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하냐

나를 다스리기

by 레오

뉴스에 따르면, 올해 벚꽃 공식 開花 일자가 3월 29일(일)이었다. 아니 우리나라가 아무리 협소해도 남부지방과 서울의 기온이 다른데 식물에 까지 '공식'이라니 좀 이상했다. 그렇지 계절을 관장하는 기상청 기준이다. 그것도 한 가지에 세 송이 이상 벚꽃이 피면 공식 개화임을 이제야 알았다. 봄이 왔으나 가장 아쉬운 순간이기도 하다. 모든 꽃은 다 예쁘고 아름다우나 겨우내 가지만 앙상한 나무에 가장 먼저 꽃이 피어 겨울이 가고 따뜻한 봄이 왔음을 알리는 자연의 신호가 벚꽃인데 며칠 버티지 못한다. 그것도 봄비라도 오면 땅 위로 눈발이 흩어진 양 떨어지고 내년을 기다린다. 아침에 출근할 때 그리고 어둑한 저녁에도 벚꽃은 눈 호강을 시켜준다. 어찌 보면 일 년 중 일상에서 가장 황홀한 시기가 아닐까.




이맘때면 또 다른 새로움이 있다. 1월 1일, 음력설 그리고 개강과 개학으로 세 번의 새로움이 있다면, 기독교인들에게 부활절은 가장 중요한 축일이다. 성탄부터 기독교에는 새로움이 시작되나 신정과 음력설처럼 회개하고 마음을 다 잡는 중요한 날이다. 올해 네 번째 직장에서 새 출발을 한 내게도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지난 성탄에는 신자들의 의무인 고해성사에서 신부님께 내가 사람을 미워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아니 몇 년째 고백했던 '죄'이다. 이전까지 활기차게 활동했던 난 늘 예민해 있었다. 성과를 내고 싶었고 큰 족적을 남기고 싶었고 또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퇴직 무렵에는 사람을 미워하고 있었다. 나와 대척점에 있던 사람들의 말투와 업무가 크게 신경 쓰였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이 내 맘에 들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불만을 쏟아내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무너져갔다.




지난 주일 부활절 미사를 다녀왔다. 부활전까지 일정 기간을 사순기간이라고 하는데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며 당했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기억하며,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기억하는 기간이다. 메시아라고 나타나신 예수가 군중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함을 알았을 때 분노를 표출한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요즈음 말로 해석하면, 상대방이 고통을 받음으로써 내속이 시원해지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난 사람을 미워하며, 속이 시원해지고 싶다고 불손한 기도를 했었다. 새봄에 아름다운 벚꽃이 아름답게 그리고 하얗게 다가올 리 없었다.

부활한 예수가 두 여인에게 나타나 '평안하냐'라고 물으셨음(마태오 28. 1-10)이 다가온다. 미워하는 이를 향해 '십자가에 못 박으라'라고 외치는 나의 병이 조금씩 나아지기를 이 부활에 의미로 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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