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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무디 Jun 06. 2022

서핑 일기(3)

결국 흘러버린 닭똥 같은 눈물


벌써 세 번째 바다로 향했다. 밀물과 썰물이 만나 좋은 파도를 일으키는 시간대에 맞춰 전날 시작 시간을 알려주신다. 그 덕에, 우리는 그저 준비물만 잘 챙겨서 시간에 맞게 출발하면 된다. 원래 9시에 시작하던 것과 달리 오늘은 10시까지 바다로 갔다. 어제 연습한 동작을 머릿속 한켠에서 끊임없이 연습하며 아침도 챙겨 먹고 그렇게 한 시간의 시간을 더 꿈틀거리다 짐을 챙겼다.


오늘의 파도는 많이 세지 않아서 조금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파도가 세지 않다고 해서 나한테도 약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나의 가능성을 크게 봐줬다는 의미라 믿고 감사할  있다만. 고작  번째인 나에겐  파도가  파도일  약하고   없다.  강력하고 매섭다는 뜻이다. 미리 깊이 나가겠다고 언지를 주었다면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건데, 나는  멍하니 데데가 끌어주는 곳으로 둥둥 떠내려갔을 뿐이었다. 아마 말했는데 내가  들은 건지, 굳이   해도 평소보다  들어가고 있다는  느낄  있다는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중요한   몰랐다는 것이다.



아무쪼록 아직까지 나는 그저 신나고 재밌는 서핑에 자신이 차있었다. 어제 집에서 스무 번은 더 연습한 자세를 꼭 선보이리라 비장한 다짐으로 오늘의 서핑에 불을 지폈다. 아직 패들링(보드위에서 헤엄쳐 바다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잘하지 못해 데데가 스팟을 집어주고 ‘준비됐어? 가!’ 하면 나는 원 투 쓰리 동작을 시작하는 레퍼토리이다.


이번에도 평소처럼 나를 밀어주며 ‘일어서!’ 하는 데데의 목소리를 허공에 떠가기 전에 잽싸게 주워 들었다. ‘그래 지금이다!’ 하며 출발하려는 그 순간 내가 향하는 그곳에 두둥실 사람이 있었다. 그때부터 오늘의 문제가 시작되었다.

이미 앞으로 달려가고 있는 보드 위의 나는 일어서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이 보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 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돌리는지, 저 사람은 왜 안 피하는지 등등 1초 내지 2초 만의 시간 동안 온갖 생각을 하다가 피하지 않는 그 사람과 충돌한 뒤 처참히 쓸려내려 갔다. 왜 사람이 있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으며 그쪽으로 내 보드를 밀었는지 등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치밀었다.




그 일에 나는 유독 스피드에 겁이 많은 사람이란 걸 다시 기억해내곤 온몸의 긴장감이 털끝을 세웠다. 그것은 내가 어렸을 적 스키를 타러 갔을 때, 가속도가 붙는 내리막길에서 멈추는 법을 몰라 어떤 사람과 부딪혔던 적,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다 내리막길에서 강아지와 부딪힐 뻔 한 적 등 많은 스피드에 대한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한동안 겁을 잊고 살았는데 한순간에 나는 다시 겁쟁이 꼬맹이 시절로 돌아가 흔들리는 동공에 찔끔찔끔 눈물이 맺혔다. 마치 교통사고 후유증마냥 그 아찔했던 순간이 내 밸런스를 온통 헤집어놓았다.


그 뒤로 두 번의 서핑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렸다. 긴장이 풀리지 않는 근육들 탓에 유연하게 몸을 다루지 못했고 머릿속은 하얘져 집중력을 잃었다. 물에 빠진 뒤엔 힘이 들어간 탓에 물에 잘 뜨지 않아 잔뜩 물을 먹었다. 보다 못한 데데가 몇 번을 구하러 와주었다. 좀 쉬어도 된다며 너무 자신에게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많은 사람들이 지켜주고 있다는 말들로 연신 나를 안정시키려 애써주었다. 돌아보니 남편과 와이키(남편의 서핑 코치)가 인근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무엇보다 나 스스로 나를 안정시킬 시간이 필요했다. 이 시간의 소중함을 생각하고 다시 서핑에 집중하려 애쓰며 떨리는 목소리와 닭똥 같은 눈물에 엄한 호통을 놓았다.


‘나는 내가 지켜야 해. 이 시간이 필요한 거야. 오늘 서핑을 이대로 망칠 순 없어’




다시 집중해서 서핑을 시작했다. 다행히 일어서는 것까지 몸이 다시 따라주었다. 되지도 않는 패들링을 한답시고 하도 허우적댄 탓에 팔근육이 지쳐있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며 스펀지 보드를 힘주어 잡느라 벌겋게 쓸린 손바닥이 나를 향한 원망의 표시로 매섭게 따끔거렸다. 어쩔 수 없이 보드 위에서의 내 팔다리에 대한 것까진 노력하기 벅차고, 다시 페이스를 유지하여 보드 위에 잘 서는 것만을 집중했다.


중간중간 힘에 부쳐 보드 위에 엎어지면 보이는 모래사장이 오늘따라 고요히도 평온해 보였다. 나도 저기 누워있을   사람들이 이런 세계에 있는  꿈에도 몰랐지. 어쨌든  50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저곳과 이곳이 이렇게나 다를  있다는 사실에도 이만 적응해야 한다는  내가 마주한 현실이었다. 조금만 방심해도 뒤에선 파도가 달려들 것이기 때문에..



오늘따라 데데가 매우 힘이 들어 보였다. 알고 보니 먼 곳까지 나가기 위해 나를 끌고 패들링을 하고 또 여기저기 나자빠지는 나를 케어하기 위해 들인 노고가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다. 내가 힘들면 데데는 더 힘이 든다는 걸 알게 되었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진이 쫄딱 빠져 말할 힘도 없는 나는 바쁜 숨을 고르기에 여념이 없었다.


모두 서핑이 끝나고 자리로 들어와 앉았다. 한인 코치쌤 ‘누나 내게 오늘 일에 대해 물어보더니 있었던 사고에 대한 설명을 하며 나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고 있고 스펀지 보드는 그렇게 세지 않아서 부딪혀도 크게 다치진 않아요~ 그리고 앞에 사람이 있어도 알아서 피하니까 걱정마요. 죽이려고 맘먹어도 이걸로 못 죽여요!ㅋㅋ’

그 사람은 피하지 않았고 보드는 매우 딱딱하고 무겁다는 사실이 쌤의 설명이 납득되길 가로막았다. 이어,

한국사람들이 대부분 겁이  많은 편이에요.  친구도 한국에서 배우고 여기 와서 타는데 소리 지르고 난리예요~ 말하자면 공주같이 배웠던 거죠 잘못 배운 거예요. 오늘 데데가 엄청  많이 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데데도 한국인 경험 필요해ㅋㅋ ’라는 말들을 이었다.


너무 조심조심 배워도 잘 안 늘고 그에 비해 데데가 오늘 해준 노고는 굉장했던 점을 어필하며 내가 서핑에 겁을 내지 않도록 다독여주는 말들임을 알았다.


사실 뭔가  많은 얘기를 했던  같은데 멍했던 나는 정신 차려보니 쌤이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을 간신히 주워 듣고 있었다. 그땐 하나 위로도 되지 않았지만 조금 상황과 마음이 정리된 지금은 그러려니 받아들여졌다. 누굴 탓할 필요도 이것저것 설명하고 그런다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란  알기에, 내가 노력해야 되는 부분을 찾는   이상적이었다.




집에 돌아와 눈치 없이 아프다고 소리치는 손바닥에 후딱 약을 발라주고 그랩으로 시킨 점심을 먹었다. 오늘은 하필 밥도 성에 안찼다. 이런 날엔 밥이라도 맛있게 먹어야 분이 풀리는데, 대신 남편에게 못다 한 말들을 쏟아내곤 조금 남아있던 눈물까지 모두 짜내버렸다. 그래, 뭐든 담아두면 병이 되는 법이다. 밥도 그럭저럭 배불리 먹고 나니 동전 뒤집듯 기분이 풀렸다. 종종 느끼지만 단순한 성격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오늘은 큰 수확이 없었지만 배움이 큰 날이다.


‘물에 빠졌을 땐 콧속으로 물이 밀고 들어올 수 없도록 고개를 숙이자’

‘서핑을 시작하기 전 사람이 있는지 내가 꼭 살피자’

‘파도는 인생과도 같다. 큰 파도가 다가올 때 힘주어 밀어붙이기보다 그 위로 넘어가는 게 수월하다. 보드를 넘기기 위한 스킬을 키우자’

‘몸의 방향은 옆쪽으로, 앞발에 좀 더 힘을 싣고 앞으로 나아가듯 서핑하자’


이만 오늘은 체력 보강을 위해 잘 쉬어야겠다.

그래도 바다 위의 시끌시끌한 발리 생활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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