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시는 주임신부님을 생각하며 고백성사를
2014년 6월 15일, 나는 카톨릭교회에서 진정한 신자임을 인정받는 중요한 성사인 견진성사를 받고 한 번도 주일 미사를 빠진 적이 없다. 물론, 2주 연속 해외 출장이 있다면, 그 다음 주에 반드시 고백성사를 받기 위해 바리바리 서둘렀다. 일주일에 한 번 주님을 만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재한 찝찝함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10년 이상, 매주 미사 참례를 했으면, 독실해야 할 텐데 꼭 그렇지만 않다. 신앙심이 두터운 것도 아니고 각 예식도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카톨릭 신자의 기본 중의 기본인 묵주기도도 잘 못 하고 식사전 성호 긋기도 소홀하다. 성격상 매주 미사 참례 했다는 것은 초등학생이 졸업할 때 받는 개근상 이상의 기분과 다름 없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그리고 형제들 모두 카톨릭신자였고 카톨릭 학교를 졸업하셨고 난 태어나자마자 선택의 여지없이 세례명이 지어지고 카톨릭 신자가 되었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유아영세를 받았다고 하는데 최근 카톨릭앱(하상앱)을 보니 내 성사기록엔 태어난 지 1년 3개월 만에 영세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 때엔 아버지도 효도 차원이었는지 매주 성당에 나가셨다. 꼬마인 내가 미사 중 앉았다 섰다 그리고 무릎을 꿇다.... 얼마나 싫었던지 일요일이 고역이었던 기억은 아직 남아있다. 자연스럽게 대학생까지 성당을 나가지 않는 냉담자가 되었다. 건방지게도 내게 선택권이 없었다고 속으로 생각을 했지만 그때에도 찝찝함은 있었다. 잠시 군대 훈련받는 중에 간식을 받으러 훈련소 성당에 나갔었지만 그때에도 신앙과는 거리가 멀었다.
20년 전 지금의 와이프와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데, 내가 소개해 준 분에 내건 조건이 천주교 신자였다. 괜한 갈등으로 양가 간 갈등 소지를 없애고 또 찝찝함을 없애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약 4년간 해외 근무를 하는 회사 특성상, 와이프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를 따라 해외 생활을 했다. 한국에 비해 다소 여유가 생긴 와이프는 내게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며 부탁을 했는데 그건 매주 성당에 나가자는 것이었다. 마침 와이프도 천주교 집안에서 자랐고 나보다 더 독실했다. 해외 생활을 하니 더 열심히 성당에 가자면서 부탁을 하는데 안 들을 수가 없었다.
기왕에 해외 생활은 가족과 있어야 기억에도 남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매주 와이프를 '따라' 갔다. 물론, 오랜 냉담을 고백성사를 통해 풀지 않았기에 성체 성사를 하지 못해 따라갔다는 표현이 맞다. 귀국 후 와이프가 신자로서 의무 성사인 견진 성사를 위해 교리를 받자는 것이다. 귀국해 공기업에서 승진을 코 앞에 두고 한참 주말 근무가 대세일 때 그리고 일요일에 쉬어야 하는데 집에서 전철 타고 매주 명동성당에 나가 2시간 교리 교육은 또 다른 의미의 찝찝함이 있었다.
2014년 6월 15일, 명동성당에서 故정진석 추기경님 주례로 견진성사를 받아 진정한 신자로 거듭났다. 이날도 밤 12시 비행기를 타고 해외 출장을 간 기억이 있는데, 이후 성당을 나가지 못한다는 건 내게 용납할 수 없는 일상의 중요한 일이 되었고 찝찝함은 없다. 매주 성당에 나가니 머릿속엔 기도문이 박혔고 미사 순서도 익숙해 짐은 물론 어느 순간엔 성당에서 듣게 된 말씀을 집에 와서 성경을 뒤적이고 있지 않은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런데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는 찝찝함이 있다.
카톨릭 서울대교구도 매년 두차례 사제 인사가 있는데 8월이 발령이다. 현재 매주 다니는 성당은 약 8년째인데, 주임 신부님을 세분 뵈었다. 현 주임신부님은 코로나 한창 무렵으로 제대로된 미사가 어려웠던 2021년 8월 말에 부임하셨는데, 올해 9월 2일부로 이임이 아니라 퇴임 즉, 사제는 퇴임이 없으므로 성사전담사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신다. 8월 31일 마지막 주일 미사를 드리고 신자들이 길게 줄을 지어 악수하고 작별 인사를 나눈다. 주임신부님의 강론이 좋다고 일주일에 한 번 새벽 미사 반주를 했던 와이프는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8월 말일, 올해도 넉 달 밖에 남지 않은 가을 문턱 앞에서 주임신부와 작별 인사를 했다. 인사하는 주임신부님은 웃으며 덤덤하게 신자들과 손을 맞잡으셨다. 새 임지가 아닌 현업에서 떠난다는 마음이 어떠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곳 신자들을 기억하며 기도하겠다는 말씀이 과연 빡빡한 미사 일정에서 해방되어 여유롭게 기억하겠다는 뜻일까 아님 서운함을 표현한 것일까 모르겠지만 난 1초도 되지 않게 신부님과 대면 작별을 하고 성당을 빠져나왔다. 내 손에는 신부님의 작별 메시지가 있다. '늘 기도해 주시어 은총이 있는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신부님은 강복을 받았다.
오늘 출근해 어제 신부님의 모습이 아른 거렸다. 2년 전 소천하신 장인을 위해 기도해 주시던 신부님의 모습이 떠올르며 갑자기 생각난 빚을 찾아낸 것과 같은 마음으로 성당 홈페이지를 찾아 사진 자료를 통해 신부님을 뵙고 잠시 추억을 떠 올리며 마침 고백성사를 해야 할 부분을 발견했다. 지난해 가을과 올봄에 성당에선 전 신자 소풍을 갔었다. 난 쉬고 싶기도 하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기 싫다는 핑계로 불참했었지만 신부님 입장에선 소소한 추억 만들기였으리라. 기회가 되면 떠나시는 신부님께 고백하고 싶다.
신부님의 마지막 강론은 내 신앙심을 깊게 해 주는 선물이었다. 20년 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선종 직전, 모든 것에 감사했고 신자들에게 주님을 받아들이는 표현 아멘(AMEN)을 버릇처럼 하라는 말씀이었다.
지난 4년간 저 역시 큰 은총 받았습니다. 신부님, 건강하시길 바라며, 신부님께서 항상 강조하신 화살기도 바칩니다. "신부님과 저의 신앙생활 안에서 언젠가 우연히 한번 마주칠 수 있는 행운의 날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