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예정지를 걷다가
재개발, 빈 방, 그리고 꽉 차있는 나의 마음
아래 글은 8년 전에 끄적였던 글을 그 당시 느낌을 떠올리며 조금 수정하여 올리는 글입니다.
재개발의 파도가 밀려오는 비산동 골목길을 걷다 보면, 깨진 창문 사이로 텅 빈 방들이 눈에 들어온다. 찢어진 벽지와 뜯겨진 장판은 떠난 사람들의 흔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길고양이들이 잠시 쉬어가는 공간으로 전락한 이 방들은, 창고나 쓰레기장이 되기 전의 짧은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나의 매장은 바로 이 변화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주변 700 가구가 이미 떠났고, 3,000 가구가 추가로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사를 떠나는 사람들은 때로는 깨끗이 청소하고 떠나지만, 대부분은 필요 없는 것들을 그냥 두고 간다. 그들이 떠나기 전까지는 그럭저럭 쓸만했을 물건들을 흉하게 버리고 가는데, 그 모습이 나에게 어떤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 이 빈 집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었던 걸까? 찢어진 벽지와 장판만 남은 빈 방들은 타인에 의해 허물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만 같아 괜히 서글프다. 회색 시멘트 벽과 바닥이라는 부끄러운 속살을 숨겨주기엔 역부족일 수밖에 없는 벽지와 장판이 애처롭다.
만약 이 빈 방들이 재건축을 거쳐 깨끗이 청소되고, 새로운 도배와 가구, 주인을 맞이한다면, 그것은 희망의 상징이 될 것이다. 이 두 종류의 방은 똑같이 비어 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그렇다면, 나의 마음의 방은 어떨까? 나의 마음의 방은 무엇으로 가득 차 있을까? '내가 옳다', '내가 더 많이 안다', '너는 내 레벨이 아니다' 같은 생각들로 가득 차 있지는 않을까? 이것들은 과연 내 방에 한 사람이라도 새우잠이라도 잘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고 있을까?
생각해 보니, 한때는 필요에 의해 채웠지만 이제는 필요가 다해 버려진 물건들로 가득 찬 방이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내 안의 내가 너무 많은 방이며 가득 찬 물건들로 인해 문조차 열리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 이쯤 되면 이걸 방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창고일까? 아니, 솔직히 말해 이 장소에 적합한 말은 쓰레기장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읽다 보니, 노자는 "무(無)란 그냥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의 근본"이라고 했다. 그릇의 속이 비어 있음으로 해서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생기는 것처럼, 방을 만들 때도 방의 비어있음, 그 없음으로 해서 방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비워진 그릇이야말로 그 쓰임을 발견한다고 노자는 말한다. 비워진 방이야말로 그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비워짐이야말로 모든 것의 근본이다. 그렇다면 내가 나로 가득 차 있음으로써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비워져야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모하게 쌓아 올린 자신감과 지식, 자만이 내 방을 창고로, 아니 쓰레기장으로 만들었다면, 이제 그것들을 비워내야 할 때이다. 내 방을 다시 비워내어, 그 속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한 사람이라도 새우잠을 잘 수 있는, 그리고 내 자신이 진정으로 쉴 수 있는 공간을 말이다.
비워진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맞이하는 준비 과정이다. 재개발 지구의 빈 집들처럼, 내 마음의 방도 비워져야만 새로운 것을 맞이할 준비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비움을 통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내가 되고자 하는 사람으로 그것이 무언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빈 그릇, 빈 공간의 다른 느낌. 이 비움을 통해 나는 새로움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내 방, 내 마음을 비워내자. 그 비움 속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