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風)을 그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시션 거장의 바람(所望)은

by 레오

9월 중순 주말, 끝나지 않을 듯 했던 한낮 더위가 창문을 열어두니 제법 시원했다. 마침 비도 내려 잔뜩 달궈진 아스팔트 식히는 냄새도 느낄 정도였다. 오랜만에 기계 바람이 아닌 자연 바람을 즐기고 싶었다. 가을이면 책을 찾게 된다지만 책은 매일 조금씩이라도 읽으려 노력했으니 덮어두고 넷플릭스를 뒤적였다. 최근 흥행에 실패한 영화, 장편 시리즈 등이 넷플릭스에서 홍보라도 하듯 전면에 위치했으나 잔잔한 영화를 보고 싶었다. 검색에 애니메이션 찾아보니 '바람이 분다'가 있다. 파란 하늘에 언덕위에 숙녀가 그림을 그리는 포스터여서 날씨와도 맞는 듯 들어가 보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이다. 순간 '엇, 내가 모르는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도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정보없이 시청하기 싫어서 관련 내용을 먼저 찾아 보았다. 2013년 미야자키 하야오의 고별작(이전에도 고별작이 몇 번 있었다)으로 우리나라에서 개봉해 흥행에 실패하였으나 일본에서는 100억엔 이상의 흥행 수익을 올린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 개봉했을 시기에 전쟁 책임 회피, 일본 군수산업 미화 그리고 가미가재(神風)에 사용된 항공기라는 점에서 논란이 있었다. 그래도 '미래소년 코난' 시절부터 머리속에 각인된 마야자키 하야오의 부드럽지만 무서웠던, 그리고 지금도 광팬으로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니 무척 궁금했다


이불 앞에 TV가 있던 초등학생 시절, '미래소년 코난'은 내 주말의 시작이었다. 주제가 "푸른바다 저멀리 새희망이 넘실거린다."로 시작하는 노래는 나를 깨웠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집중하며 보았다. 감독의 개념도 없었고 만화의 국적도 관심 없었다. 그저 만화영화일 뿐이었다. 그 어릴적 내가 느낀 '미래소년 코난'은 코난과 포비의 익살스러움에 재미를 느낀 반면, 검붉은 하늘에 벌레 모양의 기괴한 비행선, 핵폭발 그리고 땅속에서 배를 굶지 않기 위해 곡괭이를 든 갈 곳 없는 상처 투성이의 노동자가 무서움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코난에서 느꼈던 강렬한 부분은 푸른 초원, 풀밭을 쓸고 가는 바람의 모습이다. 바람은 보이지 않으나 미야자키 하야오는 풀밭의 움직임으로 바람을 보이게 했다. 미술 수업이나 혼자 그려보는 그림에 가장 흉내내고 싶은 모습이다.

이후 내가 본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바람계곡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벼랑위의 포뇨",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그리고 "바람이 분다"까지 대부분 숲, 자연을 배경으로 한다. 대부분 기괴한 악령, 동물 그리고 기인 등을 묘사하고 있으나 작품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만화영화여서 후속작에 대한 생각은 없었으나 국내에 공개되면 당연히 극장으로 향했다. 특히, '바람이 분다'는 검색 결과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고별작이라기에 더욱 집중했고 그가 전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보았다.


주인공 지로는 하늘을 좋아하여 조종사가 되고자 했으나 눈이 좋지 않아(영화에선 유독 안경을 강조한다) 항공기 제작자로 변신하는데, 제로센 전투기를 설계하게 되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했다. 그의 롤모델은 이탈리아의 항공기 설계자 카프로니로 꿈에서 그를 조우하며 영감을 받는다. 심리학자인 와이프는 심리학적으로도 지로의 내면을 잘 표현한 내용이라고 말하며, 자기가 롤모델로 그리고 있는 인물의 꿈에서 조우는 자아의 일체화라고 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리고 영화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오코와 아주 인위적인 조우를 하게 되고 연인으로 그리고 비록 결핵으로 병든 몸이지만 직장 상사의 집에서 상사 부부가 증인이 된 슬픈 결혼식을 올리고 별채에서 합방한다. 그리고 짧디 짧은 신혼 생활과 죽음을 앞둔 나오코와의 이별 장면은 먹먹하게 한다.




영화에서 중요한 순간에 바람이 불었다. 열차 3등칸의 지로와 2등칸의 나오코를 연결해 준 것이 바람이었고, 하늘을 날고 싶은 의지를 나타낸 매개도 바람이다. 그리고 나오코는 바람처럼 지로와 이별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로는 항공기 성공을 알리는 벌판에서 심상치 않게 부는 바람으로 나오코의 죽음을 감지했다. 나오코는 바람과 같이 등장해 지로의 결정을 도와준다. 즉, 꿈과 현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인간적으로 살아가야 함을 상징하는 존재로 보였다. 영화 막바지에 지로는 다시 꿈에서 카프로니를 만나고 그토록 사랑했던 나오코를 만난다. 그리고 꿈에서도 '살아야해'라는 말만 남기고 지로와 카프로니 앞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전쟁과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야 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전하는 마지막 메세지로 보였다.

그리고 군국주의 미화 등의 논란이 있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영화에서 전쟁을 혐오하는 메세지를 전달하려 했던거 같다. 앞선 작품 '붉은 돼지'에서 '파시스트가 되느니 돼지가 낫다'라는 대사를 통해 전쟁에 대한 생각을 나타낸 바 있다. 바람이 분다에서도 같은 입장이다. 지로가 동료와 나는 마지막 대사는 "내가 만든 비행기는 한대도 돌아오지 않았네'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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