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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무디 Jun 05. 2022

서핑일기 (2)

드디어 파도를 타다


우리는 오늘부터 본격 서핑 강습을 시작했다! 엊그제의 서핑 후유증으로 어제 하루종일을 근육통에 시달려야했지만 그럼에도 당당히 18회의 강습을 덜컥 등록했다. 뭐든 질러둬야 시작할 수 있음을 깊이 깨달으며 살아온 나는 주저 않고 할 수 있다는 마음만을 생각했다.


보드에 올라타기 전까지도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라는 마음에 겁을 놓지 못했다. 겉으로는 덤덤한 척 보드도 내가 든다며 받아들고 위풍당당하게 파도를 뚫고 걸어들어갔지만,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머릿속도 하얘지는 나를 원망하고 있었다. 나의 서핑 선생님 ‘데데’는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버스를 타고 출근하듯 매일 이 바다를 찾아온다고 했다. 아버지와 두명의 형들도 모두 서퍼라며, 다섯살때부터 서핑을 타왔다고. 그에 맞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바다의 곳곳을 꾀고있는 데데는 보드에 올라탄 나를 데리고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끌고 들어갔다.


어젯밤에 남편과 서핑에 대한 영상을 찾아보며 ‘테이크오프’ 보드에서 일어나는 연습을 미리 해뒀다.


하나에 손을 양쪽 가슴 옆에 두고, 둘에 기립근에 힘을 주어 상체를 들어올린 뒤, 셋에 뒷발부터 앞발 순으로 보드 위에 선다. 이때 중요한 건 절대 보드를 보면 안되고 내가 향할 곳 먼곳을 바라봐야 한다. 팔은 가슴 앞쪽에서 균형을 잡고 몸의 무게중심은 앞뒤로 쏠리지 않도록 중앙에 고정한다. 스쿼트 자세와는 다르게, 다리는 많이 구부리되 공을 안는 것 처럼 허리를 동그랗게 말아야한다. 다리는 11자에서 앞발이 살짝 사선으로 향하고, 몸은 옆을 향한 상태에서 고개와 팔만 앞을 찌른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이론으로 아무리 들어도 한번 몸으로 하는 것만 못하지 않나. 그래도 이론을 생각해두고 행동에 적용하는 연습이 되어야 기본부터 제대로 배워갈 수 있다. 한번 탄 파도를 기억하고 계속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계산해서 다음 파도를 탄다.


첫 파도를 탔을 땐 실패했다. 데데가 보드를 보지 말고 가는 곳을 멀리 쳐다보라며 지적해줬다. 두번 째엔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물만 먹었다. 팔을 앞으로 향하게 뻗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번째, 드디어 일어섰다!! 일어서 있는 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신기해서 어리둥절 하다가 풍덩 빠졌다. 어안이 벙벙했다. 멀리서 데데가 엄지를 치켜세운다. 정신을 차리고 방금 어떻게 탔는지를 몸에 기억시켰다.


‘아 정말 앞을 보면 되는구나!!’


엊그제는 물에 빠지면 데데가 내가 있는 곳까지 와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구해주기 바빴는데, 오늘은 내가 패들링(보드를 타고 헤엄쳐 가는 것)을 해서 안쪽까지 들어가려 노력했다.

파도가 다가올 때 맞춰 보드의 테일(꼬리부분)을 푹 눌러서 보드가 파도 위를 타도록 하면 수웅- 잘 넘어간다. 문제는 보드는 이제 곧잘 넘기며 파도를 뚫고 들어가는데, 정작 나는 파도에 후두려 맞느라 앞으로 못간다. 걸어서 보드를 끌고 들어가다가, 저 멀리서 보드 위에 탄 언니오빠들이 파도 위를 들썩들썩 넘어가는 걸 보고는 겁없이 보드 위로 올랐다. 결과는 한방에 패대기쳐졌다.

보다 못한 데데가 나를 구하러 와주면 나의 ‘허둥바둥 쇼’가 끝이난다. 언젠간 나도 혼자서 파도를 뚫고 저멀리로 나갈 수 있겠지.. 생각하며 데데가 끓어주는 힘에 의지한 채 다시 파도를 향해 간다.


한번 일어서고 나니 조금씩 수월해지기 시작했다. 또 한번은 일어서서 꽤 오래 파도를 탔다. ‘이야, 나도 되는구나 진짜 신기하네’ 혼자 감탄하며 점점 더 붙는 재미를 만끽했다. ‘그래, 엊그제 보단 힘도 좀 더 세졌고 파도도 덜 무서운 걸 보니 나도 프로서퍼 꿈꿔봐도 되겠군’ 달콤한 상상도 하며 연습을 이어갔다. 몇번을 더 타고 오늘의 서핑을 마쳤다.


끝나고 데데와 개인적인 질문들을 나누며 조금 더 친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과음해서 피곤하다는 말에 얼굴에 다 써있다는 등의 대답을 건내며 웃음을 나눴다. 어린 친구이기도 하고 조금 낯가림이 있는 편인 것 같아 많은 대화를 나누기는 아직 어렵지만 분명 순수하고 착한 친구임에 틀림없다. 패들링도 잘하고 빨리 배우는 편이라는 진실인지 모를 칭찬을 건내며 오늘 정말 잘했다고 다시 엄지를 치켜세웠다.


오늘은 남편의 서핑 강사 ‘와이키’ 와 한인 서핑강사 ‘누나’ 그리고 싱가폴 출신의 이름모를 친구까지 다같이 서핑을 즐기고 수다를 떨었다. ‘누나’는 본명은 따로 있지만 다들 그렇게 불러서 이름으로 두었단다. 싱가폴 친구는 싱가폴이 너무 지루해서 발리에 넘어와 칵테일바를 하고 서핑을 즐긴다고 한다. 다들 서핑으로 하나되어 나누는 대화들이 참 활기차고 다양해서 재밌었다.


‘누나’는 남편과 나의 잘못된 자세를 짚어주며 집에서 연습하면 좋을 부분들을 알려주었다. 영어든 콩글리시든 다 필요 없고 한국말이 최고다. 한국인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명쾌한 표현들로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시원함이 들었다.


‘상체를 세울 때 고개를 드는데 그러면 안되고 기립근에 힘을 주어 힘껏 상체를 들어올려야해요. 처음엔 힘든데 힘들어도 더 세워야합니다.’

‘뒷발을 앞으로 가져올 땐 다른 쪽 다리의 무릎에서 주먹 하나 정도 더 앞쪽까지 끌어당겨야해요.’

‘보드 위에 선 뒤엔 무게 중심을 중심에 잡은 채로 상체는 옆을 향하게 두고, 고개와 팔만 앞을 향해여. 몸을 뒤로 빼지 마세요. 앞발 쪽에 조금 더 힘을 싣고 다리는 더 구부립니다.’


자세하고 친절하게 알려주시는 설명에 따라 두어번 따라해보고 더 연습을 해오겠다는 약속을 남겼다.

내일을 위해 오늘은 이만하고 집으로 향했다. 이제 좀 헷갈리긴해도 지도 없이 잘 찾아온다. 인간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라 했다, 벌써 스미냑이라는 지역이 내집 우리 동네가 되어간다. 12시. 뜨거운 햇빛이 내리쬘 죽음의 시간 전에 집에 도착했다.


그랩으로 점심을 시키고 몸을 씻은 뒤 뜨거운 볕 아래 빨래를 널어두었다. 이런 즐거운 일들로 하루를 채운다는 것에 잔뜩 신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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