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by 서채


몸도 마음도 무거운 출근길.

<정말 가벼움>의 가면을 쓰고 발걸음을 옮긴다.

그냥 가벼움이 아닌 '정말 가벼움'의 가면은 생각보다 훨씬 무겁다.

두꺼운 가죽옷으로 몸 전체를 빈틈없이 감싼 느낌이라고 할까.

내 모습을 남들에게 들킬 염려가 없어 좋지만 잘못하면 내가 먼저 질식할 수도 있는 철가면과 같다.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이미 발 디딜 틈 없는 엘리베이터에는 고양이 가면, 독수리 가면 등등 여러 종류의 가면들이 그 희귀성을 뽐내며 촘촘히 서 있다. 그 가면들 가운데 당당히 위치하고 서 있는 작은 아이들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초등 1학년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 둘이 알록달록한 가방을 메고 신주머니를 든 채 서로의 휴대폰을 보며 얘기를 나눈다.

둘 다 가면은 쓰고 있지 않다.


"지은아. 우리 아빠 보여줄까?"


"응. 보여줘"


한 아이가 휴대폰에 저장된 아빠 사진을 앞으로 내민다.

조용한 엘리베이터 안이라 그런지 아이들의 대화가 더 또렷이 들린다. 모든 이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우리 아빤 변호사야. 그래서 돈이 엄청 많아"


"어? 나 학교에서 니네 아빠 봤어. 근데 왜 이렇게 늙었어? 할아버진 줄 알았어"


"그지? 결혼을 많이 해서 그래. 니네 아빤 결혼 몇 번 했대?"


"나도 모르겠는데. 이따 물어봐야겠다"


순수하다.

아이들의 대화가 끝나는 순간,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가면들이 녹아내리며 웃음이 터졌고 곧이어 신기하게도 철통 같던 나의 가면도 주르륵 녹아내렸다.

15년 묵은 내 가면을 녹아내리게 한 아이들의 순수함은 정말 대단하다.


언제나 퇴근길에서만 찾아왔던 상쾌함이 오늘은 출근길에도 찾아왔다.




결혼. 너무 많이 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