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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봄철 노을 자리에서 피어난 푸른 아지랑이

<불이 되는 숨>

무장애공연비평웹진 <리액트 re-act>
                            순환의 회복 : <불이 되는 숨>, <꿈의 방주>, <돼지춤>

                                                                                                       글. 리액터 백범, 닻별







                                                        배리어프리 음독


무대 위 재가 된 잔해들은 숨이 막히는 화마를 보여주듯 바스러지고 메말라 있다. 신빛나리가 향을 피우면, 극장을 서서히 메우는 연애(煙靄, 연기와 아지랑이를 아울러 이르는 말)를 따라 타올랐던 시공간에 빨려든다. 대화의 끝에서 장수미는 눈이 마주친 관객에게 비무대언어(관객 한 명에게 들릴 만한 사담)로 “호흡하고 있나요?”라고 물으며 호흡하는 나와 세상숲의 인지적 매개가 된다. 숨 쉬는 것은 가장 먼저의 일상적 행동이기에 매 숨을 인지할 수 없다. 하지만 삶 속에서 나의 호흡을, 숨을 인지하는 순간이 있다. 호흡이 가빠지거나 안정적이지 못한 상황, 공황 상태, 요가와 명상에서 보통 그렇다.


그다음 관객의 손을 잡고 무대 위 흔적들로 인도한다. 신빛나리가 다른 관객 한 명을 무대로 인도해 설명하며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한다. 그 뒤로 다른 관객들도 무대로 가 타다 남은 숲의 흔적들을 살핀다. 과정 공유는 자연스레 관객이 대화의 중심, 불이 되는 숨 안으로 들어오며 지금 여기에서 만나고 있는 관객과 현실을 마주한다.


<불이 되는 숨>은 ‘진리’를 설파하고 강론하는 단방향적 강연이 아닌 과정예술로서 말과 몸의 퍼포밍을 통해 교감한다. 호흡에 대해 이야기하고 극 말미에 직접 무대 위 흔적들을 만질 때, 이 사건을 촉각적으로 감각하는 것을 넘어 함께 숨 쉬며 생명을 불어넣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러한 퍼포먼스를 통해 생태계가 유지되고 자연이 순화하는 것이 지구가 호흡한다는 증거이며, 기후위기를 대처하는 우리의 태도가 지구의 숨을 막지 않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불이 되는 숨>은 대화의 주체들만 공유하고 있는 내용을 불친절한 언어로 이야기한다. 불친절한 그들의 대화는 무지하고 무감한 우리의 태도를 직관적으로 직면하게 한다. 현장 큐알코드를 통해 리서치 자료가 공유되긴 하지만, 사실 관객은 대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관객은 그들의 연구 동료가 아닐뿐더러 그렇다고 자초지종을 일일이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선명한 메시지 전달이나 설교적인 특권을 거부하는 렉처 퍼포먼스의 성격이기도 하다. 때문에 앎과 이해의 차원으로 접근하기보다 그 과정에서 함께 교감하는 편이 적합하다.


장수미는 연구 과정에서 감각되어진 것이 “질감감각감정이라고 말한다. 이 개인적 경험은 관객과 소통하며 보편화된다. 무의식 속에서 흘러가는 숨을 낯설게 감지하여 다시 불완전한 나로서 흘러가는, 그것이 <불이 되는 숨>이 주는 가치다. 발화(發火)점에 다다른 봄철 노을의 자리엔 푸른 아지랑이가 있다.


[이미지 7] 푸른색과 붉은색이 섞인 아지랑이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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