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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무디 Jun 04. 2022

서핑 일기 (1)

나는 발리에서 생애 첫 서핑을 배우게 되었다.



어젯밤 우리는 호기심에 서핑 강습을 신청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는 건 이곳은 발리 중에서도 발리 스미냑이지 않나. 게다가 서퍼들의 바다라 불리는 꾸따 비치 앞에 자리를 잡아놓고 한번 타보지도 않고 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튼 그렇게 나는 발리에서 생애 첫 서핑을 배우게 되었다.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까지 한참 서핑에 관심을 갖고 타던 그야말로 바다 사나이다. 첫인상에서부터 풍기던 그 파아란 아우라의 비결이었을지 모른다.

그런 남편이 발리에서 다시 서핑을 한다는데, 나도 꼭 배워서 같이 타겠다는 굳은 의지로 사기를 다졌다.


조금 흐린 하늘에 해가 그리 쨍하지 않았던 아침, 서핑하기에 딱 좋은 날씨라며 우리는 바다로 향했다. 9시부터 11시까지 딱 두 시간의 강습, 이걸 나도 해본다니. 여행에선 역시 일말의 없던 자신감도 마구 생기는 게 분명하다. 도착한 바다는 오늘따라 더 광활해 보였다. 나름 일찍 시작한다고 왔는데도 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벌써 한창인 사람들. 서퍼들은 부지런도 해야 되고 열정도 보통 열정으론 안될 스포츠다. 처음으로 바다에 온몸을 담그러 온 나는 쭈뼛쭈뼛 모래사장의 모래를 꼼지락거리며 몸을 움츠렸다.


그래도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예약한 덕분에 조금 수월할 거라는 막연한 안도감에 마음을 풀고 아침 대신 사온 에너지바로 공복을 조금 채웠다.

9시 즈음 도착한 한국인 강사 부부와 발리 친구 ‘데데’가 멀리서 우리를 알아봐 주었다. 한 달만의 한국인과의 대화에 벌써부터 즐거움이 달려들었다. 서로에 대한 가득한 질문들을 추후에 미뤄두고 우리의 주목적인 서핑 강습에 집중하려 애쓰며 나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근육도 힘도 없는 나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거침없이 밀려 나오는 파도의 역방향으로 씩씩하게 걸어 들어갔다.


결과는 역시 처참했다. 나는 짜디짠 바닷물을 하루에 먹는 물의 양보다 더 마시고 물속에서 열몇 번의 덤블링을 한 뒤 정신을 차려보니 한 시간이 지나있었다. 감히 두 시간이 짧다고 생각했던가. 잠시 쉬는 타임을 가지며 그래도 두어 번은 일어섰다는 말들로 내 노력을 위로하고 다시 바다로 향했다. 무식하리 만치 악바리 근성이 있는 나에겐 오늘 제대로 일어서는 것까지는 하고 가야 했다. 몇 차례 파도를 더 타고 오늘 강습을 마무리 지었다. 파도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 걷히고 일어서는 감을 조금 익힌 것으로 오늘 할당량에 도장을 찍었다.


강습이 끝나고 앉아서 우리는 미뤄둔 수다를 떨었다. 아직은 약간의 경계심을 가진 거리를 두고 앉아서 평범한 통성명부터 나름의 가진 사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세상은 좁고 인연은 많다. 역시 외국에서 한국인 만나면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공통점에 친밀감을 붙이고 특이점에 관심을 더하며 우리는 짐짓 한 시간 정도의 수다를 떨고 나서야 자리를 정리했다.


앞으로 몇 번의 강습을 더 받을지를 의논하며 집으로 향하려는 순간 소나기가 쏟아졌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비는 언제나 시원하고 반갑다. 내내 더운 날씨가 이어지던 찰나에 내려주는 소나기는 단비가 아닐 수 없다. 언제까지 기다렸다가 가느냐며 어차피 바다에서 젖은 몸 그냥 가기로 하고 오토바이에 올랐다. 이렇게 쫄딱 비를 맞는 건 발리에서 벌써 두 번째다. 재밌어 죽겠다는 듯이 호탕하게 웃으며, 알면서도 알지 못할 이 행복을 맘껏 누렸다. 지도 없이 왔던 길을 기억하며 남편의 등에 꼭 붙어 집으로 달렸다. 비 오는 날은 꼭 추억을 만든다. 한국인들과의 즐거웠던 서핑과 수다, 우리의 까만 살갗을 때리는 소나기에 우리의 이야기 한 소절이 더 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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