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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맣게 살고자 노력중인 고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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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가지를 위한 마음
며칠 사이 몸을 움츠리지 않아도 좋을만한 바람이 불어온다. 빈 가지라 여겼던 곳들이 하나둘씩 오랜 시간 동안 소식 없던 무심한 친구의 얼굴처럼 겸연쩍게 물올랐다. 찬 공기를 해치고 나오는 급한 성격의 매화와 설유화는 동그스름한 작은 꽃눈들을 가지마다 촘촘히 매달아 두고, 깨어날 시기를 헤아리고 있다. 폭닥해진 흙 위로 뾰족이 솟아난 크로커스 잎을 보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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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 06. 2025
생활수영인 에세이 번외) 어느 락스 중독자의 하루
어슴푸레한 새벽. 눈을 떠 뽀드득하게 잘 마른 변기에 엉덩이를 얹는다. 하루의 마지막 일정인 지난밤의 변기 소독을 눈을 감고 경건히 떠올린다. 화장실의 창문을 활짝 연 후, 미지근한 물로 불린 변기에 거품 타입의 락스를 뿌린다. 하루치의 지리멸렬함을 변기와 함께 소독한다. 이 의식 이후의 시간은 배설의 욕구를 가진 존재 이상의 것이 되어 향유한다. 촤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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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09. 2025
양립할 수 없는 것을 바라보며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밤과 밤사이에 저는 서서히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신뢰를 잃어갑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떠올리면, 그것이 하나같이 너무나 하잘것없다 느껴져 다소간 쓰게 웃습니다. 그렇습니다, 희망이 없다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흘러나오는 따스한 숨과 때가 되면 찾아오는 허기에 어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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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08. 2024
17) 미망의 시간들
수영의 여러 영법 중 다른 양상을 띠는 한 영법이 있다. 바로 배영이다. 수면 위로 얼굴을 내어 놓고 헤엄치는 배영 중에서도 나는 배영을 시작할 때의 물속 동작을 즐긴다. 끝없이 찾아오는 일상의 지루함처럼 바닥에 흘러가는 타일의 수를 헤아릴 때가 잦은 다른 영법과 달리, 발로 벽을 차고 나가 수면의 반짝임을 지켜보며 흘러가는 이 순간이 소중하다. 흔히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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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19. 2024
16) 접영은 2NE1
한가로운 날 수영을 위한 플레이 리스트를 정리한다. '수영을 하는데 웬 플레이 리스트?' 주변 사람들에게 수영을 하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 의문스러운 눈으로 반문한다. 그게 가능하냐고. 가능하다. 그리고 그 세계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감각을 선사한다. '방수 골전도 이어폰'으로 이름 붙여진 자그마한 이어폰을 통해 느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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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06. 2024
15) 아가미 풀 구해요.
흰자로 봐도 수영 내공이 보통이 아닌 사람이 수영장에 들어왔다. 가만 보니 입영에 트러젠(평영 발차기, 자유형 팔 동작)에 눈앞에서 펼쳐지는 멋진 수영의 향연에 한동안 멍하니 구경을 한다. 그러다 용기 내어 슬쩍 물어봤다. "혹시 라이프 가드 자격증 있으신가요?" 그랬더니 자격증이 있고 현재는 수영 강사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 후 독심술이 있는 사람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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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31. 2024
14) 프로이트의 저주
프로이트는 "억압된 것은 반드시 회귀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그 말이 현실화되는 것을 지난 8년간 괄목해 왔다. 이것은 내 남편의 이야기다. 남편은 실용주의 만렙의 부모님 사이에서 막내로 자랐다. 그는 언제나 남매들의 물건을 마지막까지 쓰고 버려야 하는 사람이었으므로, 부모님 품 안에서 사는 내내 자신만의 것을 가진 기억이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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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24. 2024
13) 문밖으로.
스무 살의 여름. 강렬한 뙤약볕을 머리 위에 두고 아버지께 운전 연수를 받던 때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MB 정부의 간소화된 운전면허 시험에 역정을 내시며 딸이 도로 위의 시한폭탄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손수 온갖 운전 기술들을 가르쳐 주셨다. 그중 최대 난제는 1종 보통 운전의 오르막 정지 후 출발이었는데, 클러치에 발을 떼고 엑셀을 밟을 때마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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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14. 2024
12) 광배의 세계
학창 시절 박물관을 관람하다 납득되지 않는 시대적 미의 기준 때문에 도무지 어떤 부분에 탄복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던 경험이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간이 매긴 미의 기준은 계속해서 변해왔다. 문화에 따라 상이하기도 한 이 기준은 그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아름다움을 단선적인 기준 위에 세워 왔다. '존예'로 압축되는 현대 사회의 아름다움 기준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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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08. 2024
11) 흐릿한 선에 대하여
학창 시절 나는 이른 시간에 등교하기를 즐기는 학생이었다. 친구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에 큰 에너지 소모를 느끼던 나는 이른 아침의 고요한 등굣길로 그날의 고단함을 미리 보상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학업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핑계였으며, 선생님들께는 성실한 학생으로 보이는 이득까지 있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있는 듯 없는 듯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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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24. 2024
9) 깨끗하고 밝은 곳
같은 포장의 키친타월을 껴 안은 할머니 한 무리가 횡단보도를 지나간다. 얼마 전 한 약장수(?)가 동네에 사무실을 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것도 같다. 살방살방 걸으시는 할머니 무리를 보며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무릎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체납 고지서가 날아들 듯 내게도 노화라는 놈이 찾아온 것이다. 함부로 대해온 몸은 채권자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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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10. 2024
8) 수영장의 요즘 것들
자주 이용하는 수영장 샤워실의 한 쪽에는 고정형 샤워기가 아닌 핸디형 샤워기 한 대가 있다.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들이 앉아서 씻는 용도로 애용하시며 그들 간에는 종종 이 자리를 얻기 위한 눈치싸움도 이뤄진다. 어느 날인가 한 초등학생이 이 핸디형 샤워기를 사용하기 위해 그 앞에 섰다. 그러나 그 학생 뒤를 따라 들어온 어르신 한 분께서 학생에게 잠깐 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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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03. 2024
7) 생활수영인에세이 - 사랑은 킥판을 타고
낯선 얼굴들이 가득한 월초의 초급반. 서로를 관찰하는 눈길에 조심스러움이 실리고, 묘한 긴장이 손끝에 달라붙어 있는 시기. 꽤 시간이 흘렀지만 운 좋게 지켜볼 수 있었던 몇 차례의 (남의) 로맨스가 있었다. 나는 로맨스를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독수리 오형제가 지구 평화를 지키는 것보다 독수리 3호가 누구랑 사귀게 될지가 가장 궁금했던 로맨스 왕 떡잎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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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21. 2024
6) 생활수영인 에세이 - 있어빌리티가 뭐길래.
한낮의 열기를 담은 햇살이 수면 곳곳에 떨어지며 영롱한 빛의 기둥을 만드는 수영장의 오후. 굳어진 어깨와 팔, 다리를 풀어가며 수영장에 들어선다. 오늘도 친절하게 초급, 중급, 상급이라 표식 된 안내판이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짧은 시간 동안 어느 풀이 '진짜' 내 실력에 맞는 레인인가를 일 별하기 위해 빠르게 눈을 굴린다. 오늘의 스캔 결과 내가 헤엄칠 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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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14. 2024
5) 생활수영인 에세이, 우리가 왜 하나여야 하나요?
앞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나는 수영 강습을 받지 않는다. 때때로 유난히 다음 레벨의 계단이 높게 느껴질 때는 강습의 유혹을 받을 때도 있다. 그럴 땐 그냥 거울 속 나의 몸에게 "내 마음은 이런데, 니는 그런갑다." 라고 말한다. 애시당초 내 몸은 마음을 따라 온 역사가 없었기 때문에 답답한 구간에 이를 때면 '니는 그럽갑다'의 힘으로 상황을 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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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 07. 2024
2) 생활수영인 에세이, 수영장의 OOTD
수영장 출입이 익숙해질 무렵이 되면, 수영장에 들어오는 모습만으로 수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일명 '수린이'인지, 중급자인지, 마스터즈에 버금가는 수영인인지 구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우선 수린이의 경우를 살펴보자. 검은색 강습용 수영복이나 미세하게 장식이 있는 단조로운 차림새에 패킹이 있는 튼튼한 모양의 수경을 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중급자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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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9. 2024
1) 생활수영인 에세이, 수영장에 갑니다.
한해 전 새 학기, 월드 스타의 콘서트 티켓팅을 방불케하는 어린이 수영 교실 수강 신청에 성공했다. 어린이의 수영이라 하면 뙤약볕을 받아 따끈해진 한 자갈돌이 깔린 개울에서 여럿이 함께 개나 개구리 헤엄으로 지칭되는 묘한 포즈의 영법이 먼저 떠오르는 나는 일명, '촌년'이다. 여름이면 하루가 멀다하고 집 앞의 개울에서 입술이 보랏빛으로 물들어 등짝에 엄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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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9. 2024
4) 생활수영인 에세이, 눈싸움에서 이기기
한참 숨 가쁘게 수영을 하다 보면 어딘에 선가 비릿한 눈길이 느껴지는 날이 있다. 묘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려보면 여지없이 눈을 피하려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과 불편한 조우를 하게 된다. 이런 눈빛이 아무렇지 않게 타인의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은 내게 뛰어난 무엇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내가 '아무렇지 않게 쳐다보아도 되는 사람'으로 판단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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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9. 2024
3) 생활수영인 에세이, 마주치는 얼굴들.
퇴근 후 찾는 평일 늦은 오후의 수영장. 탈의실, 샤워실, 수영장 등 마주치는 장소만 때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을 뿐, 일정하게 마주치는 얼굴들이 있다. 이를테면 그 시간, 수영장의 풍경 같은 사람들. 수영장을 다니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의 일이다. 킥 판을 잡고 자유형 발차기 연습을 하다가 걷기 레인을 이용하는 분들 쪽으로 물이 잔뜩 튄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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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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