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 Nov 23. 2023

Intro. 발리 인 더 하우스

발리 2023 7/7

행운의 숫자와 어울리는 멋진 여정의 시작이 되기를 기대했건만, 폰안의 일기예보는 앞으로 열흘간 발리가 비에 적셔질 거라 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고 저가 항공에 꾸깃하게 몸을 실은 채로 밤하늘을 가로지른 비행기 밖엔 빗소리가 요란하다.

미리 예약한 택시는 이미 대기 중일 텐데 비행기는 한 시간이나 연착해 마음은 급하고, 아침이라 그런지 출국심사 줄은 짧고 미리 준비한 e-비자를 내밀며 건내는 '모닝, 땡큐' 이외의 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입국심사원은 아아 한번 시원하게 들이켜줘야 깰 것 같은 얼굴이다. 출발 전 몇 번의 에러 메시지에 쉽게 포기한 세관 신고를 하러가서 컴퓨터에 천천히 내용을 입력하는 날 본 공항 관계자가 다가와 옆에서 척척 마우스를 움직여 빈칸을 채운다. 이를 지켜보던 다른 승객이 옆으로 슬그머니 다가와 도움을 받으려 시동을 걸고, 내 수화물은 아직도 나올 생각이 없다. 

잠깐 와이파이가 잡혔을 때 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한 시간 반은 기다린 택시 기사는 떠났을까? 심 카드가 없으니, 전화도 불가능하고, 일단 입국장 만남의 광장으로 나갔지만, 그 많은 대기인원 중 내 이름이 적힌 푯말을 든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잠깐의 고민 끝에 다른 이름이 적힌 푯말을 든 발리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나 심 카드 없어. 이 번호로 전화 좀 해주면 안 될까? 내 택시 기사의 번호를 보여주자, 흔쾌히 전화를 걸어 대화를 나눈다. 얘가 국내 입국장에서 기다리고 있대. 왜 거기 있대?? 몰라. 여기로 오라고 했어. 정말 고마워.


서늘한 비행기 안에선 유용했던 두꺼운 후드를 벗었는데도 더운 기운이 몸을 덮친다. 몸에 익숙한 건조한 공기가 아니다. 다른 공간, 다른 냄새, 친절한 사람. 중간중간 '얘 오고 있대. 조금만 더 기다려.' 챙기는 말. 순박한 미소.
한참 동안 기다려서 마주한 택시 기사가 주차한 곳으로 안내한다. 오래 기다려서 기분이 별로일까, 짐을 끌고 그를 쫄쫄 따라가기 전에 고개를 돌려 다시 고마움을 전했다.

계속 내리는 비와 우붓까지 갈 길이 먼 여정 내내 대화가 이어진다. 만난 지 한 시간 만에 타인에 대해 배운다. 일하는 시간(12시간이 넘는다), 한국에 대한 관심, 뭘 먹어야 하는지 대화는 중구난방이지만 여행 시작하자마자 하필이면 어제부터 날씨가 이 모양인 게 웃긴건 같다. 심 카드 없다는 얘기에 자기가 아는 곳에 데려다준다고. 계산하려고 보니 지난 발리 여행 때 남은 돈으로는 모자란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사는데 환전을 했을 리가. 택시 기사가 부족한 돈은 빌려줬다. 하하.

할머니의 집이라는 이름의 숙소까지 가는 골목은 좁고 경사가 심해서 차가 올라가지 못했다. 전화를 받은 호스트가 마중을 나와 짐을 대신 챙기고, 택시비에 심 카드 빚에 팁을 달러로 건네자 돌아오는 미소.
너무 배가 고파 호스트가 추천해 준 주변 음식점으로 걸었다. 인도네시아 돈이 없다니까 밥을 먹고 있으면 환전해다 준단다. 발리 사람들 착하다 착해.
오늘의 첫 끼를 먹으니까, 밖의 비도 운치 있게 느껴진다. 오늘의 남은 일정은 휴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