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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인 Apr 25. 2022

너무 늦은 봄 꽃구경 이야기

창덕궁, 창경궁 꽃구경


결국 피해 가지 못한 코로나 


가족들의 릴레이 확진으로 3월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집 앞의 벚꽃이 활짝 피었다.

(아니 이 글을 올리고 있는 지금은 벚꽃은 이미 다 떨어지고 푸릇푸릇 초록잎이 한창이다)

기침도 멎고 살만하니 봄나들이 한번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앞에도 벚꽃길이 있고 친정어머니가 계시는 곳도 아주 화려한 벚꽃공원이 있지만 혼자 살고 있는 아들도 볼 겸 남편과 함께 시내로 가보기로 했다. 

서울에서 가끔 강원도 설악산을 느껴보고 싶을 때 가는 곳이 바로 창덕궁인데 가을 단풍구경뿐 아니라 봄꽃 구경도 아주 볼만하다.     



봄꽃 나들이로 딱 좋은 창덕궁

창덕궁 앞에 도착하니 역시나 입장하려는 줄이 길다. 

다들 창덕궁 꽃소식을 알고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입구부터 북적인다. 

그리 썩 좋아하는 디자인은 아니지만 알록달록 화려한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 청소년들이 제법 많다. 

마스크만 없다면 언제 코로나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다들 어떻게 알았지? 창덕궁 꽃 소식을?


이렇게 입장 줄이 길 때는 창경궁에서 입장해서 창덕궁으로 넘어오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창경궁 앞에서 큰 아이와 약속을 하였기에 창덕궁에서 창경궁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입장하기 위한 길은 두 줄. 관람권을 매표소에서 사거나, 온라인 예매를 했거나, 

한복을 착용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길과 교통카드로 바로 입구에서 결제하면서 들어가는 길인데 

본래는 이 카드 결제길이 빨랐지만 오늘은 이 길이 훨씬 더 길다.      


창덕궁


조선 500년의 수도였던 서울은 궁궐의 도시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그리고 덕수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경운궁이 있다. 

이 중 창덕궁은 1997년 우리나라 궁궐 가운데 처음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그러나 후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창덕궁만이 아니라 5대 궁궐을 한꺼번에 등재하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며 후회한다고 한 적이 있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 건국 후 경복궁을 지었지만 왕자의 난을 겪었다. 

왕권을 차지한 태종은 한양으로 환도할 때 경복궁으로 들어가지 않고 창덕궁을 지었다. 

대신들은 경복궁을 그대로 사용하자고 하였으나 태종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고 창덕궁 건립을 강행한 것이다. 왕자의 난을 겪으면서 동생들과 피 흘렸던 싸움의 흔적이 남아있는 경복궁으로의 환궁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창덕궁 옆에 수강궁을 지었는데 성종이 수강궁을 중건하여 세 분의 대비를 모시고 창경궁이라 했다.      


창덕궁은 경복궁처럼 일자로 늘어선 3개의 문(광화문, 흥례문, 근정문)과 금천교를 지나는 것이 아니라 

오른쪽, 왼쪽으로 꺾인 길을 따라 금천교와 진선문, 인정문을 지나 정전인 인정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의 목적지는 인정전이 아니라 창덕궁 홍매화와 능수벚꽃이다. 

만약 초행이라면 이 홍매화와 벚꽃을 보기 위해 꼬불꼬불 어디를 가야 할까 혼란스럽겠지만 

걱정할 일이 아니다. 무조건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그대로 따라가면 그만이다. 


일단 돈화문으로 들어서면 금천교 주변에 앵두나무 꽃을 볼 수 있다. 

인정전을 지나쳐 그대로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늘 보던 궁궐의 건축물과는 다른 건물이 보인다. 

희정당이다. 

본래 임금의 서재였지만 순조 때 규모를 키웠고 순종 때는 손님맞이 접견실로 사용했다. 

입구가 돌출되어 있는 캐노피 건물로 지어졌는데 이는 순종황제의 자동차가 들어오기 위한 설계다. 

희정당에서 대조전으로 가는 길은 온통 벚꽃이다. 



이 외에도 창덕궁에는 산수유꽃, 진달래, 개나리, 앵두꽃, 자두꽂까지 온갖 봄꽃이 가득하다.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고궁 꽃놀이를 ‘고꽃놀이’라고 통한다니 아마도 각자의 SNS에 멋진 ‘고꽃놀이’ 사진을 올리기 위함인지 예쁜 꽃이 피어있는 핫플레이스에 줄을 서가면 사진을 찍고 있다.    

  


홍매화를 보기 위해 창경궁으로 넘어가는 쪽 언덕을 보니 이미 다 지고 난 후였다. 더 일찍 왔어야 하는데......

매화나무는 우리가 먹는 매실 열매를 맺는 나무인데 하얀 꽃이 피면 백매, 붉은 꽃이 피면 홍매, 분홍꽃이 피면 분홍매라고 한다. 꽃잎이 5장보다 많은 만첩 홍매화로 아주 수북한 매화꽃을 볼 수 있었을 터인데 늦게 왔더니 다 져버리고 없다. 


매화나무는 삼국사기에도 매화가 피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봄을 가장 먼저 알리는 꽃으로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 

자시문 앞의 매화나무는 선조 때 명나라에서 가져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자라는 형태나 굵기로 보아 원래의 것은 아니고 다시 심은 나무로 보인다고 한다.      



매화나무를 뒤로하고 벚꽃이라도 보자라는 마음으로 낙선재 쪽으로 길을 나선다. 

이 역시 걱정할 것 없이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수양버들과 같이 축 늘어진 벚꽃이라 해서 수양벚꽃이라고도 하고 능수벚꽃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이 담너머 풍성하게 늘어진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다. 

창덕궁과 창경궁의 어지간한 꽃나무와 나무까지도 자세히 그려놓은 동궐도를 살펴보면 벚나무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꽃나무는 아니지만 지금은 후원 쪽에 10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수양벚꽃에서 사진 한 장 찍고 낙선재 마당으로 들어서니 알록달록 봄꽃이 화려하다. 

사실 꽃나무 이외에도 향나무, 회화나무, 팥배나무, 참나무 등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나무들도 그득하다.      











창경궁


창덕궁의 꽃놀이를 마치고 창경궁으로 넘어간다. 

사실 창덕궁이나 창경궁은 임진왜란 통에 건물이 파괴되면서 나무들도 많이 훼손되어 몇몇 고목을 빼고는 

후에 심어진 나무들이고 일제강점기 건물을 헐어내면서는 함부로 나무를 심었다.

특히 창경궁의 훼손이 심했는데 일제강점기 식물원, 동물원, 박물관이 들어서며 창경원이라고 불리었다.  

    

춘당지의 연못을 더 넓게 파서 뱃놀이 공간으로 만들고 철골과 유리로 만들어진 서양식 식물원을 세웠다. 

전각을 헐어내고 뜰에는 벚나무 수천 그루를 심었으며 1924년에는 밤 벚꽃놀이를 시작하여 떠들썩한 유원지가 되었다. 



해방 후에도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봄소풍장소였던 창경궁은 이맘때가 되면 ‘최대 인파가 모였다.’ ‘아이를 잃어버렸다’는 소식으로 뉴스가 장식되었다. 나 또한 어릴 적 여러 번 엄마손을 잡고 벚꽃구경을 간 적이 있고 창경원으로 소풍을 갔다. 그러나 1983년 문화재 관리국은 창경궁 복원 계획을 발표하면서 동물들은 과천 서울대 공원으로 보내고 벚나무는 윤중로와 서울대공원으로 옮겨 심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지금 보듯이 능수버들과 소나무, 느티나무가 심어졌다. 

조선 왕실의 궁궐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창경원이 되어 사람들의 놀이터였고 해방이 되고 난 후에는 

한국전쟁을 겪으며 살아남은 동물이 거의 없었을 정도로 파괴되었지만 기업가와 사람들의 기증을 받아 1950~60년대 서울 최고의 유원지였던 창경궁.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창덕궁과 창경궁 꽃놀이를 하다 보니 오늘도 만보를 훌쩍 넘어 걸었다. 예쁜 꽃들을 보면서 사진도 찍고 데이트하는 연인, 유모차를 끌고 가는 가족, 느릿느릿 걸어가는 노부부, 엄마와 함께 나온 모녀, 친구들끼리 나들이 나온 사람 구경을 하다 보니 두 시간이 흘렀다. 


가벼운 마음으로 봄꽃 구경, 가을이면 단풍구경을 하면서 경치 구경을 하는 것만도 참 좋은데 건물 하나하나, 나무 하나하나에도 절절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창덕궁, 창경궁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산책이 참 좋다.

 2022년의 봄을 궁궐 나들이로 시작하니 진짜 봄맞이를 한 느낌이다.


#창덕궁 #창경궁 #홍매화 #수양벚꽃 #궁궐 #고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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