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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 목공을 배우다

3. 가구제작에서 목공 소품으로...

by 꿈꾸는 나무

거실 책장을 수개월에 거쳐 끝 마치고 나니 당분간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가구 만들기는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더 이상 우리 집에는 새로운 가구가 들어설 공간이 없기도 했다. 그래서 당분간은 딱히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는 목표 없이 습관처럼 마음 편히 공방에 나갔다. 어렸을 적 어른들이 뚜렷한 목적 없이 밖에 나가는 것을 "마실 나간다"라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 나의 상태가 주말이면 공방으로 "마실 나간다"는 표현이 절절한 것 같다. 그러면서 나중에 지인의 집들이 선물로 쓸 도마, 물고기 모양의 계란 트레이, 수저 받침대 같은 소품들을 만들면서 시간을 소소히 보냈다. 그러면서도 뭔가 근사한 소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갑자기 체스판과 체스말들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과 아내가 체스 두는 걸 즐기는데 시중에 쉽게 구할 수 있는 플라스틱 재질의 저렴해 보이는 체스판 말고 원목으로 된 고급스러운 체스판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었다.

유튜브를 검색해 보니 근사하게 원목으로 체스판을 만드는 동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도마재료로 쓰려고 잘라둔 월넛과 캄포나무를 각각 1장씩 공방에서 구매하였다. 체스판을 만들려면 짙은 색과 연한 색의 두 가지 서로 다른 색의 원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원목판재의 두께가 25mm라서 그대로 쓰기에 나무가 아깝다는 생각을 하였으나, 어차피 원목의 고급 체스판을 만들기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쓰기로 했다. 두 가지 나무를 깍두기 썰듯 일정한 모양으로 재단한 다음 체크무늬가 되도록 본드를 발라 고정시켰다. 체스판은 총 64개의 정사각형 조각으로 체크무늬를 이루고 있다. 체스의 체크무늬가 완성된 다음, 고급스러움을 더해주기 위해 엘더(오리나무)로 테두리를 만들고 네 귀퉁이는 월넛으로 포인트를 주어 마감을 하였다. 만들고 나니, 뭔가 고급스러운 체스판이 완성된 것 같다. 원장님이 보시더니 지금껏 공방에서 만든 소품 중에 최고라고 칭찬해 주신다. 그러고는 밑이 썰렁하니, 황동으로 된 받침대 4개를 선물로 주셔서 장착하고 보니 고급스러움이 훨씬 더해진 것 같다.

KakaoTalk_20240921_204632294_20.jpg 64개의 조각으로 구성된 체스판, 짙은색은 월넛(호두나무), 베이지색은 캄포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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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체스판


고급스러운 체스판을 완성하고 나니, 체스말들을 직접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예전에 초등학교 선생님을 정년퇴임하시고 진정 공방으로 마실을 나오시는 선생님에 계시는데, 그분이 손자들을 주려고 만들었던 공예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체스말들의 앞, 옆 윤곽이 그려진 스케치를 인터넷에서 구해서, 그대로 자르는 방법을 쓰기로 했다. 장비는 스크롤쏘를 이용하기로 했다. 스크롤쏘는 정밀하게 나무를 절삭할 때 쓰는 장비다. 매우 얇은 실톱이 위아래로 진동하면서 나무를 자르는데, 정밀한 가공이 가능하다. 총 32개의 체스말들을 하나하나 가공했다. 먼저 앞면의 스케치대로 나무를 자르고, 다시 붙여서 옆면의 스케치대로 자르면 그럴듯한 체스말의 형상이 나오고, 나머지는 드레멜 조각기로 마무리를 해주었다. 이 작업은 가구를 만드는 목공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작업이었다. 뭔가 조각가가 되어가는 느낌도 들기도 하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체스말을 갖게 된다는 설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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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말 제작 과정


체스판과 말들을 집에 가져와서 아들과 첫 체스게임을 하던 날이 생각이 난다. 고급스럽기는 한데, 너무 커서 지금은 아들 방 서랍장 위에 고이 모셔두고 있지만, 아직도 내가 만든 작품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게 뭐냐고 물으며, 주저 없이 난 체스판과 체스말이라고 얘기한다.

아... 다음에는 무엇을 만들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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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체스 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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