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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 Oct 06. 2023

30대 직장인의 나 홀로 스위스 여행기 - 프롤로그

여행을 결심하고, 준비하기

나는 30년 남짓의 일생동안 한 번도 유럽에 가보지 못했다. 어릴 적에는 그럴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되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서 스스로 약간의 용돈은 벌 수 있게 되었지만 생활 자금으로 대부분 사용되었고, 백만 원이 넘는 비행기 값은 여전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직장인이 되어서는 비용을 부담할 여유가 생겼지만 오랜 시간 휴가를 낼 엄두가 나지 않았고, 만약 낸다 하더라도 걱정과 고민이 많았다.


'소매치기가 많다던데..'

'지하철이 정말 더럽대..'

'인종차별을 당하는 경우도 있더라..'

'이 돈이면 차라리 가까운 나라 여러 번 갈 텐데..'


이러다가 어느새 30년이라는 시간이 금방 흘렀다. 대학생 때는 생활비 대출을 받아 유럽 배낭여행을 갔다 올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이것을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당연히 돌아오는 답은 좋지 않았다. 사실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수백만 원이라는 큰돈을 대출받는다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고, 앞서 말한 걱정들이 그때도 있었다. 만약 스스로 확신이 있었다면 부모님의 만류에도 일단 저지르고 봤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성인이 되어서 갔던 나라는 차례대로 일본, 필리핀, 터키, 일본, 필리핀, 싱가포르, 일본, 대만이다.

터키를 제외하고는 모두 가까운 아시아, 혹은 동남아시아 국가다. 터키는 취업 후 입사 직전에 큰맘 먹고 친구들과 선택한 여행지였다. 사실 이때 유럽을 가고 싶었지만 일정이 맞는 친구가 없었다. 혼자 갈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전에 일본을 혼자 여행하다가 크게 낙담한 적이 있었기에 유럽처럼 먼 곳을 혼자 여행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물론 저 때 일본 여행이 실패했던 이유 중 하나는,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때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이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해서 앞으로 혼자 여행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이게 2016년 즈음이다.


이제는 가까운 나라 말고, 먼 나라


30대가 되고 나서 어느 날 이제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먼 나라를 최대한 많이 여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이가 들면 먼 곳은 여행하기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더 넓은 세상을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고, 유럽을 여행해 본 친구들과 같은 공감대를 공유하며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2023년 7월 어느 날, 나에게는 아직 10일 이상의 연차가 남아있었고 심지어 9월에는 추석 황금연휴가 있었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먼 나라에 가겠노라 굳게 다짐했다. 처음에는 같이 갈 친구를 물색했지만 구하지 못해서 과감하게 나 홀로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2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여러 나라를 조금씩 둘러보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 나라를 제대로 오래 보는 것이었다. 나는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리고 다른 나라는 가까운 시일 내에 또 가면 된다고 생각해서 이번에는 한 나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결국 선택한 나라는 스위스. 스위스를 선택한 이유는, 우선 '스위스 알프스에서 스카이다이빙하기'가 대학생 시절부터 막연히 나의 버킷리스트에 있어 왔기 때문이고,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웅장한 자연을 보고 싶었다. 게다가 아직은 소매치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스위스 알프스 지역은 상대적으로 소매치기에 대한 걱정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위스 여행 준비 시작


여행 일정은 9월 24일에 가서 추석이 지나고 10월 4일에 오기로 했다. 먼저 항공편과 숙소부터 알아보기로 했다. 스위스에 가기로 결정한 시점은 여행 가기 2개월 전이었다. 그런데 웬걸, 매우 저렴한 항공편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황금연휴에 118만 원짜리 스위스행 항공편을 2개월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발견하다니. 물론 2회 경유라는 단점은 있었다. 대부분은 스위스에 1회 경유로 간다고 한다. 하지만 1회 경유보다 몇십만 원이나 저렴했고, 비행시간도 그때 남아있던 1회 경유 항공편과 몇 시간 차이 나지 않았다(총 20시간가량 소요). 환불이 불가능했기에 혹시라도 실수가 있지는 않을까 몇 차례 더 확인한 후 바로 결제를 해버렸다.

갈 때는 인천-베이징-파리-제네바, 올 때는 제네바-암스테르담-베이징-인천 이렇게 경유하는 루트였다.

갈 때 인천-베이징은 아시아나, 그 이후는 모두 에어프랑스. 올 때 베이징-인천은 동일하게 아시아나, 그 외는 모두 KLM 항공을 이용하는 티켓이었다. 나는 2회 경유라서 생기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우선, 스위스에 갈 때 수하물이 분실되는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블루 리본 백스(Blue Ribbon Bags)'라는 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이 상품은 지연 수하물을 항공사보다 신속하게 추적해 안전하게 반환될 수 있게 해 주고, 착륙 후 96시간 이내 분실물을 찾지 못한다면 수하물 1개당 최대 120만 원을 보상해 주는 서비스다. 가입 비용은 만원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그리고 1시간 20분이라는 가장 짧은 경유 시간을 가진 파리 공항에서의 환승 방법을 매우 자세하게 파악해 두었다(다음 편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출발이 늦어져 나는 40 몇 분 만에 환승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숙소를 여행 2달 전에 알아보니 가성비 좋은 방은 이미 다 나간듯해 보였다. 남은 방은 모두 도미토리 거나, 매우 비싸거나, 아니면 상태가 좋지 않은 방뿐이었다. 나는 소음에 예민한 편이고 그동안 여행하면서 숙소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사람인지라 처음에 도미토리에는 묵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사악한 스위스의 물가를 체감한 뒤, 이틀을 제외하고는 모두 도미토리를 예약하게 된다. 이틀은 그린델발트에서 아이거 북벽 뷰의 샬레에서 묵어보고 싶어 뷰가 좋은 인기 샬레를 찾고 찾다가 겨우 예약했다(Element Lodge). 첫날과 마지막날은 제네바 공항 근처 Meininger Hotel 의 도미토리를 예약했고, 그 외 5박은 모두 인터라켄의 백패커스 빌라 소넨호프의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나는 첫 일본 여행에서 경험한 실패의 쓴맛을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기로 했다. 여행 중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최소화하고, 시간, 돈, 그리고 에너지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동안 사용해 왔던 '트리플' 앱으로 여행 일정을 짜려고 했으나, 내용이 많아지니 앱의 한계를 느끼고 결국 스프레드시트를 작성했다(참고로 내 MBTI는 J 가 아니라 P 다. 즉 계획형이 아니다). 그대로 모두 실행하기 위한 목적은 아니었고, 일정과 준비해야 할 사항을 한 곳에 모두 정리하여 가시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현지에서도 사용하게 될 구글지도와 스위스의 교통 앱인 'SBB'를 사용하여 경로와 소요 시간을 파악하기도 했다. 유튜브와 카페 및 블로그 글을 통해 모든 주요 여행지에서의 이동 경로를 파악해두기도 했다.

준비 당시 작성했던 스프레드 시트. 사진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10일 치의 계획을 모두 적었다.


스위스 여행은 날씨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같은 산에 올라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간 의미가 없다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루 단위의 일정만 짜놓고 하루 전에 각 지역의 날씨에 따라 어떤 일정을 실행할지 정하기로 했다. 비가 오거나 구름이 많이 꼈을 때를 대비해 플랜 B 계획도 세워두었다. 스위스 날씨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준다는 '메테오스위스(Meteoswiss)' 앱의 기능을 모두 사용해 보고, 내 사용패턴에 맞게 홈 화면도 커스터마이징 해두었다. 주요 관광지에 있는 실시간 웹캠을 보며 구름의 양을 파악하는 연습도 했다(실제로 가서는 메테오스위스만으로도 충분했다).

스위스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융프라우와 체르마트에서 아름다운 뷰를 보기 위해서는 구름과 안개가 적은 맑은 날씨여야 하는데, 가는 날에 딱 이러기가 쉽지 않아 '3대가 덕을 쌓았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나는 3대가 덕을 쌓진 않은 것 같지만 스케줄을 잘 맞춰서 기필코 맑은 날에 융프라우와 체르마트를 가겠노라 다짐했다.


현지에서 현금 인출에 사용할 트래블월렛 카드를 신청해서 연습 용으로 앱을 사용하여 10프랑을 환전해보기도 했다(실제로 가서는 현금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그 외에도 스위스 트래블 패스 8일 치, eSIM, 트레킹 할 때 입을 옷과 신을 트레킹화 등을 구매했다. 도미토리에서 숙면을 취하기 위해 좋은 수면안대와 이어 플러그도 구입했다.

왼쪽부터 각각 SBB, 메테오스위스, 트래블월렛 앱 사용 화면 스크린샷


혼자 여행할 때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예쁜 사진을 남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삼각대와 블루투스 리모컨을 구입해서 집에서 혼자 전신사진을 찍는 연습도 했다.


여행 1달 전까지 위와 같이 준비하고 나서 바쁘게 살다 보니 어느새 여행 날이 훌쩍 다가왔다.

내일은 드디어 그리고 그리던 스위스 여행날! 오전 8시 비행기였기 때문에 나는 인천국제공항 근처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이때까지는 몰랐다. 앞으로 얼마나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질지..


여행을 준비할 때 유용했던 사이트:

- '차가운순대'님 네이버 블로그

- '스위스 프렌즈' 네이버 카페

- '발로뛰어' 유튜브

- 스위스 관련 오픈카톡방


다음 편 보기(1일 차): https://brunch.co.kr/@0c87c169131444f/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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