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순간을 영원히' 조용필 찬양

by 레오

개천절, 한글날 포함 일주일간의 긴 추석연휴 첫날은 와이프가 기다리던 영화 보기로 시작했다. 예전엔 추석을 노린 개봉작이 꽤 있어 골라 보는 재미가 있었지만 넷플릭스가 지배하는 세상에선 그렇지 않다. 와이프가 고른 영화는 최근 국제 영화제 화제작인 박찬욱 감독의 "어쩔 수 없다'였다. 사실 나도 그 영화가 궁금해 예매 앱을 들여다보았는데 다른 개봉작인 '보스"보다 상영 스크린 수가 적어 놀랐다. 우리나라에서 흥행은 별로인 듯한 모양이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캐비어로 알탕을 만들었다'라는 악평도 있었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 영화와 연기 귀신들의 믿음이 있어 당연히 보아야 하는 영화였다.


주인공 이병헌은 제지회사 한 곳에서 25년간 근속했으나 외국계 투자자에 의해 구조조정 당한 실직자의 모습을 연기한다. 재취업을 위해 노력하고 심지어 잠재 경쟁자를 없애려는 시도를 한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 박찬욱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알고 와닿았다. 영화 중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병헌이 잠재 경쟁자인 이성민을 없애려 하는 장면인데, 이병헌은 집에 보관 중인 60년대 산 권총을 들고 아날로그 전축으로 음악 감상이 취미인 이성민 집에 찾아간다. 그 전축에선 1982년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고출력 앰프와 대형 스피커를 통해 LP 긁힘을 시작으로 흘러나오며, 이병헌과 이성민은 고추잠자리를 장벽으로 서로의 입장만 큰 소리로 말한다. 물론 상대방의 귀엔 전달되지 않는다. '웃픈' 장면이다. 숙연하기까지 했다.

사진 : 네이트뉴스


박찬욱 감독은 1963년생으로 1950년 생인 조용필이 한국 가요계를 주도할 때 학창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에 사용된 음악을 보니 배따라기와 김창완이다. 좋은 음악을 골라 들었을 확률이 높다.


학창 시절 가요톱10과 10대 가수상으로 인기 척도를 가늠했다. 물론 미국의 빌보드는 전파 횟수, 싱글 음반 판매량 등 객관적 척도가 있어 신뢰도가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인기투표였다. 그러한 상황에서 조용필의 노래는 항상 1위였다. 어느 통계를 보니 조용필 노래들은 도합 64주 가요톱 10위를 기록해 다른 가수들에게도 기회를 주고자 5주 연속 1위시 자동 퇴출 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한다.


서양 음악 덕후인 난 조용필의 '단발머리'와 '고추잠자리'에 크게 매료되었다. 각각 80년, 81년에 공개된 앨범에 수록되었는데, 한오백년, 돌아와요 부산항에, 대전블루스, 미워 미워 미워, 황성옛터 등 트로트 일색이었는데 그 두곡은 백미였다.


단발머리

제목도 매력적이다. 물론 당시엔 교복 시대여서 학생들의 단발머리가 필수였으나 성인 여성의 단발머리는 무언가 현대적 이미지의 기대감이 있다. LP를 턴테이블에 놓고 바늘을 올리면, '뿅뿅뿅' 소리를 내는 신디사이저 전주는 가히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리고 조용필은 듣도 보도 못한 두성의 가성으로 노래한다. 가사도 매력적인데 꿈속 이야기를 노래하며, 아름다웠던 그 소녀를 데려간 세월이 밉단다. 요즘 소설 작가도 이렇게 표현 못하리라. 30년전 감히 단발머리를 리메이크했던 앞서 나가던 015B도 '뿅뿅뿅' 파트는 대체 불가능해 원곡때 사용했던 장비를 사용했었다. 게다가 80년대 춤이라곤 손뼉 밖에 모르건 각목 같은 몸치들의 춤 입문곡으로 딱이었다.


고추잠자리

당시, 조용필이 '아마 나는~' 이렇게 노래를 시작하면 관객이 '꺄악' 하며 반응했던 노래이다.

동심의 어른이 애절하게 과거를 회상하며 노래한다. 아이 입장에선 무섭고 어른 입장에선 그립다. 제목에서 보듯 동요 소재를 가요로 progressive 하게 편곡하고 이 역시 조용필의 가성이 매력이다.


많은 실력파 후배 가수들이 리메이크 혹은 공연에서 이 두곡을 불렀지만 원곡에 못 미친다.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겠다. 최근 노래의 신 이승철이 종편프로에서 단발머리를 불렀는데 그 맛이 아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조용필과 함께 활동했던 전영록, 이용, 윤시내, 이은하 등의 노래는 당시 유행하고 사라진 유행가였다.


난 지금도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를 물어보면 김현식이라 답하지만 최고의 한국 노래는 단발머리, 고추잠자리를 꼽는다.


지난달, 시내버스 외관에서 KBS 광복 80주년 기념 조용필 공연(9월 6일, 고척돔) 포스터가 기억난다. 10월 6일 추석특집 방영 예정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TV로 조용필 공연을 보아야겠다.

이 순간을 영원히! 미지의 음악 세계를 개척했던 가수 조용필 선생님이 건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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