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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 목공을 배우다

2. 길이 4m 책장에 도전, 거실을 바꿔보자.

by 꿈꾸는 나무

선박이나 자동차는 설계를 시작하면 실제 물건이 나오기까지 최소 몇 년에서 많게는 10년 이상의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목공은 설계를 완성하면 바로 제작에 들어가서 몇 주 안에 결과물이 나온다. 때로는 설계도를 그리지 않고도 머리의 생각과 간단한 스케치만으로도 멋진 결과물이 나오기도 하고, 설계를 정말 완벽하게 했다고 생각해도 실제 작업하다 보면 설계 변경 요소는 필수적으로 발생한다. 이게 목공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매주 주말에 정말 급한 일이 아니면, 항상 공방에 가서 꾸준히 가구를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안방, 아들방, 딸방, 주방에 내가 만든 가구들로 하나둘씩 공간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뭔가를 계획하고, 실행해 옮기고 그 결과물에 스스로 만족하는 일들에서 소소한 성취감을 얻을 수 있었고, 그러한 일들이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았다. 매주 주말이 기다리지고 나를 설레게 만들었고, 주말에 공방에서 작업을 끝낸 후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한주를 마무리하고 시작하는 일상이 어느새 나의 바쁜 주말 루틴이 되었다.

목공방은 또 다른 매력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다. 직장에서 매일 만나던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 은퇴한 초등학교 선생님, 이 공방에 수강생으로 시작해 이젠 TV에 협찬까지 하는 공방 창업자(만수브라운), 공무원, 군인, 전업주부, IT 사업가, 감정평가사 등 정말 다양한 목공인들과 허물없이 서로 작품을 칭찬하고 조언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공방에서 본래의 직업은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냥 목공이 좋아서 모이는 사람들일 뿐...

다음 작품을 한참이나 고민하던 끝에 거실의 오래된 책장을 교체하기로 마음먹었다. 신혼 초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 가구점에서 구매한 저렴한 MDF 재질의 책장 3개가 세월의 때를 머금고 거실 한편을 차치하고 있다. 책장이기는 하지만 온갖 잡동사니가 질서 없이 마구 놓여 있는데, 이 책장들 때문에 거실 전체 분위기가 번잡스럽고 우중충했다. 한 집의 거실은 그 집안의 분위기와 전통, 가족의 역사를 말해 주는 상징적인 공간인데, 우리 집은 저렴한 책장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고 그 안은 집안 잡동사니로 채워져 있다. 언젠가 또 이사를 할터이니, 이젠 정성스러운 정리는 포기한 지 오래다. 잦은 이사로 제 자리를 찾지 못해 구천을 떠도는 물건들의 종착지는 항상 거실 책장이었다. 길이만 4m가 넘는 거실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이 녀석들을 멋진 원목 책장으로 바꾸고 우리 집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기존의 작품들과는 다르게 매우 손이 많이 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나중에 공방에서 집으로 옮길 것을 생각해서 책장의 최대 크기는 폭 1.2m를 넘기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책장을 4개로 나누어 제작하고, 위에는 책들을 꽂는 책장으로 아래는 잡다한 물건들을 수납할 수 있는 수납장으로 분리하여 설계를 했다. 그리고 맨 마지막 책장은 숨을 곳이 없어 항상 구석진 공간을 찾아 헤매는 불쌍한 우리 집 냥이들을 위한 캣타워와 숨숨집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캣타워지만, 책장들과 어울리게 설계하여 자연스럽게 하나의 가구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다.

스크린샷 2024-03-16 203238.jpg 거실 책장의 초기 설계도

나무의 재질은 레드오크로 하고 싶었으나, 재정적인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엘더(오리나무)로 하기로 결정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조금 부담되더라도 레드오크로 할 것을 좀 후회가 된다. 어차피 들어가는 노력은 같은데, 나무 재질에 따라 느낌과 값어치가 재료값의 몇 배 이상으로 영향을 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도면을 그리고 나니, 가슴이 막 셀레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한 3~4개월은 뭔가에 집중할게 생긴다는 설렘과 거실 한쪽 벽면 전부를 내가 손수 만든 가구로 채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위 설계도대로 한다면 그리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을 텐데.... 아래 수납장 문짝의 디자인을 바꾸면서 나중에 공방에서 나의 별명인 "문짝 장인"을 얻게 해 준 힘든 작업공정이 추가가 되었다. 나무는 습기를 머금고 내뿜으면서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 그래서 위의 도면처럼 문짝을 저렇게 직사각형 하나로 만들면 언젠가는 문짝이 나뭇결의 직각방향으로 휘어지게 된다. 그래서 문짝 뒤에 나뭇결과 반대로 보강재를 덧대어 주던가, 아니면 문짝을 우리 전통 창호처럼 틀을 만들고 내부를 합판이나, 천을 덧대는 방식으로 제작해야 한다. 아래 도면처럼 문짝 설계를 변경하고 내부는 낙엽송 합판으로 마감을 하기로 했다. 나무도 아끼고 나중에 뒤틀리는 일이 없을 것 같아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며 재단하고 작업을 시작했는데, 한참 작업이 진행하고 낙엽송까지 주문을 마친 시점에서 아내가 낙엽송 무늬는 죽어도 싫다고 한다. 이제와 설계를 바꿀 수도 없고 참 난감한 상황이었다.

스크린샷 2024-03-16 211134.jpg 변경된 문짝 설계도

원장님과 상의 끝에 낙엽송 위를 서로 다른 나무들의 색상을 이용하여 기하학적인 패턴을 넣는 방식으로 낙엽송 합판을 가리기로 했다. 문짝 틀 만드는 시간보다 저곳을 채울 패턴을 만드는 것이 너무도 시간이 많이 소모가 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패턴으로 시작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문짝으로 가면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 위해 고민 끝에 아래 그림과 같은 패턴을 제작하게 되었다. 세 번째 패턴은 무언가 새로운 것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티브이에서 어느 업체의 상표로 나온 패턴을 화장지에 그려두었다가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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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타워의 문짝은 고양이 발자국으로 패턴을 만들어 고양이 두 마리의 공간인 것을 직관적으로 알게 하였다. 정말 힘든 작업이었다. 공방 동료들이 문짝을 하나하나 완성할 때 마다 칭찬해 주었고 다음 문짝은 뭐냐고 묻곤 했다. 그래서 얻게 된 별명이 "문짝장인"이다. 총 8조각으로 나누어 제작된 책장이 하나하나 완성되어 기존의 오래된 책장의 자리를 대신할 때마다 거실의 멋진 퍼즐이 맞춰져 나가는 것 같았다. 기존 책장을 하나씩 버릴때 너무도 후련한 마음이었다.

KakaoTalk_20240316_211650241_01.jpg 네 가지의 문짝 패턴

책을 꽂을 수 있는 상부의 책장은 밋밋한 느낌이 들어 홈을 파서 흰색 소나무를 끼워 넣어 패턴을 넣었다. 첫 번째 책장은 불규칙한 빗살무늬로 넣었고, 다음은 세로 네 줄의 패턴을 만들었다. 자칭 톰브라운 에디션 무늬로 이름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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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수개월간 작업을 한 끝에 우리 집 거실의 책장이 완성되었다. 그동안 마땅히 보관할 곳이 없어 비닐봉지에 싸 장롱 위에 두었던 앨범들과 책들을 다시 꺼내어 책장 아래 수납공간에 넣었다. 책들 중에 아직 읽지 않았거나, 다시 보고 싶은 책들은 위 책장에 종류별로 진열해 놓았다. 책장 벽면을 세 개의 기둥으로 만들었는데 옆에서 보면 그 기동들 사이로 보이는 책들이 너무도 예뻤다. 나무를 아끼기 위해 적용했던 아이디어가 디자인 포인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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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거실 책장

제일 오른쪽은 캣타워이지만 책장과 어울리게 설계되었는데, 실물도 예상한 대로 책장들과 어색하지 않았다. 책장을 완성하면 아내에게 직장동료들을 집으로 초대한다고 얘기해 두었으나, 아직 누구도 초대한 적이 없다. 우리 집 고양이 녀석들이 처음에는 새로운 캣타워를 경계하였으나, 지금은 아주 잘 이용하고 있다. 특히 겨울에 창문을 열어 청소기를 돌릴 때면, 저 속으로 쏙 들어가서 안 나온다. 캣타워 아래는 고양이들의 계단으로 설계하고 문은 한쪽만 달아서 내부 공간은 사료와 같은 고양이 물품을 보관하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고양이들이 살쪄서 고양이 숨숨집은 설계를 변경하여 크기를 최대한 확보했다. 아래 사진에는 숨숨집에 구멍이 있으나, 지금은 고양이들의 은밀성을 보장해 주기 위해 구멍을 막았다. 고양이들 오르내릴 때 위험하지 않게 난간도 만들어 주었는데, 지금은 턱을 궤는 용도로 잘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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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만든 후 거의 몇 주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제 집에 더 이상 들어갈 장소가 없다. 그리고 거의 반년을 매달린 끝에 완성한 작품이라 만들고 나면 뭔가 새로운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조금 허무하기도 했다. 약간의 공허한 기분도 있고 지치기도 하고... 그래서 한동안은 공방에 나가도 이런저런 조그만 소품을 만들면서 공허함을 달래고 다음 작품을 구상하곤 했다. 지금도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이 책장들을 바라보면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기왕 하는 거 레드오크로 할걸 하는 후회도 가끔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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