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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 목공을 배우다

1. 목공 배우기를 실행해 옮기다.

by 꿈꾸는 나무

일상에 지친 순간이 오면, 언젠가는 목공을 꼭 배우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시간이 날 때면 습관적으로 근처 목공방을 검색해 보곤 했다. 검색의 기준은 집에서 30분 이내 거리, 그럴 때마다 항상 최종적으로 후보로 남겨진 목공방이 있었다. 그러나 항상 거기까지였다. 더 이상 진행되지는 않았다. 현실이 힘들면 벗어나고픈 생각이 들고, 공방을 검색해 보다가 집 근처 그 공방을 찾는 것까지.... 그리곤 다시 쳇바퀴 같은 현실로 다시 빨려 들어가곤 했다. 2년간의 서울 근무를 마치고 다시 대전 근교 부임지에 새로 왔을 때는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 있었다. 문득 2년 전 항상 검색만 하고 실행해 옮기지 못했던 목공방을 다시 검색해 보았다. 아직 그 목공방이 거기에 있을까... 하는 마음에 혹시나 하고 전화번호를 누르니. 원장님으로 보이는 분이 전화를 받고 목공방 교육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설명을 다 듣고 언제 한번 방문하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딱 거기까지였다.

몇 주 뒤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날 원장님으로부터 안부 문자가 왔는데, 아직 해결이 안 된 일들이 남아있어 그 일이 해결되면 꼭 방문드리겠다고 답장을 보내고 시간은 또 몇 개월이 흘렀다. 그러다 나를 힘들게 하던 일이 종료된 8월 어느 날, 아내와 함께 큰 결심을 하고 그 목공방을 용기 내어 방문했다. 물론 나를 힘들게 하던 일은 매우 좋지 않게 끝이 났지만, 그래도 끝이 났다는 안도감이 더 컸던걸 보니, 정말이지 나를 짓누르던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와 아내의 목공방 생활은 시작되었다. 거의 매주를 빠지지 않고 수업을 듣고 실습을 했다. 설계 CAD를 평소 다룰 수 있었던 내게 가구 설계 도구를 활용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설계 도구를 다양하게 활용하기 위해 출근 전 유튜브로 올라온 디자인 과정을 그대로 따라 해보곤 했다.

마침내 실습을 끝내고 첫 작품은 아내를 위한 작품을 선택하기로 했다.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내에게 물었고, 그렇게 선택한 첫 번째 가구는 거실 냉장고 자리에 어색하게 자리 잡고 있는 식기세척기를 품은 서랍 달린 빌트인 수납장이었다. 너무나 어색하게 자리 잡고 있는 식기세척기와 그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잘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식기세척기가 중간에 자리 잡고 있어 구조적으로 취약할 것 같아 뒤에 가로로 구조목을 짜맞춤식으로 덧대었는데, 원장님이 설계에 감각이 있다고 칭찬까지 해주셨다. 설계 관련 업무를 20년 넘게 해 왔지만, 가구 설계 잘한다는 칭찬은 40대 중반 아저씨에게도 초등학생의 마음인 듯 우쭐한 기분이 들고 참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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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세척기의 가로, 세로, 높이를 측정하여 내부 공간을 마련하고, 수납장이 들어갈 공간을 측정하여 외부 공간의 사이즈를 정했다. 나무 재질은 첫 번째 작품이니 저렴한 핀란드산 적송(레드 파인) 원목으로 정하였다. 설계를 마치고 필요한 나무를 계산하니 가로세로 2.4 * 1.2m 사이즈 집성판이 2장 필요했다. 나무를 재단하고 서랍레일을 달고, 서랍 손잡이도 파고, 샌딩도 하고, 바니쉬도 바르고 참으로 손이 많이 갔지만,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첫 작품은 수주 간의 노력과 시행착오 끝에 완성이 되었다. 상판은 아이보리 색으로 마무리했더니 깔끔한 느낌이 들어 흰색 싱크대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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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이 밋밋하여 십자모양의 홈을 내어 포인트를 주었다. 집에 와서 세척기 호스 때문에 설치가 쉽지 않았는데, 식기세척기와 너무 딱 들어맞는 게 마치 빌트인 가구처럼 느껴졌다. 첫 번째 작품치고는 괜찮다고 아내와 서로를 격려했다. 세척기 주위도 매우 깔끔하게 정리된 것이 볼 때마다 뿌듯하다. 왠지 모든 상상하는 것을 다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도 막 솟아올랐다. 목공... 이거 할만한데..... 설계 도면을 그리면 몇 주 뒤 실물이 나타나니 이거 완전 신세계였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보내고 있던 내게 드디어 나를 설레게 하는 취미인 목공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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