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근무2] 먹지를 아시나요?

이라크 국가기술표준원에서 나를 당황시킨 먹지이야기

by 민정홍

먹지가 있다. iPAD와 같은 태블릿 PC 또는 데스크탑용 태블릿이 없었을 때, 그림을 베낀다던가 과제로 받은 깜지를 손쉽게 써내려 갈 때 썼던 종이. 학창시절 미술시간에도 써본 경험이 있는 먹지가 있다.


21세기의 어느 날, 한 국가의 정부기관, 그것도 기술표준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먹지를 이용하여 아주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행정처리를 하는 과정을 경험했다.


때는 2019년 7월, 건설현장에 필요한 계측장비의 검교정(Calibration)을 위하여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 있는 COSQC(Centr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 and Quality Control)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COSQC는 이라크의 바그다드 국립대학교(University of Baghdad)옆에 위치한 국가기관으로 우리나라의 국가기술표준원에 해당한다.


출입안내소에서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기다리자 담당자가 나와서 나를 맞이했다.

백팩 한 가득 가져온 장비들을 꺼내어 검교정을 의뢰하니 갑작스레 생겨난 업무에 적지않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이것저것 설명을 듣고 난 후, 장비 수령증 및 대금지불 영수증을 작성할 차례가 되었다.

KakaoTalk_20210607_173309833_03.jpg 아마르씨는 일거리가 많아져서 아주 귀찮은 표정이었다

직원이 아랍어로 작성된 종이 두 장을 프린트 하더니 그 사이에 검정색 먹지를 끼우는 것이 아닌가?


국가기술표준원 직원답게 정성스럽고 세밀한 작업으로 앞-뒷장 사이에 먹지를 끼우고는 앞장에 글씨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뒷장에 잘 베껴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꼼꼼하게 문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슬램덩크나 드래곤볼의 멋진 장면을 따라 그리고 싶어서 먹지를 끼우고 노트에 선을 따서 그렸던 어린 시절이 잠시 떠올랐기 때문에.


담당자는 곱게 베껴진 영수증 뒷 장을 내게 주었다.

궁금한 마음에 질문을 해봤다.

'영수증에 기입할 내용을 엑셀 상에서 입력하고 두쪽 모아찍기로 출력하여 반 쪽을 나에게 주면 일이 더 쉽지 않아?'

담당자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얘기했다.

'아직 우리는 현재 방식이 괜찮아. 별 불편 없어.'


그래. 이 과정을 답답하게 느끼는 건 나만 그러할 뿐, 이 친구들에게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언젠가 이들도 이런 행정 절차에 전자시스템을 도입하는 날이 있겠지,

그리고 지금의 비 효율성에 대해서 그 땐 그랬지하며 돌아보는 날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업무를 마치고 바그다드 대학교 앞의 Chili House라는 패스트 푸드점에 들렀다.

깔끔한 외관이 제법 괜찮은 가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패스트푸드점에 갔을 때 처럼 카운터로 가자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테이블에 앉으면 서버가 주문을 받으러 갈 거라고 한다. 자리에 앉자 영어를 제법 잘 구사하는 직원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아이패드를 이용해서 주문을 받았다.

방금 전까지 정부기관에서 먹지를 이용해서 영수증을 끊어주던 모습을 보며 답답해 했는데, 패스트 푸드점에서는 태블릿PC로 주문을 받는 것이다.


순간 COSQC 직원들이 떠올랐다.

'아... 일 진짜 답답하게들 한다!!!'


KakaoTalk_20210607_173309833_01.jpg 태블릿PC로 주문을 받았던 Chili House
KakaoTalk_20210607_173309833_02.jpg 바그다드에 왔으니 바그다드 버거라고 쓰인 메뉴를 먹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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