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이 되는 숨>
무장애공연비평웹진 <리액트 re-act>
순환의 회복 : <불이 되는 숨>, <꿈의 방주>, <돼지춤>
글. 리액터 백범, 닻별
배리어프리 음독
모든 재난과 위기의 88퍼센트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우리는 왜 300번의 징후와 29번의 경고를 놓쳤는가?
김민주, 『300 : 29 : 1 하인리히 법칙』 중
1931년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가 펴낸 《산업재해 예방 : 과학적 접근 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 A Scientific Approach》이라는 책에서 소개된 하인리히의 법칙(Heinrich's law) 또는 1:29:300의 법칙은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는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을 뜻하는 통계적 법칙이다.
큰 실수는 굵은 밧줄처럼 여러 겹의 섬유로 만들어진다.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중
하인리히 법칙에 따르면,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은 없다. <불이 되는 숨>은 하나의 거대한 사건인 울진 산불 ‘이후’에 치러지는 수십 번의 경고 중 하나이자 또 다른 거대한 사건 ‘이전’에 치러지는 수백 번의 징후 중 하나이다. RED cat, an OX는 울진 산불을 예측할 수 있었던 ‘인재’로 추정하기에, 지구적 관점으로 사건화하지 않고 ‘인간의 몸’으로 감각하며 ‘현상’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사실상 <불이 되는 숨>의 쟁점은 산불도 기후위기도 아닌 ‘트라우마를 겪은 몸’이다. 사건이 아닌 ‘현상’에 집중한 결과, 울진 산불을 ‘트라우마를 겪은 몸’으로 치환해 우리 몸과 동일시한다. 그리하여 기후위기‧기후재난과 우리 사이의 물리적‧정서적 거리를 단숨에 좁혀 ‘트라우마의 질감’이 살갗에 닿게 한다.
“트라우마의 기억은 처음 유입된 시점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영향을 주는 이물질과 같다.” 어쩌다 찔린 작은 파편 하나가 감염을 일으키듯, 그 이물질에 노출된 신체가 보이는 반응은 유입된 이물질 그 자체보다 훨씬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몸은 기억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 저, 제효영 역, 을유문화사) 출판사 서평 중
우리 몸과 마음은 생물학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정신신경면역학(psychoneuroimmunology)에서는 우리의 정서적인 상태에 따라 우리 몸의 면역체계도 변한다고 이야기한다. (이광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의학신문) 2004년 심리학자 조지 보난노의 연구는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은 병리를 넘어 많은 유형의 회복력과 성장을 포함하도록 확장했다. 이후 심리학에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외상 후 성장은 동정심과 이타주의뿐만 아니라 영적 발전과 창조적 성장을 포함하여 역경에서 비롯될 수 있는 7가지 성장 영역으로 요약한다. 성장의 한 예로는 ‘멘더스(menders)’가 있다. 멘더스는 자신이 견뎌낸 것의 책임이 자신의 성장에 대한 것만큼이나 타인에 대한 것이라는 걸 받아들이면서 나아간다. 이들은 고통과 증상에도 불구하고 트라우마에 대해 지속적으로 연민의 반응을 한다. 또한 트라우마로 개인 세계가 부서졌을 때 자신을 변화시키는 ‘확장된 자아감’으로 반응한다. ( 유튜브 채널 ‘심리대화, LBC’ )
<불이 되는 숨>은 개인의 트라우마에 윤리가 작동돼 이타주의, 전체로 확장되는 멘더스가 아니라, 숲을 ‘트라우마를 겪은 몸’으로 바라보는 ‘외상 후 성장’을 다룬다. 즉, 불에 탄 숲을 연민의 태도로 타자화하지 않으며 닮음에 대한 연대의 숨을 불어넣는다. 물건의 성질에 따라 타오르는 시간이 다르다. 쉽게 타는 것은 쉽게 꺼지고 늦게 타는 것은 오래 간다. 그러나 한 가지는 뜨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뜨겁지 않으면 타지 않는다. 각자의 발화점은 다르지만 뜨겁게 태울 때 주위는 밝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