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근무1] 스물 아홉의 이라크

취뽀를 위해 도망치듯 떠났던 이라크 이야기

by 민정홍

열사의 땅, 산유국, 9.11, 알 카에다, 사담 후세인, 걸프전쟁.

내게 중동이 주는 이미지는 이게 전부였다. 내가 이라크에 발을 딛기 전까지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뽀에 성공하지 못 한 나는, 졸업을 유예하고 학교의 언어교육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스물 여덟, 친구들 대다수는 이미 직장인. 후배들도 번듯한 대기업에 하나, 둘 취직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 시기의 청춘이 누구나 그렇듯 조금은 위축된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지인을 통해 한 회사에 입사지원을 해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해외 전기공사를 하는 회사인데 해외에서 근무할 사람을 찾는 모양이다. 이력서 보내봐라.'

세부 근무조건 등을 고려할 틈도 없이 대충 가지고 있는 스펙(?)을 이것저것 끄적여 이력서를 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 070번호로 전화가 왔다. 통화품질이 정말 최악인, 상대방의 말을 알아먹을 만하면 목소리가 깨져버리는 그런 통화였다.

알고보니 현지에서 내가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 걸려온 전화였었다.

'미안하지만 무슨 말인지 잘 안 들린다'라는 말만 나눈게 전부였던 그 통화를 뒤로 본사에서 연락을 받고 면접을 봤다.


그리고 며칠 뒤, 마침내 취뽀라는 타이틀을 달고 해외로 가게 되었다. 그것도 이라크로.


회사에 제출했던 여권에는 여러개의 스티커가 붙어서 돌아왔다.

1. 아랍어로 쓰인 비자

2. 예외적여권사용허가서.


이라크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여행금지국가 중 하나다. 이라크 대사관을 통해 비즈니스 비자를 발급받고 법무부의 '예외적여권사용허가서'까지 발급받은 뒤에야 이라크로의 출국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와의 직항 노선이 없는 이라크는 UAE의 아부다비, 두바이 또는 카타르 도하를 거쳐서 들어갈 수 있다.


2010년 이후, 4년만에 겪는 장기간의 해외생활. 그 삶을 견뎌내기 위해 한 가득 짐을 쌌다.

캐리어의 무게=두려움의 크기일까? 지퍼가 겨우 잠기도록 채워넣은 캐리어를 두고도 불안함이 남아있었다.


인천-도하 구간의 카타르 항공편

지정된 출국일에 공항에 도착했다.

새벽2시 무렵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어슴푸레 동이 터오는 5시 무렵의 도하에 도착했다.

중동의 허브공항 답게 이른 새벽임에도 면세점은 손님들로 가득했다.

분주히 자기의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는 사람들, 그 속에 나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벅차고 기쁘게 느껴졌다.


KakaoTalk_20210604_115330168.jpg 카타르 도하의 하마드 국제공항


이라크는 중동의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이슬람 국가다.

음주가 엄격하게 금지되어있고, 주류의 반입 또한 금지되어있다. (명목상 그렇고 사실 다 가능하다)

재밌는게 이 구간에서는 비행기에서도 주류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지막 한 캔의 맥주를 즐기고 싶었던 나는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었다.


마침내 바스라 공항에 도착한 후, 여권을 제출하고 비자사무실 앞에 앉아있었다.

비자사무실은 허름하기 그지 없었고, 몇 칸의 사무실에서 제복을 입은 사내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분주히 움직이는데 분명히 일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분주함이 눈에 띄었다)


함께 대기하던 사람들이 빠지고, 빠지며 약 2시간이 흘렀다.

대충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 가보니 여권에 붙은 사증에 도장을 찍고,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허접했던 입국심사대를 통과했다. 하두리 시절에 머무른 듯한 웹캠(그것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심사대 직원이 손으로 얼굴을 향하게 하여 찍었다)으로 얼굴을 촬영하고 부착된 비자에 도장을 찍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공항에서 현장까지 이동하는 일은 제법 새로운 경험이었다.

우선 도착 게이트 앞에 있는 버스에 짐을 실으라고 했다.

버스에 올라타자 평소 청소 따위는 하지 않았는지 시트의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공항을 벗어난 버스는 얼마가지 않아 근처 어딘가의 공터에 멈춰섰다.

'왜 더 가지 않고 멈추는거지? 왜 내리라는 거지?'

영문을 모른 채 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우리를 태우고 갈 경호차량들이 서 있었다.


현장까지는 PSD(Personal Security Detail) 서비스를 받으며 이동하게 되었는데, 탑승자는 전원 방탄조끼를 착용해야 하며 AK소총으로 무장한 경호원들이 함께 탑승하고 있었다.


그렇게 현장으로 가는 도중 마주한 이라크의 모습.

좌우로 그저 흙빛 가득한 대지뿐, 이따금씩 나타나는 마을들은 시간을 몇 십년 되돌려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정유 플랜트들이 듬성듬성 눈에 띄었고, 높이 솟은 굴뚝은 화염을 뿜어내고 있었다.


몇 개의 검문소를 지나 현장에 도착했다. 4월의 이라크는 덥고, 탁했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회사 사람들이 반겨주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과 손등. 썬글라스 테 자국만 하얗게 남은 얼굴들. 먼지 가득한 부시시한 모습.


아, 왠지 모르게 무섭다. 자대배치를 받았던 순간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건설현장, 그것도 이라크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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