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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무디 Jun 28. 2022

서핑 일기 (7)

나를 믿는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을!


2022.06.23 - 25, 28


발리의 날씨는 대게 좋은 편이지만 며칠 바람이 세고 먹구름과 비가 하늘을 메웠다. 발리의 6월에 비가 내린다는 건 굉장히 의아하고 통상적이지 않은 현상이라는데, 지구가 아프다는 것을 기상이변을 통해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이다. 서핑은 자연 속에서 즐기는 스포츠인만큼 서퍼들은 기후와 날씨, 바람 등 자연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지구가 정말 아픈가 보다’ 하는 그들의 말에 심각성을 체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오늘은 며칠 만에 바람이 멎고, 아주 맑고 화창한 하늘이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파도도 아주 좋은 날이라며, 선생님은 벌써 아침 일찍 서핑을 한차례 즐기고 왔다고 한다. 나이가 나보다 15살은 더 위인데, 서핑의 세계에선 나이가 잊힐 만큼 건강하고 멋있는 분. 젊음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과 의지에 담겼다는 것을, 발리의 서퍼들을 통해 매 순간 깨닫는다.




이전 3회의 강습 동안 큰 나아짐 없이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지적받고 끊임없이 고치려 노력하는 날들을 보냈다. 많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 가지에 대해 집중할 땐 많은 생각 없이 단순함이 도움 될 때가 있다. 요 며칠은 오직, 자꾸 왼쪽으로만 가는 것에 대한 요인이 되는 문제점들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엉덩이가 너무 뒤로 빠지는 것, 가려는 쪽에 두는 시선, 그리고 경직된 몸의 유연성.


우선 무게중심이 자꾸 뒤꿈치에 몰려 나도 모르게 엉덩이가 뒤로 빠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테이크 오프를 좀 더 연습하며 나쁜 자세를 고쳐보았다. 테이크 오프는 이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고 큰 신경을 두지 않았는데, 정말 크나큰 오산이었다. 다시 연습을 해보니 아직도 엎드린 자세에서 서서 라이딩을 하기까지 균형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정확한 감도 익히지 못한 상태였다는 걸 깨달았다. 테이크 오프는 무의식적으로 몸에 익혀져야 파도와 맞닥뜨렸을 때 빠르고 정확히 일어설 수 있는데 말이다.


두 번째로 시선을 가려는 방향에 고정하지 못하고 앞에 보았다가 또 옆을 보았다가 하는 탓에 보드의 방향마저 갈 길을 잃는다는 것을 알았다. 내 시선 하나에 몸과 보드가 따라간다는 것을, 그러니 가려는 곳 한 방향만을 보고 달려가야 한다는 것을 수차례 머리에 각인시켰다.


마지막으로 몸의 유연성. 다리 찢기나 브릿지 자세와 같은 유연성과는 다른, 몸에 힘을 풀고 파도의 모양과 상황에 맞게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을 말하는 것이다. 몸에 힘이 너무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몸이 경직되고, 울렁울렁 변하는 파도 위에서 꼿꼿하게 서있는 나무판자가 되는 꼴을 면할 수 없다. 가려는 방향으로 시선을 두었으면 내 몸도 자연스레 따라가도록 힘을 풀어야 한다. 힘을 풀되 균형은 유지. 되내고 또 되뇐다.




이 모든 것이 머릿속에 정리가 되고 이제 내 몸만 따라주기를 바라며 연습을 반복한 지 3일. 그리고 오늘 드디어 길고 멋진 파도를 탈 수 있었다. 그렇게 잔뜩 들어가 나올 생각 않던 힘들은 어디 가고, 가벼워진 몸으로 시원하게 라이딩을 클리어했다. 이상하지만 신기하고, 처음 맛보는 라이딩에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상쾌했다. 그동안 묵묵히 연습한 보람이 있구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구나 하며 혼자만의 감격을 누리고 있으니 저 멀리서 남편과 서핑 코치 와이키가 엄지를 추켜올린다.


그 뒤로 두어 번의 파도를 멋지게 타고, 간만에 서핑의 재미를 한껏 누려보았다. 한번 감을 익히니 두 번 세 번은 수월하게 되었다. 이틀 쉬고 온 탓에 그새 힘이 빠진 어깨 근육으로 하는 패들에는 한계가 컸지만, 지금껏 가장 즐거운 서핑이었다. 나도 이 바다에 저 멋진 서퍼들과 함께 떠있을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 느낌이랄까!


서핑을 하며 필요한 요소들은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다. 나를 믿고 나아가는 힘. 이번 파도를 잘 탈 수 있다는 믿음. 실력이 잘 늘지 않는 것 같아도 언젠간 될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바다와 바다의 모든 이들이 나를 응원해준다는 믿음.

그 믿음 하나가 자신감과 용기, 집중력을 가져다줄 것이다.


내 삶에서,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믿는다는 것은 그 누구의 응원보다 힘이 세다. 한 달 안에 멋진 라이딩을 한번 해본다는 목표가 때로는 부담이 되어 정체기도 있었지만, 결국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모든 걸 극복하고 목표를 이룬 것이다. 알을 깨고 더 튼 세상으로 나온 것 같은 설렘과 뿌듯함이 나의 자존감을 한 층 더 높였다.


앞으로의 날들에서 자신이 없고 무서울 때, 나는 오늘의 순간을 기억하기로 했다.


나를 믿는다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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