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마티스 : 라이프 앤 조이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
오랜만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을 찾았다.
<마티즈의 원작 200여 점 전시>라는 소개글을 보고 얼리버드 기간 때 반값에 티켓을 구매하여
전시를 기다렸으니 전시 오픈 소식이 반가울 따름이었다.
사실 블록버스터급 전시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전시도 잘 가지 않는다.
게다가 서양화라면 더더욱 그런 편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전시된다면 가보겠지만
가급적 대형 전시는 기본적으로 피하고 본다.
이런 성향 때문에 소소하게 영상을 올리는 유튜브 채널이 인기가 없나 보다. 누구나 다 아는 전시 소개 영상을 올리기보다는 대중적으로 잘 모르는 전시를 소개하니 올린 영상이 검색조차 되지 않는다.
여하튼 마티즈 전을 보러 가면서 마티스만의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의 원작을 감상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전시장을 찾았다. 포비즘. 야수파의 창시자의 원화를 직접 본다는 생각과
반값에 입장권을 구했으니 두배로 기쁜 마음을 가지고....
전시장에 들어서서 네이버 바이브 앱을
다운로드하면
“안녕하세요?
<앙리 마티스 라이프 앤 조이>의 음악감독과
오디오 도슨트를 맡은 뮤지션 정재형입니다.”라는 친숙 하면서도 안정감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렇게 무료 오디오 가이드를 듣기 위해서는 이어폰을 챙겨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전시장의 초입은 음악과 함께 프랑스 배경 영상이 나온다. 마티스가 태어났다는 르 카토 캉브레지의 벌판이 보이며 그곳의 바람소리가 함께 들린다. 그의 스튜디오에서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한눈에 보였다고 한다.
마티스 후기 작품의 배경이 된 니스까지.....
코로나로 여행을 못 다닌 지가 너무 오래인지라 영상을 보니
‘아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언제쯤 가려나.
초입 부분은 마티스의 판화와 드로잉 작품이 있는데 사진 촬영이 안된다.
800여 점의 판화를 남겼다고 하는데 강열한 색채의 마티스 그림만 알고 있던 나로서는
이렇게 많은 판화 작품이 있음에 놀랐다. 흑백의 판화작품 속에서 마티스의 모습을 찾을 수도 있고
세밀하게 표현된 모델의 모습 속에서 섬세함을 느껴볼 수도 있다.
판화는 기본적으로
나무나 고무판에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을 볼록하게 한 후 볼록한 부분에 잉크를 묻혀 찍어내는 볼록판화,
금속판에 에칭을 하거나 긁어내서 오목해진 부분에 잉크를 채워 찍어내는 오목판화,
그리고 돌이나 유리에 그림을 그려 찍어내는 평판화 그리고
실크와 같은 섬유의 구멍으로 물감을 보내는 공판화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마티스의 잉크 드로잉, 동판화, 목판화, 리놀륨 판화뿐 아니라
유화 작품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다양한 석판화의 작품들을 볼 수가 있다.
또 다른 전시실에서는 드로잉 작품들이 쫘악 전시되어 있는데 정말 그냥 보면 쓱 그린 그림.
일필휘지로 단번에 그린 그림 같지만 마티스는 이 잉크 드로잉을 하기 위해 수백 번씩 예비 작업을 한 후에
그린다고 한다. 마티스의 작품 하면 색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단순화된 선의 아름다움 또한 느낄 수 있다.
사실적 묘사보다는 극한의 간결함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을 보다 보니
모델들의 미묘한 감성과 느낌이 단순한 드로잉에도 잘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여인이 가장 아름다운가를 찾아봐도 좋을 듯하다.
물론 보는 사람마다 아름다운 여인은 다 다를 테지만.
연이어 마티스의 작품 중에 오목판화의 한 종류인 아쿼틴트 작품들이 보인다.
이 부분부터 촬영이 가능하다. 이 아쿼틴트 작품들은 붓으로 그린 것 같은 느낌이지만
동판에 송진가루를 올리고 송진가루 사이사이로 부식시켜 작품을 완성하는 기법이다.
보통 작은 점들이 표현되게 할 때나 면을 표현할 때 많이 사용한다는데 이런 단순한 그림을
아쿼틴트 기법으로 제작한 점이 조금은 의외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짧은 소견일 뿐 마티스의 작품의도를 어찌 알겠는가?
다만 이에 따른 설명이 없음을 또 아쉬워할 수밖에.
79세의 마티스는 인도계 여성 나디아를 만나 이렇게 간략한 검은색 선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솔직히 작품의 설명을 보지 않고 멀리서만 봐서는
드로잉인지 석판화인지 아쿼틴트인지 구별이 어렵다.
지금까지 드로잉, 판화로만 전시된 작품들을 보니 조금 피로감이 온다.
작품이 다양하기보다는 연작 시리즈처럼 전시되어 있고 게다가 대작보다는 소품 위주라
자세히 살펴보기도 좀 힘들고 ‘아’ 또는 ‘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오지는 않는다.
지식이 짧은 나로서는 작품의 크기만으로도 감동을 받기도 하는데 말이다.
전시장 벽면에도 ‘사람은 색에서 마법에서 비롯된 것 같은 에너지를 얻는다.’라고 적혀있는데
흑백의 판화만 보다 보니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러니 색을 좀 보여달라고'하고 맘속으로 외치게 될 때 <color of Matisse>라는 화려한 영상이 펼쳐진다.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5천 장이 넘는 마티스의 원화 이미지를 학습한 후
마티스의 컬러 및 드로잉을 다시금 새롭게 재현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옛사람이라 그런지 이런 미디어 아트보다 원화를 보지 못한 것이 더 아쉽게 느껴진다.
자 이제 거의 전시 막바지다. 마티스가 말년에 했던 종이 오리기 기법. 컷 아웃 작품들이 있다.
가위를 붓처럼 사용하여 형태를 만들었는데 ‘가위가 연필보다 더 감각적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가위 그리기>라고 불렀다고 한다.
70이 넘은 나이에 암 선고를 받고 휠체어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이렇게 오리기 작업을 통해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고령이 되어 작업하기가 힘들어질 무렵 침대나
안락의자에 누어 종이를 오려 만든 작품들.
단연코 눈에 띄는 작품은 입장권에 디자인된
라 제르브(한 다발)이라는 작품. 예쁘다.
설명을 보니 마티스의 마지막 컷아웃 작품을 1953년 석판화로 찍어낸 것이라는 말인가?
핸드폰 케이스에 장식되어 인테리어 소품에도 많이 이용되었던 작품이다.
이번에 전시된 것 중에 좀 큰 작품인 <재즈>는 컬러 판화 스무 장과 글이 합쳐진 형태의 아트북이다.
제목은 <재즈>인데 소제목을 서커스라고 해야 할 듯 주로 광대, 곡예사들이 나온다.
1869년 프랑스 북부에서 태어나 법률사무소 서기로 근무하며 안정적인 삶을 살았을 수도 있지만
맹장염 수술을 받은 후 누워있을 동안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 후 작업 활동을 하여 30대 후반 가을 살롱전에서 야수파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1900년 전후 마티스와 드랭은 네다섯 가지 이하로 색을 사용하며 사물이 가지고 있는 자연색보다는
작가가 느낀 감정에 따라 색을 마음대로 사용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서양미술의 큰 흐름은 인상파를 벗어나 야수파를 거쳐 피카소의 입체파와 표현주의 그리고
더 멀리는 미래주의, 다다이즘 등으로 발전하게 되는 모더니즘의 길목 초기에 활동했던 인물이다.
유화를 그리면서도 판화, 일러스트, 북 디자인, 섬유 디자인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몸이 아플 때까지도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전시 끝에 쓰인 글귀에서 마티스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가 느껴진다.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은가?”
“마티스가 되고 싶다.”
앤디 워홀
“결국엔 오직 마티스가 있을 뿐이다.”
파블로 피카소
나에게는 얼리버드 티켓값이 아니라면 살짝 아쉬울 만한 전시이긴 하다.
애초에 200여 점의 원화라는 기대감보다는 마티스의 드로잉과 판화, 그리고 말년의 종이 오리기 작품을
보기 위해 간다면 깔끔하고 간결하면서도 느낌이 있는 그의 작품이 만족할 만하다고는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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