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웠던 아버지와 화해
나는 누군가와 어렸을 때 특히, 초등학교 시절 기억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아파트도 별로 없었던 1970년대 서울의 주택가 골목길이 떠오른다. 그 골목길은 어린아이들에게 모든 일이 일어났던 사교장, 운동장이었다. 골목길 끝에는 태권도장 또는 피아노 교습소가 대부분이었으니 학교가 달랐어도 방과 후에 형성되는 또 다른 사회생활의 장이었다. 플라스틱 배트와 고무공을 가지고 야구도 했고, 플라스틱 배트가 없다면 주먹으로 풀스윙을 하며 공을 날렸다.(이른바 짬뽕이다) 축구도 했고 '오징어게임'에 나왔던 구슬치기 딱지치기도 했다. 누군가는 피아노 교습소에 간다고 악보를 옆에 끼고 다녔고 누군가는 노란색, 파란색, 붉은색 띠를 매고 옆집 또래 친구를 불러내 학교 숙제도 같이 했었다. 당시에는 직접 보지도 못한 미국산 독일산 전투기, 탱크 등 프라모델은 물론 일본산 로봇 만화영화 프라모델 혹은 가면도 친구들과 보러 다녔다.
1976년 마징가Z와 비슷하게 생긴 한국형 무술 구현 로봇 소재 만화영화인 '로보트태권V'가 당시 최고 극장인 대한극장에서 개봉한 이후 후속작이 이어지며 동네 문방구에는 우리나라의 기술력을 반영하던 플라스틱 태권V 프라모델도 인기가 있었다. 요즘은 넷플릭스 컨텐츠, K-pop 신규 음원의 최신작이 남녀노소 화재라면, 그땐 책가방 메고 도시락 가방 든 학생들은 새로운 모델이 나오면 문방구 앞에서 넋을 잃고 집에 가면 부모님과 사달라고 기싸움을 한다. 그날은 숙제도 열심히 하고 시험 잘 보면 사준다는 부모님의 필요조건 충족을 위해 가장 공부 열기가 높을 때이기도 했다. 그때에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번에 받는 품목이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일본산 학용품과 로봇 피규어였을 것이다. 일본산 학용품은 샤방샤방 때깔도 좋지만 'Japan Industiral Standrd' 마크가 있는 제품은 요즘 명품 로고 부럽지 않았다.
그림
TV 만화광이자 장래 과학자 지망생이었던 나와 친구들의 부러움은 그 일본산 초합금으로 만든 실물 1/50 피규어는 쉽게 가질 수도 없고 지금은 압구정동 갤러리아 명품관이지만 당시 한양쇼핑센터 3층에 (당시에 전국 유일) 일본산 피규어 전문점 쇼윈도에 매달려 실물을 직접 보는 날이면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는 강북에서 137번 버스, 잠실에서 21번 버스가 다녔었고 그 버스 타기 위한 학생용 회수권 1장이 140원 수준이었는데, 2~3만원 수준의 로봇 피규어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고 감히 부모님을 조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세상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는 얼굴로 피규어를 동경하다 한양쇼핑센터 3층만 가면 마치 놀이동산에서 모든 걸 다 할 수 있듯 꼬마인 나는 오랜 시간을 창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양아파트에 살던 내 친구가 학교에 스타징가 손오공 피규어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자가용 타고 다니던 친구가 부럽지 않았고 공부 잘했던 친구는 안중에도 없었다. 어떻게든 그 친구에게 잘 보여 그 피규어의 관절 꺾이라도 한번 하면 합체되는 듯했고 조그마한 버튼을 놀러 미사일이라도 발사되면 북한 공산당도 이길 것 같았다. 나는 학교 마치면, 학교 버스를 타고 그 친구를 따라 집에 놀러 갔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그 친구 방에는 로봇 피규어, 프라모델로 가득했던 꿈의 방이었다. 주말에도 그 친구하고만 어울였다. 잘 보이려고 했던 건 당연했다. 집에 돌아오는 21번 버스 타느라 출혈도 상당했다. 또 다른 사교장인 골목에서 동네 친구들에게 내가 본, 내가 쏘아본 피규어 이야기를 하면 한 번도 직접 보지 못했으니 하품만 했다.
당시 내 목표는 미즈노, 제트 등 좋은 야구 글러브를 구입하는 것이었는데, 목표를 수정하고야 말았다. 용돈, 세뱃돈, 만화잡지 보물섬 살 돈을 모아 목돈을 마련했다. 약 1년간 모은 3만원을 들고 21번 버스를 탔다. 돈을 잃어버릴까 세상에서 대한민국 치안을 그렇게 불안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위풍당당하게 고급사회인 한양쇼핑센터 3층 피규어 전문점에서 전액 현금으로 스타징가 손오공을 구입했다. 글자가 크게 보이는 쇼핑백에 넣어 가니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골목 친구들을 불러 모아 득템한 물건을 보여주고 만져 볼 수 있는 줄을 세웠다. 당연히 아이들의 부러움은 한 몸에 받았고 잘 보이라고 갑질도 했다. 집에 들어가서 조몰락조몰락 만져보며, 손에 꼭 쥐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졌던 기분이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사자성어 '호사다마'의 의미를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집에서 손오공 피규어만 가지고 놀다 보니 숙제인지 지참물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가져가지 않아 담임 선생님께 혼이 났었다. 피규어만 가졌으면 되었는데 세상 다 가진 줄 알고 담임 선생님께 말대꾸를 한 모양이다. 그날 담임 선생님이 어머니께 전화한 모양이다. 지금은 교권이 실추되었다지만 당시 초등학교에는 담임 선생님과 학부모는 핫라인이 있었다.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시는 어머님은 아버님께 바로 이르셨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골목에서 친구들에 피규어를 보여주며 갑질하고 돌아온 나를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셨다. 불호령이 한참 있었는데 그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피규어 산 것을 아버지가 모르셨기 때문에 어떻게든 사수하려 했다.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아버지는 손오공 피규어를 압수해 집 마당으로 던지셨다. 그 모습은 아직도 슬로무모션으로 눈에 선하다. 세상 태어나 그렇게 서럽게 운 적은 없었으리라.
이후 아버지와 대화가 없어졌다. 중고등학교, 대학교, 사회에 나와서도 그랬다. 남자아이가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할 말이 별로 없어진다지만 내겐 그 서운함이 컸다. 24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임종 당시에도 내 머릿속에 그 장면이 있었다. 결국 아버지와 그 사건에 대해 한마디도 못 해 봤다.
얼마 전 평범한 주말, 와이프와 난 어머님 생신이라고 어떻게 보낼까 이야기를 나누었다. 와이프가 '아버님은 어떠셨냐 자상하셨을 것 같다'라고 물었다. 잊고 있었던 피규어 박살 사건이 생각나 그 당시 이야기를 했고 말하면서도 난 울컥했다.
심리학자인 와이프가 이야기를 듣더니 내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이해해 주었다. 마치 초등학교 학생이 위로받는 느낌이다. 처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사라졌고 아버지가 잘 계시는지 궁금해 산소에 가보고 싶어 졌다.
난 지금도 내 사무공간에 로보트태권V 피규어와 그랜다이져 피규어 등을 탁자와 책꽂이 위에 두고 있었다. 위로를 받고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것은 이 피규어들을 치우고 싶으면서 느꼈다.
아버지 많이 서운했었습니다. 인제 마음이 풀립니다. 한번 찾아가 인사드리겠습니다.
* 어머님 생신에 45년 전의 이 이야기를 꺼내 물었더니 "그랬니? 니 아버지가 왜 그랬을까?" 라신다. 기억을 못 하시는 건지 알면서 넘어가신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