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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침잠의 숨

<불이 되는 숨> 

무장애공연비평웹진 <리액트 re-act>
                     순환의 회복 : <불이 되는 숨>, <꿈의 방주>, <돼지춤>  
        
                                                                                       글. 리액터 백범, 닻별







                                                      배리어프리 음독


[이미지 1] 2022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포스터 ⓒ 2022 서울국제공연예술제
2019년 1월부터 10월까지 약 10개월간 지속된 산불이 900,000 헥타르에 달하는 아마존 열대우림을 파괴하였다. 이는 국토면적이 1,650,000 헥타르인 한국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2022년 3월, 한국의 울진-삼척에서 발생한 산불은 총 213시간 43분 동안 지속하며 약 20,000 헥타르(서울의 35%)의 산을 태웠다. 2022년 7월,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영국, 이탈리아, 알바니아, 크로아시아, 사이프러스, 체코, 모로코, 그리스, 레바논, 말타, 로마니아, 슬로베니아, 튀니지, 터키에서 발생한 연속적인 산불은 약 148,000 헥타르(서울의 2.5배)를, 미국 캘리포니아 및 텍사스에서 발생한 산불은 약 253,000(서울의 4.3배)을 태웠다. 본 연구는 ‘사변적인 호흡 : 원격적이고 비-촉각적인 사건들과 신체가 교감하는 호흡 방식’의 수행을 통해 수많은 지역에서 동시적으로,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는 산불이 내포하는 파괴, 죽음, 고통, 변성의 사건들을 신체적, 정동적으로 감각하고자 한다. 이러한 감각-이해를 통해 예측할 수 없는 급격한 변화가 일상화되는 새로운 정상성(New Normal)의 시대가 어떠한 창조적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지 상상해 본다.
2022 서울국제공연예술제 홈페이지


[이미지 2] <불이 되는 숨> 포스터 ⓒ 2022 서울국제공연예술제


2022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만난 RED cat, an OX의 <불이 되는 숨>은 장수미(무용)와 신빛나리(영화)가 ‘변형의 미디어인 불/몸’에 대하여 진행하고 있는 공동예술연구를 공유하는 렉처 퍼포먼스다.


RED cat, an OX는 산화-환원 현상(REDOX)의 원리를 쉽게 기억하기 위한 언어 기억장치에서 착안한 이름으로, “Reduction occurs at the cathode and the anode is for oxidation(환원은 음극에서 일어나고, 산화는 양극에서 일어난다)”의 줄임말이다. 2021년 장수미와 신빛나리가 함께 진행한 확장된 미디어(Expanded Media) 연구를 시작으로, 인간 및 비인간 존재자들의 산화에 대한 예술-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공동 생활, 역할 교환, 공동 예술-연구의 방법론에 대한 지속적인 질문, 실천적 사유의 과정을 통해 ‘자율적이고’, ‘유기적이며’, ‘과정 중심적인’ 그룹이 되기 위해 느슨하게 있다.


렉처 퍼포먼스란, 언어로 프레젠테이션하는 렉처(lecture)의 형식과 행위의 의미를 교감하는 퍼포먼스 형식이 조화된 강연 형식 공연이다. 한 명 또는 소수의 행위자, 슬라이드 프로젝션, 시‧청각 텍스트 등을 기본 구성으로 갖추며, 스토리텔링, 매스미디어, 광고 등 다양한 요소들을 차용해 전통적인 공연방식 속에서 담아낼 수 없었던 예술의 맥락이나 담론들을 관객들에게 말로 전달한다.


무대는 연습실 풍경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테이블과 의자, 화이트보드, 대형 스크린, 그리고 실재 산불 잔해와 새로운 생명이 담긴 태블릿의 설치 미술로 구성되었다. 관객이 입장 할 때 장수미는 극장 한쪽 입구 쪽에 서서 ‘비정상적인 숨쉬기 퍼포먼스’를 수행하고 있다. 관객은 극이 시작되기 전부터 숨쉬기 퍼포먼스를 통해 공간에 몰입된다. 나무색 옷을 입은 장수미가 불 색 옷을 입은 신빛나리 맞은편으로 천천히 진입해 앉는다. 긴 침묵, 마침내 뱉어진 첫 마디. “우리가 뭘 하고 있는 거죠?” 이때, 행위자와 관객의 촉수는 ‘신체’에서 ‘말’로 옮겨붙는다.


이 공연에서 ‘말’은 재현의 대사가 아닌 연구 과정에 관한 대화이다. 대화는 연구의 메커니즘을 따라가며 가지치기를 하다 되돌아오기도 하며 확장된다. 대화 중간중간, 무대 뒤 스크린으로 산불의 모습과 뉴스 영상들이 투사된다. 시커먼 불을 내뿜으며 타들어 가는 산, 덧붙여지는 말, 그 앞(뒤)에서 숨.


[이미지 3] 울진 산불 ⓒ 게티이미지 코리아
이 산불은 산림청이 관련 통계를 집계한 1986년 이후 ‘가장 오래 지속된 산불’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강릉·동해 등 동해안 일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대형 산불의 배경에는 우선 50년 만에 찾아온 극심한 겨울 가뭄과 강풍이 꼽힌다. 기후변화도 산불 확대의 이유로 거론되는데, 기후학자들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기온이 오를 경우 수증기 증발이 많아져 토양 등이 건조해지고 이는 불이 지속될 환경을 조성한다. 산림당국 등은 3월 4일 오후 울진군에서 시작된 산불의 해당 지점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한 결과, 도로변에서 불이 맨 처음 발생했기 때문에 담뱃불 등 불씨에 의한 실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피해 추정 면적은 2만 923ha(울진 1만 8463ha, 삼척 2460ha)로, 2000년 동해안 산불(2만 3794ha)에 이어 역대 두 번째를 기록했다. 이 산불로 주택 319채, 농축산 시설 139개소, 공장과 창고 154개소, 종교시설 31개소 등 총 643개소가 소실됐으며 337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2022년 울진·삼척 산불’, 네이버 지식백과




우리 몸은 불이다.




 <불이 되는 숨>은 ‘인재’라는 산불 현상을 통해 “우리 몸 안에도 불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울진 산불의 원인이 담뱃불이 맞다면, 이것은 결국 인재다. 기후재난이 우릴 위협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 재해 중 상당수는 인재이다. 1925년에 하인리히는 ‘뉴욕 안전 의회에서 사고의 숨겨진 비용에 대한 연구’를 처음 언급하며, 간접재해비가 직접재해비의 4배 정도 된다고 밝혔다. 1:4 비율로 재해 코스트가 구분된다는 것이다. 지금의 기후변화도 인간이 만들었으므로 기후재난 또한 넓은 의미의 인재인 셈이다. <불이 되는 숨>은 ‘불’이 ‘죽음’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숨’이라는 ‘생명’을 키워낼 수 있는 ‘온기’이기도 하다는 잠재성을 전이하며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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