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어김없이 기침이 찾아왔다. 연신 이어지다 잠시 멎고, 이내 쇠 울음처럼 컹컹 터져 나오면 가슴이 찢어진다. 처음에는 약국에서 작은 곽에 든 약을 사 쌍화탕과 함께 복용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차가운 기운과 누런 콧물, 고통스러운 기침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이비인후과에 갔지만, 의사는 바쁘게 돌아가는 공장처럼 빠르게 진료를 마쳤다.
“감기입니다. 심하지 않으니 약을 잘 챙겨 드세요.”
감기에 걸리니 기침과 콧물, 가래가 뒤따랐다. 바이러스가 호흡기를 자극해 목과 기관지가 예민해지고, 몸은 이물질을 내보내려 기침을 일으켰다. 기침이 오래가면서 허리와 가슴에 힘이 들어가 근육 통증까지 생겼다. 나의 가슴에는 따뜻한 팥 주머니를 얹고, 허리에는 파스를 붙였다.
성남시에서 무료 독감 예방접종을 해주었지만 나는 맞지 않았다. 한 번의 기억이 평생의 고통으로 남아 다시는 독감주사가 쳐다보기도 싫었다. 사람들은 “공짜인데, 세금으로 해주는 건데”라 말하였지만, 나에겐 그 공짜가 며칠의 고생이었다. 그래서 겨울이면 감기와 기침이 함께 찾아올까 두려웠다. 결국 겨울 끝자락에서 피해 갈 수 없어 그들을 맞아야 했다.
내가 아는 상식을 모두 동원했다. 충분한 휴식과 수분 섭취를 했고 생강차와 인삼차를 마시며 소금물로는 목을 달래고, 실내의 온습도를 유지하며 목에 작은 수건을 감쌌다. 여름에는 개도 안 걸린다는 감기에 걸린 적은 있었지만, 결론은 겨울 감기가 압승이었다.
2월 첫날, 눈이 제법 내렸다. 집 앞은 사람들의 말소리, 지나가는 차 소리, 눈 치우는 넉가래 소리, 송풍기 소리로 소란스러웠다. 아프지 않았다면 아름다운 풍경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기침과 통증 속에서 바라본 눈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때 김동명의 시 〈백설부〉가 마음을 적셨다. 단순한 반복 속에 겨울의 고요와 무게가 담겨 있었다.
“눈이 나린다 / 눈이 날린다 / 눈이 쌓인다.”
눈송이가 차곡차곡 쌓이듯 기침과 통증도 하루하루 내 몸에 더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그 쌓임은 언젠가 녹아내릴 것이다.
“눈 속에 태고가 있다 / 눈 속에 오막살이가 있다 / 눈 속에 내 어린 시절이 있다.”
이 문장은 내 유년의 기억을 불러내며, 바쁘게 달려온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라는 신호등처럼 밖을 내다보니 빨간불이 켜졌다. 횡단보도에 덩그러니 서 있는 나, 온 세상은 한 장의 그림 수채화였다. 흰 눈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나를 멈추게 하고 과거를 불러내는 장치였다.
눈이 올 때면 늘 〈백설부〉가 떠올랐다.
“눈같이 흰 마음을 생각한다 / 눈같이 찬 님을 생각한다 / 눈같이 슨 청춘을 생각한다.”
청춘의 그리움과 님의 부재를 겨울의 차가움 속에 겹쳐 놓았다.
소복이 쌓인 백설(白雪)은 아름다웠지만, 내 마음은 무거워 아무리 쌓여도 녹아 흘러갔다. 통증도, 감기도 눈처럼.
〈백설부〉의 또 다른 대목이 마음을 붙들었다.
“눈을 맞으며 길을 걷고 싶다 / 눈을 맞으며 날이 저물고 있다 / 눈을 털며 주막에 들고 싶다.”
이 문장은 눈 속에서 느끼는 인간적인 따뜻함과 쉼을 보여주었다. 나 역시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차 한 잔이면 충분했다. 꼭 주막이 아니어도, 눈을 바라보며 마시는 따뜻한 차는 감기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하고 마음을 위로했다.
겨울 감기로 몸도 정신도 힘들었지만, 눈은 마음을 달래주었다. 질병과 풍경, 고통과 위로가 한 계절 안에서 교차했다. 사르르 감기는 지나갔다. 남은 것은 흰 눈처럼 맑은 마음, 그리고 잠시 멈추어 삶을 돌아보게 한 겨울이었다.
김동명의 시 백설부(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