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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무디 Jun 16. 2022

서핑 일기(5)

서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022.06.16


요즘은 선생님 집에 모여서 한 차로 다 같이 이동한다. 큼지막한 보드 4개를 겹겹이 쌓아서 자동차 머리 위에 이고, 좁은 골목골목을 지나 바다로 향하는 길. 꼭 소풍을 가는 것만 같다. 보드들이 떨어질까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꽉 조여 맨 끈이 생각보다 딴딴한 게, 떨리는 마음마저 불끈 잡아준다. 보드를 데리고 바다로 가겠다고 이런 방법을 생각해 낸 사람들의 아이디어에 귀엽고 대견한 웃음이 난다.


그렇게 한 배를 탄 듯 다 같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오늘의 바다를 체크하기 시작한다. 초보인 우리가 감당해낼 수 있는 파도를 보여내는 곳을 찾아서. 혹 번거로울 수 있음에도 기꺼이 할 일을 한다는 이들의 전문가 다운 면모에 점차 두터운 신뢰에 쌓여간다.


매일 다른 하늘과 바람, 그 아래 바다에도 매일 다른 파도가 친다. 그에 대해 ‘파도가 두껍다, 파도가 날카롭다’ 등등 전문 서퍼들의 표현 방법들이 참 재미지다. 언젠간 나에게 맞는 파도를 찾아 헤매지 않고, 여러 파도를 골라서 탈 수 있는 때가 오기를 슬쩍 욕심내어본다.


뭍에서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우리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보이듯 선명히 마음에 그려진다. 앞을 보면서도 사방을 모두 느낄 수 있음은, 내가 이 시간을 진정으로 마주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바닷물에 보드와 몸을 담그는 순간부터 그저 몸이 기억하는 대로 정신을 집중한다. 그러면 이 시간만큼은 바다에 모든 걸 내맡겨도 될 듯이 마음이 편해지고 든든하다.


발리의 바다엔 전문 서퍼들이 굉장히 많아, 보고 배울  있는 좋은 본보기가 많다. 패들부터 해서 파도를 넘고  파도를 타는,  모든 것들을 영상이 아닌 실제로   있다는 것에 황홀하다. 둥실둥실 각기 자리를 잡고 본인에 맞는 파도와 차례를 기다리는 서퍼들. 그동안의 틈을  수다를 떠는 모습도  흥미롭다. 카페나 술집이 아닌 바다 위에서 웃고 떠들며 근황을 나누다니, 이건 바다   다른 세계의 문화인 듯하다.  모습을 보며 나는 왜인지 마음이 뜨뜻해지며 감동을 받는다.




나는 지금 패들링을 통한 몸의 힘과 스피드를 키우는 데에 전력을 쏟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도를 한번 타고 바닥까지 휩쓸려 내려오면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바깥쪽에 있을수록 거센 파도를 맞기 쉬워서 되도록 안쪽으로 빨리 들어가야 안전한데, 물에 빠지고 난 뒤 후다닥 보드에 올라타도 패들링이 느리니 파도가 내리치는 구간에 갇히기 일쑤다.


나는 늘 그럴 때마다 ‘바다야 한 번만 살려줘!!’ 하며 치열하게 팔을 돌린다. 힘들어도 ‘조금 더 가야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주문을 외우며 불타는 팔에 기름을 붓는다. 어디서 들었던 ‘죽을 것 같아도 죽지 않는다’는  특수부대 교관들이 할법한 말들도 마구 뱉어본다. 그야말로 혼자 찍는 인간극장이라 할 수 있다.


자꾸 보드의 노즈(코)가 왼쪽으로 기울고 앞을 나아가기 위해 두 다리의 거리가 멀어지는 점이 문제를 고착시킨다. 다리는 딱 어깨보다 살짝만 더 벌린 정도에 많이 앉지 않아도 된다. 많이 앉으려다 보니 엉덩이가 뒤로 빠지기 일수다. 늘 무게는 앞다리에 좀 더 실려있어야 한다.


사실 아직 보드를 완전히 다룰 줄 아는 것도 아닌지라 보드 위에서 내 모습의 문제점을 바로잡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체 힘도 많이 부족한 데다 그에 맞는 요령도 없으니 원하는 실력을 보여낼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늘 강습이 끝난 뒤엔 선생님이 자세히 코칭을 해주시고 하나 둘 필요한 자세를 알려주신다.


보드 위에서 몸 전체를 사용하는 첫 번째 연습을 시작했다. 뒷발에 힘을 실으며 팔을 크게 돌리고 다시 앞발에 무게를 실어 자세를 잡고 파도를 타는 것인데, 보드와 함께 방향 전환을 위해 필요한 동작이라고 할 수 있다. 눈과 손만 그 방향을 향한다고 해서 보드가 바로 따라가지 않고, 춤을 추듯 보드와 한 몸이 되어 몸을 이리저리 다뤄야 한다. 이것도 너무 뻣뻣하면 배우기 힘들다. 춤도 운동도 좀 유연해야 동작을 빨리 흡수한다. 고로 뻣뻣 그 자체인 나는 연습에 연습을 할 것을 철석같이 약속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처음으로 남편과 동시에 파도를 타보기도 했다. 이건 또 처음인데, 서로의 동선이 겹쳐 부딪힐까봐 피하는 참에 오래는 못 갔지만 잠시라도 파도 위의 내 옆에 남편이 있었다. 이맛인가! 같이 서핑하길 정말 잘했다는 뿌듯함이 노력의 의미를 더했다. 평소보다 더 실력이 오른 남편은 오늘 서핑 정말 즐거웠다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눈으로 사진을 찍는다면 나는 그 모습을 콕 집어 간직하겠다.


서핑 후에 나누는 담소도 빠질 수 없다, 오늘은 어땠고 어떻게 더 해야 되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며 시원한 음료수를 들이켜면 피로가 싹 가신다. 젖은 수영복 위로 입은 옷이 찝찝하기는커녕 포근하게 힘이 든 몸을 감싼다. 의자에 축 늘어져 오늘의 서핑을 마무리하는 그 시간까지도 나에겐 서핑의 시간이다.


새로 배운 동작을 조금 연습했다고 허벅지 근육이 욱신대며 알이 솔찬히 차올랐다. 이러다 온몸이 근육으로 덮이고 운동 안 하면 밥도 안 먹는 사람이 될 것만 같다. 알 배긴 허벅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있기에 가시밭길에 맨발 올리듯 조심스레 연습을 한다. 그래도 이 또한 금방 적응될 것이라는 생각이 이젠 무의식에 자리 잡았는지 못하겠다는 생각은 안 든다. 왠지 긍정적이고 건강한 내가 되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신기하게도 매일 조금씩 늘어나는 힘과 체력에 재미가 붙는다. 파도가 아무리 세차게 달려들어도 버텨낼 힘과 요령이 생기고, 패들링에도 점점 속도가 붙는다. 1시간 남짓이면 체력이 바닥나, 잠시 쉬었다 다시 들어가곤 했는데. 이제는 두 시간이 꽉 차도록 간당간당 힘이 붙어있다. 참 신기한 노릇이다. 분명 계단식으로 실력이 늘 거라고 했는데 아니다, 나는 매일 조금씩 늘고 있다. 힘도 체력도 스킬도 모두 하루하루 달라짐이 느껴진다.


내일은 오후 서핑이다. 오전에 미리 동작을 연습하고 가기로 다짐한다. 좋은 파도는 매일 나를 위해 오지 않는다. 준비된 사람만이 불시의 좋은 파도를 잘 탈 수 있음을 기억하기. 매일이, 하나하나의 파도가, 맑은 날씨가 전부 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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