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초입의 Zweden 시향 그리고 바람
9월 25일(목) 오전, 하나의 카톡이 나와 와이프를 당황스럽게 했다. 다음 날(2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시향의 공연 리마인더였다. 곰곰 생각해 보니, 연초 시향 연간 공연 일정 찾아보고 예매해 두었던 흐릿한 기억이 난다. 요즘 논문에 마음이 바쁜 와이프는 바로 취소하던지 아니면 나 혼자 다녀오라고 한다. 그러고는 출근해 공연 레퍼토리를 보고는 이렇게 카톡이 왔다. '브람스 1번이넹 ㅠㅠ'. 다시 와이프로부터 연락 온건 그리 길지 않은 순간이었다. '가요. 가을이니 브람스 들어야죠.' 이렇게 해서 우리 부부는 금요일 저녁 길에서 초대권을 주은 듯한 기분으로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 전 레퍼토리를 보니 1. 정재일의 '지옥(Inferno)'. 2. 박재홍 협연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그리고 3. 브람스 교향곡 1번이다. 박재홍 피아니스트는 과거 라흐마니노프 스페셜리스트이며, 여러 번 공연 일정을 통해 본 적은 있지만 직접 연주는 처음이었고 얼굴도 처음 봤다. 포스터로 얼굴을 본 순간 배우 안재홍과 헷갈린 나는 시향이 배우를 초대해 해설을 하는가라는 생각도 했다. 정재일은 도무지 모르는 작곡가였다. 특히, '지옥'은 세계 최초 초연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검색해 보니 '기생충', '오징어게임' 음악감독이다. 음악 잘 쓰는 봉준호, 황동혁 감독이니 마치 지브리 스튜디오의 히사이시 조와 같은 음악을 기대하면서도 클래식 음악을 작곡했다는 게 반신반의했다.
난 그가 영화음악 감독이고, 그와 무관하지만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그렇게 유쾌하게 시청하지 않아 편견이 있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러나 짧은 곡임에도 불구하고 타악기 4인, 하프도 보이는 대편성 수준이어서 도대체 어떤 '기괴한' 음악을 들을지도 감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20분 남짓한 초연 '지옥'에 빠졌다. 연주 초반에 약간의 불협화음에 의한 전개는 있었지만 오히려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평온한 가을을 맞이하는 나와 우리 세계에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를 보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바람을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옥의 후반부는 평온했고 잔잔한 바람이 부는 듯했다. 곡 막바지에 하프 연주가의 세 번의 튕김은 아직 내 머리에 있다. 제목을 잘 못 정한 거 아닌가? 지옥, 불바다가 이렇게 평온함을 느끼게 함은 무엇인가. 이를 초연한 Zweden의 해석은 맞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불바다 지옥이 이렇다면, 난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인터미션 중에 정재일의 음악에 대한 평가를 찾아보았다. 이탈리아 언론인이자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The Invisible Cities) 중 마지막 장에서 '지옥 한가운데서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 지속시키라'는 구절에서 영감을 받았다 한다.
아직 더위가 가시지 않은 가을, 미야지키 하야오와 정재일의 예술을 경험하고 추석을 앞두고 마음이 넉넉해 짐에 감사한 마음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바람이 불어도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였고, 초연 지옥도 흐림 뒤에 희망을 찾아가는 평화라는 구조로 전개되었다. 물론 난 연주 내내 평온한 바람도 느낄 수 있었다. 내년도 5학년 후반을 맞이하는 나에게 고요함을 주고 성찰의 마음을 갖도록 한 중요한 시간이었다. 젊은 작곡가의 느낌이 가득한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