30. 2022

[펜싱은 처음이라] 18. 왼손잡이

펜싱을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역사는 물론이고 다양한 궁금증이 생긴다. 원래 아무것도 모르면 궁금한 것도 없다가, 하나, 둘 아는 것이 생길수록 궁금증도 하나, 둘 생기는 법이다. 인어공주로 시작한 내가 웬만큼 시합에 재미를 붙이게 될 무렵에 생긴 궁금증은 ‘왜 왼손잡이를 상대하는 게 어려울까?’이다. 우리 클럽에는 왼손잡이 펜서가 좀 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펜싱을 시작한 ‘해피(happy) 펜싱’의 N과 여자 친구 손에 이끌려 온 J, 여자 친구가 떠난 자리를 채운 W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기본 2년 이상 운동을 해오면서 나름 자신의 펜싱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는 왼손잡이 펜서들이다.      


같은 스승님 아래서 배워도 학과 검독수리, 펭귄이 탄생하듯, 이들 펜싱 스타일도 왼손잡이라는 것만 같지 완전히 다르다. N은 해피 펜싱을 구사한다는 평가처럼 시합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자주 터진다. 시합의 승패보다 펜싱 자체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J는 검독수리 D에 버금가는 파워 펜서다. 마르셰에서 팡트로 이어지는 스피드만 놓고 보면 D에 뒤지지 않는다. 유튜브 영상을 보며 습득한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는 운동 센스도 갖췄다. W는 180에 가까운 키와 긴 팔을 이용한 롱 리치가 장점이다. 이쯤이면 안 닿겠지 싶은 거리까지 그의 팡트가 뻗어오면 당혹스러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다른 다수 스포츠처럼 펜싱도 왼손잡이가 더 유리하다는 속설이 있다. 나는 이들과 시합을 할 때마다 그 속설이 사실이 아닌가 싶어진다. 동시에 왜? 라는 의문도 늘 따라붙는다. 서로에게 주어지는 조건이 동일하다고 생각해서다.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 시합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양쪽이 데칼코마니처럼 마주 보고 있다. 심판석에서 바라보면 양쪽 다 몸이 정면으로 노출된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서로의 공격이나 방어의 방식이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더 유리할 것도 불리할 것도 없이 데칼코마니처럼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그들과 시합을 할 때 유독 힘이 든다. 스승님에게 특별히 왼손잡이가 더 유리한 이유가 뭐냐고 물어도 봤지만, 명쾌한 대답을 듣진 못했다. 왼손잡이 펜서가 희소해서 오른손잡이가 왼손잡이를 상대하는 경험이 적고 어색하지만,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를 상대할 경험이 많고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스승님 뿐 아니라 여러 펜싱 지도자의 공통된 답이다. 따지고 보면 왼손잡이가 스포츠에서 더 유리하다는 속설은 과학적으로도 검증이 되지 않은 낭설이다. 일부 그럴듯한 이유를 설명하는 종목들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펜싱에서와 마찬가지로 ‘왼손잡이의 희소성’이 배경에 내재했다.     


야구가 특히 그렇다. 이름 난 거포 중에 왼손잡이가 많고 에이스 투수 중에서도 왼손잡이가 자주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선 류현진 선수나 이승엽 선수 때문에 왼손이 야구를 잘하고 유리하다는 인식이 더 짙어진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왼손이 야구에서 더 유리하다고 알려진 이유는 왼손 타자는 오른손 투수의 투구 모션과 공을 더 오래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름 과학적인 듯 하지만, 같은 이유로 오른손 타자가 왼손 투수에게 더 유리하다면 왼손 투수가 더 뛰어나다고 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은 왼손 투수나 타자가 수적으로 적어서 오른손 투수나 타자가 상대해 본 경험이 적어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부가설명이 더해진다. 결국 왼손잡이가 희소하기 때문이라는 거다.     


배드민턴에선 왼손잡이의 스매싱이 더 빠르다는 속설이 있다. 셔틀콕의 거위털이 시계방향으로 꽂혀 있어서 왼손잡이가 이걸 치면 순방향으로 회전하고 오른손잡이가 치면 역방향으로 돌기 때문이라는 ‘혹’는 설명이 덧붙는다. 하지만 실제로 과학적으로 입증되진 않았다. 오히려 고속 카메라로 왼손과 오른손 스매싱을 비교 연구한 결과 유의미한 차이가 나오진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격투 종목에서 왼손이 유리하다는 속설은 더 사실처럼 굳어진다. 간혹 언론을 통해 ‘대체 이런 연구는 왜 하는거야?’하는 생각이 드는 해외 대학의 연구 결과가 알려지곤 하는데, 격투에서 왼손이 더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해외 대학도 물론 있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 연구팀이 총 1만 건 이상의 복싱과 이종격투기 경기 결과를 분석한 결과 왼손잡이 승률이 54% 였다는 거다. 8% 앞선 승률을 근거로 왼손잡이가 더 싸움에 능하다고 했단다. 그런데 연구팀의 근거 분석은 다시 왼손잡이의 희소성으로 귀결된다. 오른손잡이는 상대적으로 오른손잡이와 싸움에 익숙해서 왼손잡이와 싸울 때는 혼동을 느낀다는 거다.     


결국은 전 세계적으로 인구의 10% 정도로 추산되는 그 희소성이 스포츠계에서 왼손잡이의 가치를 높인 셈이 된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희소하다는 건 양면적이다. 경제학적 측면에선 수요에 비해 공급이 희소한 재화는 가치가 높다. 다이아몬드가 대표적이다. 희소성 때문에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볼 땐 희소하다는 건 소수자성이 부각되어 사회적으로 약자로 전락한다. 왼손잡이도 그렇다. 오른손 중심으로 디자인된 우리 사회는 오른손을 ‘바른 손’이라고 표현한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왼손잡이 친구는 종종 ‘찰싹’ 가벼운 체벌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왼손잡이를 보긴 쉽지 않았다. 오히려 양손잡이는 좀 있는데 그들은 열이면 열 왼손잡이로 세상에 왔지만 갖은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양손잡이가 된 이들이다.      


왼손잡이를 핍박하는 사회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인도에선 오른손은 먹는 손, 왼손은 배변을 처리하는 손으로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고, 일본에선 결혼 후 여성이 왼손잡이라는 게 확인되면 남성이 쫓아낼 수 있는 권리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똘레랑스의 나라, 펜싱 종주국 프랑스도 그렇다. 프랑스어로 왼쪽을 뜻하는 ‘구쉬(gauche)’에는 서툴고 보기 흉하다는 의미도 함께 있다. 그 탓에 원래는 인구의 4명 중 1명은 왼손잡이로 난다고 하는데, 살아남는 왼손잡이가 절반도 안 된다.     


이렇게 놓고 보면 다수자가 소수자를 핍박하는 건 어쩌면 ‘포비아(phobia)’보다 ‘젤러시(Jealousy)’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진다. 흔해 빠진 다수자보다 더 가치를 발하는 희소한 소수자에 대한 젤러시. 그저 그런 오른손잡이 펜서인 내가 왼손잡이 펜서들을 질투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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