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세대를 떠나 본인 성격을 대변하는 MBTI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사회생활하는 사람은 대화 중에 들어 봤을 것이고 본인의 MBTI를 측정해 보기도 했을 것이다. 20년 전 심리학을 전공한 와이프를 결혼 전 처음 만나 나눴던 대화의 소재도 그것이었고 그때 나의 MBTI를 처음 알게 되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으나 와이프의 친절한 설명으로 알파벳 네 개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았다. 나는 ISFJ이다. 내 MBTI를 알기 전부터 나는 내성적임을 알고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대화를 싫어했고 학창 시절 반에서 '튀는걸' 싫어했다. 내 생각을 발표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외국인과 만나는 것도 꺼렸다. 즉, 대문자 아이(I)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남에게 말하는 것을 싫어하니 내 생각이 없었다. 가슴 뛰는 순간을 피하면 되고 선생님께서 내게 말을 시키지 않으면 좋았다. 친구들과 대화가 이뤄지지 않았고 말싸움도 엮이기 싫었다. 토론이 되지 않았다. 책을 읽어도 재미있는 TV 프로를 보아도 읽고 보고 생각한 게 무엇인지 어떤 점이 좋았는지 표현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생활이 좋았다. 튀지 않았으니까.....우리 가족도 어렸을 때 친구들도 나를 그렇게 기억했다. 조용하고 사고 치지 않고 무색무취한 녀석으로
그런데, 나의 겉모습이 변하던 계기가 있었다. 바로 군대였다. 나는 공군학사장교로 근무했는데 소위로 임관하기 전 훈련기간만 4개월이었다. 남쪽도시 산속에 4개월 훈련받으며 별의별 일이 있었다. 하루 종일 뛰기도 하고 기합도 받았다.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는데 선착순이 일상인 그 사회에서 내가 날 챙기지 않으면 내 몸이 괴로웠다. 자랑스럽게 군에 입대했는데 지옥처럼 느껴졌다.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신경은 곤두서고 무엇보다 남들보다 무능하게 '튀지' 않아야 했다. 60여 명의 부대원을 통솔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과거 기어들어가던 내 말투는 입 밖에서 울려야 했고 또 명확하게 전달 즉, 딜리버리가 좋아야 했다. 20대 초반의 나도 내가 그렇게 변화할 수 있다는데 의아했다. 어느 순간, 내가 말하는 것을 즐기고 부대원들과 소통하는 것이 재미있어하는 사람으로 되었다. 비행단 근무를 하면서 장교들과 이야기하고 하급자를 통솔하는 데엔 또 말이 필요했다. 장교 동기생들은 나를 제외하고 대부분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늦깎이 소위, 중위들이었는데 난 군대생활이 학교 생활을 하는 것처럼 느꼈다. 지식과 화술에서 모자람을 느낀 나는 퇴근 후 책도 읽고 석사 출신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자 했다. 고등학교 시절 경제학 수요, 공급 곡선이 싫어 어학을 선택한 내가 경제학을 석사과정으로 선택하고 첫 직장으로 경제연구소를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다시 한번 내 변화에 놀랜 순간이었다.
다음으로 조직 생활에서 위치이다. 소통은 무척 중요하다. 조직에서 뿐만 아니라 가족 그리고 거래에서도 소통은 오해를 최소화하고 나를 편하게 만든다. 부서장인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소통할 수 없다. 조직이 원활하게 굴러가게 하려면 내가 생각하는 바를 전달해야 하고 정확해야 한다. 나도 편하고 부서원들도 편하게 된다. 10여 년간 부서장 노릇을 하다 보니 말을 많이 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니 외부 회의에서도 말을 하게 되고 중요한 발표도 능숙하게 했다. 크게 변했다. 어쩌면 자신감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부서원 전체를 대상으로도 말을 많이 했지만 개개인에게도 말을 많이 했다. 업무 지시 외에 잔소리도 하기 시작했다. 이런게 쌓이다 보니 나만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내가 한 말들이 돌게 되고 소문이 나고 확대 재생산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상황도 많이 발생했다. 설명을 하는 말이 필요하게 되면 또 말을 많이 했다. 부서원들 뿐만 아니라 친구, 옛 동료들에게도 내가 '뱉은' 과거의 기억도 나지 말들이 사람들 마음속에 담겨 있어 내게 돌아왔다. 좋게 담겨 있는 말들도 있었지만 지금 들어도 화끈거리는 말들도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혼자이고 싶은 때가 생겼다. 소리 나는 말을 하지 않고 내면의 내게 하는 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좋은 기억도 상처도 되지 않은 말을 해야 했다. 이럴 때에 이직 기회가 찾아왔다. 환경도 변화하고 주위 사람들도 바뀌어 새 출발 느낌도 좋다. 그러나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인사는 먼저 하되 대화의 시작을 하지 않는다. 50대 후반이니 말로 나를 표현하는 것보다 미소와 분위기로 대화하는 법을 느꼈다. 머리와 옷매무새를 정갈하게 타인이 말을 걸으면 듣는 것이 내 문법이 될 수 있음을 이제 알게 되었다.
항상 감사하고 나를 돌아보며, 좋은 책들을 읽으며 내면의 나와 친해지는 내가 하는 말은 분위기이고 향기일 듯하다. 곱게 나이 먹으며 말을 줄이는 연습을 하는 내가 보기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