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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 Oct 07. 2023

30대 직장인의 나 홀로 스위스 여행기 - 1일 차

두 번 경유하여 인천에서 제네바까지

오늘은 스위스로 떠나는 날.

아침 8시 즈음에 출발하는 항공편이었기 때문에 새벽 4시 반쯤 일어나 준비를 하고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오는 동안 호텔 1층 무인 편의점에서 급하게 햇반 2개, 육개장 사발면 2개, 고추참치 1개, 스팸 1개, 김 1개, 여행용 세면용품 세트를 구입하여 캐리어에 구겨 넣었다(스위스는 높은 물가로 악명이 높기 때문에 스위스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은 음식들을 가져가 요리를 해 먹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이 중에 햇반과 육개장 사발면만 다 먹고 나머지는 그대로 한국으로 가져오게 된다..ㅎ


출국 전날 하루를 묵었던 인천 공항 근처의 호텔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고 짐을 부쳤다. 따로 환전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항상 신용카드를 사용할 예정이었고, 만약 현금이 필요한 경우 트래블월렛 카드로 현지에서 인출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eSIM 카드를 구매했기 때문에 별도의 심카드를 수령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공항에서 특별히 할 건 많지 않았다. 시간이 남아 몇 년 동안 사용해 온 스카이패스 신용카드로 마티나 라운지를 처음으로 이용해 보기로 했다. 알고 보니 이곳에서는 무료로 프린터 출력도 가능해서, 잊고 출력해오지 않은 동신항운 할인쿠폰(스위스 현지에서 일부 티켓 할인 및 신라면 교환을 위한 쿠폰) 1장(나중에 말하겠지만 이때 2장 했어야 했다)과 휴대폰을 사용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하여 스위스 트래블 패스도 출력했다. 마티나 라운지를 처음 이용해 본 느낌은 좋았다. 호텔 조식 같은 음식과 음료가 무제한 제공 되었다. 나는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식혜를 2잔 마셨다.


마티나 라운지에서 간단하게 먹은 아침


드디어 비행기 탑승.

인천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아시아나 비행기는 약 2시간 밖에 소요되지 않아 기내식을 한 번 먹으니 금방 도착했다.

베이징 공항에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내리니, 에어프랑스 중국 지사 직원으로 추정되는 분이 내가 갈아타야 할 항공편 번호가 적힌 스케치북을 들고 계셨다.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우리를 어디론가 데리고 갔고, 그곳에서는 다음 항공편에 대한 임시 항공권을 발급해 줬다. 모든 사람들의 임시 항공권 발급이 끝나고 또 다른 직원의 인솔을 받아 다른 터미널에 있는 비행기 탑승 장소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짐 검사와 환승 절차를 거쳐 정식 항공권을 받았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가까워져 탑승 장소에 줄을 섰다. 하지만 원래 출발해야 하는 시간보다 계속 지연이 되고 있었다. '어.. 나 다음 비행기 1시간 20분 안에 갈아타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마음을 졸이고 있는 나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결국 20분가량 지연이 되어 출발을 했다. 나에게 주어진 환승 시간은 1시간으로 줄어들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빠르게 달리면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다음 도전 과제는 파리까지 13시간의 비행을 버티는 것이었다. 비행기 탑승 후 처음에는 좌석 스크린을 통해 영화 트랜스포머를 다 봤는데도 시간이 얼마 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13시간 비행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하지만 이내 지루함을 어느 정도 잊게 만들어준 사건이 발생한다.


의자 좀 뒤로 젖히게 해 줘!


나는 가운데 자리였고, 왼쪽 창가에는 중국인, 오른쪽 복도 쪽에는 페루인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영어로 혹시 중국어를 할 줄 아냐고 물어봤다. 내가 못한다고 하니 내 왼쪽에 있는 중국인에게 물어봤고, 할 줄 안다고 하자 혹시 자신의 뒷사람한테 의자 좀 젖힐 수 있게 해달라고 전해줄 수 있냐고 했다. 알고 보니 뒤에 있는 동양인이 의자를 뒤로 젖히지 못하게 한 모양이었다.

중국인이 중국어로 몇 마디하고 나서 하는 이야기.

"이 사람 한국인인데..?"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이 분께서 의자를 젖히고 싶으시다네요.'라고 말했다. 뒷 분께서는 그럼 자신이 너무 불편하다고 했다. 이를 그녀에게 통역해 주니 '하지만 저 사람도 똑같이 뒤로 젖힐 수 있잖아'라고 했고, 이를 뒷자리 분께 통역해 주면서 '보통 장거리 비행에서는 의자를 뒤로 젖히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알고 있다'라고 덧붙여 말씀드렸다.

그런데 마침 그 순간 옆으로 승무원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때를 놓칠세라 그녀는 승무원에게 혹시 의자를 뒤로 젖혀도 되냐고 물어봤다. 승무원은 당연히 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하지만 뒤에 있는 분이 의자를 못 젖히게 해요'라고 말했다. 뒷자리 분도 한국어로 불만을 표출했다. 그랬더니 승무원은 단호한 표정과 제스처로 뒷자리 한국인에게 'No.'라고 말했다. 그 직후 뒷자리 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녀는 의자를 젖힐 수 있었다. 이때다 싶어 나도 같이 의자를 젖혔다. 참고로 나중에 비행기에서 내릴 때 손녀분께서 아까 일에 대해 대신 죄송하다고 사과하셨다.


중국인, 한국인, 페루인, 샴페인 Let's go


앞의 사건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내에서 음료를 나눠주는 시간이 되었다. 복도 쪽에 앉아 있던 페루인은 가장 먼저 샴페인을 주문하였다. 나도 먹어보고 싶어서 그녀에게 혹시 샴페인이 유료인지 물어봤고, 무료라길래 나도 같은 걸 주문했다. 그러자 내 왼쪽에 있는 중국인도 수줍게 같은 걸로 달라고 해서 우리는 한 바탕 웃었다. 그리고선 다 같이 건배를 하게 되었다.

"Cheers!"
샴페인과 함께한 파리행 비행기에서의 첫 번째 식사


식사 후에 얘기를 나눴는데 중국인은 현재 영국에서 유학 중이라서 본국인 중국에 갔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 이후로는 주로 페루인과 대화를 나눴다. 그녀는 자신을 기술 변호사라고 소개했다. 일 때문에 베이징에 갔다가 동료들과 페루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좀 더 이야기해 보니 자신의 주력 분야 중 하나가 내 여자친구의 전공 및 연구 분야인 공공정책과 스마트시티라고 해서 신기해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 외에도 자신이 여행해 본 유럽 국가들이 어디고 어땠는지, 자신이 왜 독일을 좋아하는지, 요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등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는 자신의 동료들과 한 명씩 인사를 시켜주었다. 그중 한 명은 글로벌 통신사의 시스템 엔지니어라고 했다. 결국 그녀와 나는 인스타그램과 링크드인 프로필을 교환하고 같이 셀카를 찍었다. 그리고 나중에 마추픽추에 가기 위해 페루에 가게 되면 연락을 하기로 했다. 장거리 비행이었지만 주변 사람들 덕분에 다행히 덜 지루했다. 그 외 나머지 시간은 주로 영화를 보거나, 자면서 보냈다.


페루인과의 셀카


그런데 문제가 하나 더 생겼다.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서 1시간 안에 환승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착륙까지 지연이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약 40분 안에 환승을 해야 했다. 나는 비행기 내에서도 뒤쪽 자리였어서 비행기에서 내리는 데만 10분 가까이 걸렸다. 페루인과는 짧게 인사를 나누고 미리 파악해 둔 환승 경로를 따라 전력질주를 했다. 다행히 안내 표시가 잘 되어있어서 길을 헤멜 일은 없었다. 결국 나는 15분 만에 다음 항공편 탑승구 근처에 도착했다. 흐르는 땀을 식히고 있는데 이게 웬걸, 다음 항공편이 갑자기 35분 지연되어서 뛰지 않았어도 충분히 환승이 가능하게 되었다. 조금 허탈했지만 아무튼 성공적으로 환승을 하고 제네바 공항에 도착했으며, 수하물도 잘 찾았다. 사실 출발 전 인터넷에서 에어프랑스가 수하물 분실로 악명이 높다는 글을 몇 개 보고 약간의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 동료 분께서 '그래도 에어프랑스가 나름 프랑스 국적 항공사인데 괜찮지 않을까요?'라고 했던 말이 다시금 생각이 나며,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에어프랑스에 대한 전반적인 경험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드디어 스위스


제네바 공항에서 짐을 찾고 나니 오후 11시 즈음. 스위스 패스 시작 날짜가 다음날부터라 제네바 공항에 있는 티켓 자판기에서 버스 티켓을 구입했다. 버스를 타고 호텔로 가는 도중에 버스를 한 번 잘못 타서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니 밤 12시가 넘었다. 바로 씻고 자야 됐지만 정말 너무 배가 고파서 호텔 로비에서 판매하는 샌드위치와 자판기 생수를 사 먹었더니 14,000원이 나왔다. 스위스 물가를 다시 한번 체감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9박 중 2박을 제외하고는 모두 도미토리를 예약했는데, 그래도 시설이 좋고 깔끔한 인테리어의 도미토리만 예약했다. 깔끔한 인테리어는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

자기 전에 사먹은 14,000원 짜리 저녁과 호텔 2층 로비

방에 들어가니 이미 자정이 넘어 방에 불이 꺼져 있었고 2명의 룸메이트가 자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었던 나는, 최대한 소음이 나지 않게 조심스럽게 짐을 풀고 샤워를 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다. 나는 거의 도둑이라도 된 듯,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고군분투하면서 가방을 열고 물건을 꺼냈다. 룸메이트들이 뒤척일 때마다 눈치를 살피며 더욱 소음을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방마다 있는 화장실에는 샤워 파티션도 있고 매우 넓고 깔끔했다. 따뜻한 물도 잘 나왔다. 나는 샤워를 마치고 새벽 1시 반이 되어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이전 편 보기(프롤로그): https://brunch.co.kr/@0c87c169131444f/1

다음 편 보기(2일 차): https://brunch.co.kr/@0c87c169131444f/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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